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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Jul 11. 2024

빵빵한 하루

조용한 리나씨의 빵가게

리나씨의 빵가게는 매일 오전 11에 문을 연다. 손바닥만한 가게라고 할 정도로 작지만 복층이라 2층 공간이 제법 아늑하다. 리나씨는 매일 오전 7시에 정확하게 일어나 발효된 빵을 살피고, 오븐을 예열한다. 빵이 봉긋하게 부풀어 오를때 리나씨는 얼굴 발그레질 정도로 행복감에 빠져든다. 리나씨는 어렸을 적 시골마을에서 할머니와 살았는데 리나씨의 할머니는 종종 화덕에 빵을 구워주시곤 하셨다. 그러면 어린 리나씨는 할머니 옆에서 반죽을 치대기도 하고 화덕에서 빵이 구워질때 꾸벅꾸벅 졸던 할머니를 깨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 빵~~~ 탄냄새~~~빨리~~~"


탄빵_한쪽 귀퉁이가 타버렸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빵은 너무나도 맛났다. 빵에 잔뜩 붙어있는 깨알들이 톡톡 터질때는 어찌나 재밌던지~ 할머니와 그 빵을 앙 베어물며 베시시 웃고는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타주던 전지분유 우유는 설탕 두스푼과 만나면 환상의 이었다. 자판기에나 넣는 전지분유 우유가 나는 세상 그 어떤 우유보다도 맛났다. 그맛이 생각나서 전지분유를 구했는데, 왜 그 맛이 안날까. 할머니만의 비법이 있었던 건가. 좀 더 달았던 것 같기도 하고...맞아. 할머니의 우유 맛은 좀더 달았다.




할머니는 89세의 연세로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리나씨는 혼자가 되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할머니는 정이 많아 마을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래서 리나씨도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데도 늘 마을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니 외로울 틈이 없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엄마였고, 마을 아저씨들이 아빠고 삼촌이었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해가 저무는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할머니의 쾌활한 성격 덕분에 리나씨는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리나씨는  네살이 되던 해에 프랑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고등학교를 마치기 전에 제과 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이미 땄고, 대학은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런 뻔한 결말이 싫었고, 당장 하고 싶은 걸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리나씨는 프랑스의 시골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빵집이란 빵집은 다 다니면서 무일푼이어도 좋으니 숙식만 제공해 주면 일하겠다고 했다. 조용한 리나씨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는 모르겠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게 있으면 꼭 해내고야 마는 리나씨였다. 리나씨는 남들보다 늦게 잠들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빵을 연구했다. 프랑스의 남부지방부터 시작한 빵집순례가 서부를 지나 북부까지 가고 있었다. 리나씨는 프랑스 북부의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서 루시앙을 만났다. 루시앙_




