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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Jun 27. 2024

달빛정원

아일레스  

눈을 꼭 감고, 쉼호흡을 한번 하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흔한 방법 훗...! 꿈의 요정은 오늘도 나를 데려가지 못했다.  시계는 새벽 두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시계 소리가 점점 커진다. 철컥ㅡ철컥ㅡ마치 저승사자가 예고도 없이 데리러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휴~ 잘자고 싶다~~~~~~~~~~~으아악~~~~~~~~~잠의 요정님~ 제발 저 좀 잠들게 해주세요~~~"



달빛 정원으로 나갔다. 고요한 어둠이 땅속까지 스며들어 가서 모든게 다 침잠해 가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샘물이 영롱하게 빛났다. 샘가에 있던 풀들이 바람에 조금씩 눈꺼풀을 들썩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눈을 감아 봐. 속으로 열을 세고 다시 눈을 떠봐~짜잔~! 봐!! 밝아졌지?"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울렸다. 옅은 통증이 머리 전체로 퍼졌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기억의 저편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잠시 웅크리고  있다가 통증이 잦아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달빛이 유난히 밝은 자리에 꽃이 한송이 있었다.  못보던 꽃이었다. 꽃이 있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푸른 빛깔에 수줍은 여인의 얼굴처럼 붉은 수술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백합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카라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처음보는 꽃이었다.


"못보던 꽃인데..."


조심스럽게 꽃잎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향기를 맡아보았다. 짙은 바닐라향과 달콤한 과일향이 매우 감미롭게 폐포 깊숙이까지 스며들왔다.


"음~"


그때였다. 갑자기 나른해지기 시작하면서 하품이 나기 시작했다. 지미는 그렇게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안개가 자욱한 어떤 숲속을 걷기 시작했다. 바스락 대는 낙엽이 왠지 폭신폭신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걸어가자 커다란 소나무가 보였다. 소나무 밑에 향긋한 솔잎들이 가득 쌓여있고, 그곳에 잠시 몸을 뉘였다. 졸음이 몰려왔다. 꿈의 요정이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달빛에 어둠이 조용히 물들고,

가만히 너의 이름을 부르네~


하나~둘~셋~ 내손을 잡으렴~


바람을 타고 구름위로 날아올라

들은 너의 꿈을 알고 있지...

너의 꿈을 싣고 사랑하는 그 님을 만날까.

아니면 너의 못다한 꿈을 이뤄줄까.

그것도 아니면

그리운 님을 만나러 갈까."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눈꺼플이 너무 무거워져서 더이상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점점 더 깊숙히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천사의 깃털이 어루만지듯 그렇게 부드럽게 조용히...




"으으으~~~~~~엇~?"


이게 무슨 일이지? 몸이 가뿐해졌다. 머리도 맑고 눈도 환해졌다. 세상이 다 밝아보였다. 해가 밝자마자 눈을 떴고, 시계를 보니 정확히 여섯시였다.


"배고파~ 내가 배가 고프다고? 이 시간이면 피곤에 절어 있는데...오늘 왠일?"


창가로 가서 커튼을 거두었다. 사과 나무에서 향긋한 사과향이 코를 찔렀다. 밖으로 나가서 바닥에 떨어진 사과 몇알을 주워와서 사과잼을 만들고, 토스터기에 식빵을 넣었다. 구운 식빵에 사과잼을 바르고 짙은 꽃향이 나는 시다모 커피와 먹으니 너무 맛났다.


"이거지~"


"누군가에게 해주는 것처럼 나를 대접해야돼~"


또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혹시 누가 있나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가슴이 묘하게 아리고, 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 밖에...


"왜이렇게 아프지...?"



지미는 눈물을 훔치고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어제 따 놓은 사과를 차에 싣고, 프리마켓으로 갔다.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프리마켓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과일과 채소가 품질이 좋고 맛있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 소하리ㅡ지미는 그곳에서 주말마다 여는 프리마켓에서 사과를 판다. 이게 꽤나 잘 팔려서 올해는 주머니가 꽤 두둑해졌다. 사과 농사가 끝나면 혼자서 여행을 간다.


"올해는 어디로 갈까?"



사과 농사철이 지나고 찬바람이 코 끝을 스쳤다. 지미는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이라고 해봤자 옷가지 몇벌과 사과잼과 토스트 그리고 커피가 다지만...훗~


시동이 경쾌하게 걸리고 엑셀을 밟았다. 이번에는 그래 거기로 가보자.  


