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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Oct 16. 2023

내 삶의 모든 색이 시작되던 때

우리가 어린 시절이 없었다면

이 땅을 이렇게 잘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We could never have loved the earth so well

if we had had no childhood in it.

                                                             

<The Mill on the Floss> George Eliot




처마 밑에 또옥 똑 빗방울로 움푹 파인 또 다른 세상

혼자만의 상상으로 쪼그려 앉아 한참을 엿보는

조그마한 여자아이의 맑고도 발그레한 호기심


온 동네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교회 앞마당에서

덜 익은 양살구 향해 던졌던 돌멩이를 따라간 시선 사이로

미처 눈으로 담지 못해 부서진 햇살 같은 노란 웃음들


개구쟁이 남자애들 따라 활쏘기 하다

뒷산의 무너진 참호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옆으로 삐져나와 있던 나무뿌리의 텁텁하고 시원한 갈색 흙내음


이가 나간 사기그릇에 곱게 잘라 만든 호박꽃 달걀말이와

고슬고슬 하얀 모래 밥을 차리며

단짝과 함께 한 소꿉놀이의 달그락 연둣빛 소음


자기보다 시험 더 잘 봤다며 삐쳐

서늘하게 뛰어가던 동무의 뒷모습에서

노을 아래 어둠을 미리 보았던 무거운 먹색의 공기


내 안 어딘가 온통 버무려져 하나의 빛으로 사라졌던 색들이

살아가다 문득 나를 찾아갈 때

비로소 밖으로 하나씩 스며 나오는

소중한 나의 작은 무지개


상상 많은 꼬마였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쓴 시입니다.

림은 그 또래였던 막내딸의 흙놀이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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