루시앙은 아버지의 작은 빵집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 루시앙의 빵가게에 갔을때 작은 시골마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붐볐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먼데서도 맛집이라고 소문나서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리나씨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며 길 건너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무일푼으로 일하겠다고 했지만 수중에 용돈이 두둑히 있었다. 프랑스 시골마을의 인심이 어찌나 좋던지 떠날 때마다 여비에 보태 쓰라며 용돈을 쥐어주셨다. 갔던 곳마다 받은 봉투들이 가방에 가득했다. 적은 돈들이 모이니 꽤 되었다. 현금부자란 이럴때 하는 말인가. 훗...리나씨는 할머니의 쾌활한 성격과는 반대로 수줍음 많고, 말수가 적었지만 그래도 매사에 성실하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무언가의 특별함이 있었다. 신비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녀의 외모도 한몫했다. 검은 피부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하게 큰키 그리고 파마머리라고 해도 될 정도로 머리카락이 곱슬거렸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가을에 곱게 물든 나뭇잎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선명한 갈색이이었다. 이건 아무래도 할머니에게서 유전된 듯하다. 그런데다 옷차림은 또 어떻고...훗...리나씨는 할머니가 직접 지어준 옷만 입었다. 할머니가 전보다 좀 쇠약해졌다 느꼈을때 밤 늦게까지 무얼 하나 했더니 매일 한벌씩 리나씨 옷을 만들고 있었다. 리나씨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모두 할머니가 지어준 옷들이다. 모두 광목으로 된 천연소재의 옷이고 색감 또한 화려했다. 할머니는 리나씨에게 어울리는 색감을 잘 골라냈다. 리나씨는 할머니가 지어준 옷들이 너무 좋았고,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지어준 옷을 입고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할머니는 장례식장이 슬픔으로 물드는 걸 바라지 않으셨다. 장례식장에서 꼭 검은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옛날 사람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이 개방적이고 파격적이었다. 리나씨는 프릴 달린 고운 원피스를 입고 조문객들을 맞았다. 할머니를 아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수군대지 않았다. 누구도 장례식장에 저런 옷을 입다니 라는 말을 쉽게 던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에 단 한벌뿐인 옷을 입는 기분이란! 리나씨는 어느곳에 가든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녀에게서 풍겨지는 묘한 이미지에 사람들은 금새 그녀에게 푹 빠졌다. 그녀가 재밌는 사람은 아니었다. 말수가 적고 매순간 신중함이 과할 정도였지만 그녀가 깊이 생각하고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큰 힘이 느껴졌다. 그 말에 누구라도 반기를 들지 못했다.

 



"음...그건 더 깊이 들여다 볼 문제네요.................... 함께.... 고민해봐요..."


그녀의 말에는 늘 공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쉽게 그 말 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짙은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응시할 때 그 고요한 느낌은 햇살 좋은 가을날 나뭇잎이 사라락 떨어질 때의 따뜻한 고요였다. 그녀가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해도 그녀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잠시동안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 그건 아마도 그녀의 할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기 때문 아닐까. 그녀는 살아오면서 그녀의 성격이 잘못되었다거나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정말 단 한번도 없었다. 어쩌다 내뱉은 말 한마디에도 할머니는 항상 귀담아 들어 주었고, 그녀의 생각을 늘 존중해 주셨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다. 그랬다. 그건 '절대적인' 이었다. 누군가에게 충만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리나씨는 커피자국이 말라붙을때까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느새 산너머로 노을이 지고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탁자를 톡톡하고 작은 소리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루시앙_머리카락에선 밀가루 눈이 되어 내리고, 커다란 눈망울에 푸른 눈동자 누가봐도 미남이라고 할 만한 남자가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니 리나씨는 잠이 확 달아났다. 리나씨보다 좀 더 짙은 갈색머리에 파마가 프랑스의 작은 꼬마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올려다 볼 정도로 큰 키에 다부진 몸은 하얀 옷이 꽉 끼어 보일 정도로 근육질이었다. 순간 할 말을 잃고 쳐다보는데...맞은편 빵가게에서 사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리나씨 맞죠? 어서 와요~~~루시앙도 좀 데리고 와줘요~"