하늘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파랬다. 그리고 가을 단풍이 어쩜 저리도 예쁠까. 지미는 차창밖으로 손을 뻗어 바람을 느꼈다. 손에 닿았다 금새 새어나가는 바람을 잡기라도 하려는 듯이 계속 바람을 움켜쥐고 싶어했다.

익숙한듯 네비게이션도 켜지 않고서 계속 해안가 도로를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벼랑위의 포뇨가 나타나 함께 따라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풍랑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파랬던 하늘이 검푸른 먹구름으로 변하더니 후드득 비가 오기 시작했다. 더이상 가는 건 무리인 것 같아서 언덕위의 작은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창밖으로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카페였다. 지미는 카운터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메뉴도 보지 않고 핫초코를 시켰다.


"생크림 듬뿍 얹은 핫초코 한잔 주세요..."


"생크림 듬뿍은 메뉴에 없지만 손님은 특별히 드릴게요~훗~"


"... 감사합니다..."


지미는 창가에 가장 푹신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물끄러미 창밖을 보고 있는데 주인장이 수건을 들고 다가왔다. 주인장은 푸슬거리는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푸들같이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조개ㅡ웃을 때마다 보조개에 별이 콕하고 박혔다.


"수건으로 좀 닦아요~ 그러다 감기 걸리겠어요~"

"감사합니다..."


지미는 소파에 몸을 기댄채로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빗줄기가 점점더 굵어지기 시작했다. 풍랑도 거새지고 검푸른 하늘은 무서울 정도로 더 파래졌다.  


잠시뒤 주인장은 벽난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작은 불씨가 점점 더 커지면 빗물에 젖었던 머리카락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건에서 나는 은은한 허브 향기에 온몸에 베어있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렸다.


"긴장하는 습관~지미~넌 누구보다 멋져~세상의 중심은 너야~그러니까...떨릴땐 그걸 잊지마~넌 유일무이한 존재고 좀 더 당당해도 돼."


지미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계속 해서 들렸다. 누구일까. 천사일까. 지미는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 어렸을 적 꿈속에서 천사를 만났고, 잊지 않기 위해 계속 그림을 그렸다. 천사의 이름은 아일레스_


"언젠가는 널 만나러 올 거야. 그때까지 안녕..."



아일레스는 순백의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지미는 어렸을적 부모님을 바다에서 잃었다. 그후 할머니 손에서 컸고, 조용한 성격에 긴장이 많은 편인데다 시골 마을에는 친구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꿈속에서 만난 친구가 바로 아일레스다.


"지미_넌 혼자가 아니야.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



지미는 그날 이후로도 계속 꿈속에서 아일레스를 만났다.


그일이 있기 전까지는...

지미는 절벽에서 놀다가 바다로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다.


지미의 심장은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했다.

그때 아일레스가 나타나 자신의 심장을 지미에게

주었다. 아일레스는 그날 이후로 지미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러고나서 지미는 기억을 잃었다. 천사의 심장을 받은

사람은 천사를 기억해서는 안되었다.




"핫초코 나왔습니다~"


지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미~난... 언제나 네곁에 있어..."


"저어...이거..."


주인장은 지미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초콜릿의 이름이

아일레스였다.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이게 도움이 될 때도

있더라고요..."


주인장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쟁반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로 카운터 너머로 사라졌다.


천사의 날개짓인가...


주인장의 이름도 아일레스...!




"아일레스..."


"지미..."




아일레스는 지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미...행복해야해...내 두번째 심장은 아직

여기 있어. 난 살아서 영원히 널 지켜 볼거야...네가

행복한지...웃고 있는지..."



지미는 아일레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수 있을까. 말없이 벽난로를 지피는 천사같은 그녀를...


오늘도 언덕카페에 간다.


아일레스를 만나러...

 


[아일레스]


폭풍우가 치던 어느날 비에 젖은 머리칼에 검은 피부를 가진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순간 심장이 쿵_했다.


왜일까? 어딘가에서 만났던 사람처럼 익숙한 느낌이랄까.

나는 그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 것이다.


이름은 지미_지금 저기 문 밖에 지미가 보인다. 사과상자를 들고 온 우주가 나를 비추듯 시선을 고정한 채 성큼성큼 내게

걸어오는 그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지미는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와 아일레스를 번쩍 들어안았다. 그러곤 그녀에게 입맞춤했다. 그녀에게서는 아일레스에게서 났던 향기가 났다. 지미는 그녀의 발그레진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맞대었다.


"아일레스_영원히 내곁에 있어줘~"

"지금...그거...청혼인가? 훗~"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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