리나씨는 루시앙이 말을 못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손짓 몸짓 눈짓으로 루시앙에게 같이 돌아가자고 말했다. 루시앙은 내가 일어날 때까지 옆에 서서 기다렸다. 마치 리나씨를 에스코트 하는 것처럼 뒤에서 떨어져서 천천히 주변을 살피면서 걸었다. 뒤에서 근육질 남자가 뿜어내는 열기란...훗_잠시 리나씨는 현기증이 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빵가게 이층이었다. 창 너머 정원에는 각양각색의 장미들이 서로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리나씨는 장미향기에 취해 창가에 턱을 기대고 앉아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 한점 콕 박힌 별을 응시했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니 루시앙이었다. 이번에는 눈빛만으로 얘길했는데 아래로 내려오라는 말 같았다. 루시앙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작게 난 통로를 지나가니 주방이 보였다. 주방 안은 좁았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조리대며 식탁 그리고 넓은 창이 있어 시원해 보였다. 창밖으로 장미 정원이 더 가까이 보였다. 어쩜 저리도 소담하게 피었을까. 당장이라도 달려나가고 싶을 정도로 장미는 향기로 요염한 자세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식탁에는 라따뚜이가 놓여 있었다. 금방 내었는지 김이 모락모락 났다. 프랑스에 와서 먹은 음식 중에 단연코 으뜸으로 꼽는 음식이 라따뚜이다. 전에 있었던 빵집의 루이즈 아주머니가 해주던 라따뚜이가 가장 맛있었다.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엉덩이를 요란하게 흔들며 콧노래를 부르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셨다. 참 신기했다. 아주머니의 손끝에서 할머니의 음식이 떠오르다니_루이즈 아주머니가 생각나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니_할머니가 생각난 건가. 시몽 아저씨는 접시에 음식을 덜으면서 환영의 인사를 한번 더 외쳤다.


"시몽 드 블랑제리에 온 걸 환영합니다. 리나~"


시몽아저씨는 루시앙에게 눈을 찡긋했다. 루시앙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딘가로 사라졌다. 리나씨는 포크로 라따뚜이를 입안가득 밀어넣으며 볼이 터져라 우물우물 먹었다.


"며칠 굶은 사람같네요~하하하"


리나씨는 입안이 가득차서 알 수 없는 발음으로 웅얼웅얼 말을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재밌었던지 와인병을 들고오던 루시앙이 온 몸이 들썩일 정도로 웃기 시작했다. 몽아저씨는 식탁이 흔들릴 만큼 껄껄 웃었다.


시몽 아저씨의 주방에서 오래간만에 사람사는 냄새가 났다.




(다음날 아침)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슬며시 눈을 뜨고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시앙?"


루시앙이 창가에 앉아 있는게 아닌가? 리나씨는 깜짝 놀라서 붕 떠버린 머리카락을 정돈하면서 일어나서 침대에 몸을 기댄채 루시앙에게 뭔가 말을 하려고 생각하다 멈췄다. 그대신 일어나서 천천히 루시앙 옆으로 가앉았다. 루시앙은 쟁반에 놓인 커피를 내밀었다. 하늘 보다 더 짙은 진청색 바탕에 꽃이 알록달록 그려져 있는 잔이 눈길을 끌었다. 조심스럽게 커피잔을 들어 향을 맡으니 진한 꽃향과 초콜릿 향이 났다. 루시앙은 민망할 정도로 뚫어져라 리나씨를 바라봤다.


그러다 리나씨는 갑자기 헛기침이 났다. 불에 데인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지고 방안의 공기가 모두다 사라진 것처럼  헉하고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루시앙은 동요하지 않고 계속 리나씨를 바라봤다.




리나씨는 할머니와 빵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깊은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그런데 루시앙은 달랐다. 리나씨는 루시앙 앞에만 서면 옴싹달싹 할 수 없고 머리속이 하얘졌다. 모르겠다. 심장이 먼저 그에게 반응했다.



(루시앙의 독백)

리나_그녀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처음 그녀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질거라는 걸 알았다. 엄마가 떠나고 나서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는데, 그녀가 오고 나서 자꾸만 눈길이 그녀에게 향한다.  처음 빵과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꾸만 그녀가 보고싶다.




시몽아저씨는 시몽아저씨만의 발효방법과 반죽의 비결을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리나씨는 시몽아저씨의 비법에 살을 붙이고, 자기만의 것으로 재탄생시켰다. 시몽아저씨는 리나씨의 아이디어에 매번 감탄하고는 했다.

루시앙은 리나씨가 빵을 연구하고 때론 실패도 하고 하는 모습에서 리나씨에게 더욱더 매력을 느꼈다. 리나씨에게서 풍겨지는 신비스러움에 루시앙은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 어떤 누구도 이렇게 눈길을 끌었던 사람이 없었다. 불가항력적이란 말을 믿지 않았는데, 루시앙은 리나씨를 만나고 나서 불가항력적으로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한주가 바쁘게 흘러가고 일요일 오전 잠을 늘어지게 자고 루시앙은 바구니에 빵과 와인을 담아서 2층으로 올라갔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톡톡하고 두드렸다. 기척소리가 들리지 않자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리나씨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새근새근 잠든 리나씨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루시앙은 그녀의 얼굴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한올한올 넘겨주었다. 간지러운듯 고개를 돌린 리나씨의 얼굴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루시앙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볼에 키스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참았다.


30분쯤 더 흘렀을까.


"으으윽~~~~~루시앙~! 이제 상습적이네~~~몰래 들어와있는거~ㅎㅎㅎ 그 바구니는 누가 봐도 피크닉 바구니잖아~ 잠깐만 기다려~ 씻고 나갈게~"


방문 밖으로 루시앙을 내쫓고 리나씨는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씻었다. 원래 외모에는 1도 신경쓰지 않던 리나씨가 루시앙을 만나고 나서 달라졌다. 루시앙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의 시선속에서 자유롭기가 힘들어졌다.


그 이글거리는 눈빛_너무 뜨거웠다. 근육질에 파란눈인 남자가 그것도 너무 미남인 남자가 나를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본다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계단 밑으로 고개를 내민 리나씨를 위 아래로 훑어본 루시앙은 방으로 사라지더니 따뜻한 담요를 가지고 왔다. 벌써 계절이 가을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루시앙이 앞장섰고, 둘다 차에 올랐다.


"루시앙~ 어디가는 거야?"


루시앙은 리나씨와 눈을 맞추면서 비밀이란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리나씨는 너무 궁금했지만 창밖 풍경들이 너무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했다. 가을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내민 손으로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루시앙이 가만 리나씨의 머리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동시에 얼굴이 붉어진 채로 리나씨를 바라봤다.


"루시앙..."


루시앙은 확신했다는 뜻으로 리나씨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리나씨는 손에 힘을 주었다. 달리던 차가 멈추고 둘은 누구랄 것 없이 서로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첫키스라 서툴렀지만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서서히 그리고 깊게 서로의 영혼을 어루만졌다.


고개를 든 루시앙이 리나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만지기도 아깝다는 듯이...


"리나..."


리나씨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루시앙~ 지금 말한 거야? 와아~~~"


리나씨는 너무 기뻐서 차에서 내려서 차 둘레를 한바퀴 돌며 만세 자세를 했다. 그러고는 꺄르르르 웃었다.

다시 차로 돌아와 루시앙의 입술에 한번 더 입맞춤을 하고 말했다.


"루시앙~"


"리나..."


"루시앙~"


"리나...ㅎㅎㅎ"


루시앙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지 답답해했다.



"루시앙...너무 애쓰지마...내 이름을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준 것만으로도 너무 가슴이 벅차...나 루시앙이 너무 좋아...이렇게 누구를 좋아한 적은 처음이야..."


루시앙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앙은 리나를 꽉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있다보니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려 하고 있었다.


"루시앙...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이제 그만 갈까? 어두워지고 있어...ㅎㅎㅎ"


루시앙은 리나의 이마에 한번더 입맞춤하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갔다. 한참을 더 달리다 도착한 곳은 포도 농장이었다. 농장에 도착하자 아저씨 한분이 커다란 개와 나타나셨다.


"루시앙~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와~"


"난 가브리엘이라고 해요~ 시몽의 빵집에 건포도를 보내고 있고...시몽과는 오랜 친구기도 하고요~ 반가워요~ 어서 들어가요~"


가브리엘 아저씨는 리나씨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주방은 넓직하고 아늑했으며,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집에는 아저씨와 대형견인 루이만 사는 것 같았다.


"루시앙~ 와~ 이게 얼마만이니~ 우리집에 와보는게... 감격해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한동안 잘 안왔잖아~ 시몽한테 네 소식만 듣고...배고프지? 어서 들거라~ 리나씨도 어서 들어요~"


"네...잘 먹겠습니다..."




가브리엘 아저씨의 스테이크와 와인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너무 맛있었다. 기분좋은 포만감으로 푹신한 거실소파에 앉아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소파에 기대어 반쯤 눈풀린 상태로 벽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은 더 어두워지고 있었고, 창문이 살짝 덜컹일 정도로 가을 바람이 서늘하게 불고 있었다.


"어휴...내가 잠들었었나?"


루시앙은 가만히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곁으로 와서 앉았다. 나는 그의 넓은 어깨에 고개를 기댔고, 다시 나른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소파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어느새 아침이 오기 시작했고, 가브리엘 아저씨는 주방에서 무얼 하는지 딸그락 소리가 났다. 그리고 커피향이 거실 안에 진동했다.


"가브리엘~ 트렁크에 건포도랑 와인 실어놨어~시몽한테 안부도 전해주고...여기 커피랑 프렌치 토스트 있으니까 먹고~ 난...일이 있어서...천천히 쉬었다 가렴~"


우리 둘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 토스트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커피를 마셨다. 민소매를 입은 루시앙근육질 몸이 햇살을 받아 더 도드라 보였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루시앙은 그걸 눈치챘는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면서 내 볼을 만지작 거리 놀리는 표정을 했다. 그러다니 갑자기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리나...사랑해...처음 느낀 감정이야..."


어제 그 한마디에 이어 세마디를 했다.


"루시앙...나는...음..."


"리나...사랑해..."




약속한 3개월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루시앙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 시작한게 벌써 한시간째다. 리나는 루시앙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가 힘들었다. 리나는 루시앙의 우는 얼굴을 마주하면 영영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시몽아저씨와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그 어느때보다도 무거웠다.









나는 오늘도 빵을 굽는다. 장마로 비가와서 손님은 줄고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잠시 졸음이 와서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문이 덜컹하소리 났고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잠에서 깨서 고개를 들었다.



"루시앙..."


루시앙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리나를 번쩍 들어 올려서 키스를 퍼부었다.


"리나...도저히 리나가 없이는 살수가 없어서..."


루시앙은 또 울기 시작했다.


"울보네...ㅎㅎㅎ"


"리나...잠깐 앉아봐..."


루시앙은 주머니에서 반지함을 꺼냈다.


"이거...엄마가 나한테 준 건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청혼할때 주려고 했어...내 마음 받아줄거지?

나랑 결혼하자...나는 리나를 너무 사랑해...평생 함께 있고 싶어..."


"루시앙..."


"리나...나랑 결혼해줄래? 응?"


"......좋아...."


루시앙은 너무 행복해서 가게를 한바퀴 돌더니 다시 돌아와 나를 번쩍 안아들고 다시 한번 키스를 퍼부었다.


"실은...루시앙...나 가게랑 집을 정리했어...너에게 가고 싶어서...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는데...이 가게...

같이 돌아가자...시몽아저씨를 만나서 우리...거기서 결혼식을 올리자~"


"리나...사랑해..."

"루시앙...내가 더 사랑해..."






-에필로그-


프랑스로 돌아온 루시앙과 리나는 시몽아저씨와 루이즈 아주머니 그리고 가브리엘 아저씨의 축복을 받으며 웨딩마치를 올렸다. 둘은 그리스로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시몽아저씨의 가게 옆에 작은 카페를 열어서 빵과 커피를 팔았다. 루시앙은 여전히 리나를 뜨겁게 바라봤고, 리나는 아직도 그를 바라볼 때마다 얼굴이 발그레졌다. 루시앙과 리나의 베이커리 카페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둘의 프렌치 키스가 이어졌다. 리나의 배가 조금 불룩해보였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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