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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May 30. 2024

벚꽃이 지고 1부

홀로서기 1년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올해는 유난히도 벚꽃이 일찍 폈다.

개화가 일주일 앞당겨졌다.


소희는 작년 4월 이맘때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나를 깨고 싶어. 그냥 난 내가 너무 답답해.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미안해."


그 한마디_일언반구도 없다가 정확히 2년 4개월 사귀던 나에게 통보만 하고 떠났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립고 보고싶다가 이제 그것마져도 무뎌지고 있었다. 점점...


'이제 딱 6개월 지났네...'


벚꽃이 질때면 어린아이처럼 촐랑대며 뛰어다니던 소희가 눈에 아른거렸다. 바쁜 회사생활 때문소희를 잊고 있었구나. 남들이 그렇게 우러러보는 대기업 인턴으로 들어갔지만 매일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나는 무얼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던 일인지. 차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소희도 없는데...'


라는 생각으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려다 문득 옷장에 몇년전부터 쳐박혀 있던 카메라가 생각났다. 터벅터벅 옷장까지 걸어가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창가에 가서 전원을 켰다.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뿌얬다. 입김으로 먼지를 대충 날리고 찍어놓은 사진을 한장씩 넘겨봤다.


거기엔 내가 있었다. 그리고 소희가 있었다.


'소희는 웃는 모습이 참 예뻤는데...'


그랬다. 소희는 너무 예뻤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이 길거리를 걸을 때면 어깨가 으쓱해졌다. 과에서 인기가 많아서 늘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아이였다. 그에 비하면 난 건달같은 외모에 키만 멀대같이 크고 과 친구들이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부류에 속했달까. 아버지가 경찰이셨고, 그 아버지에 아버지도 경찰 집안. 어려서부터 상남자란 이런 거다 라면서 맷집을 키워왔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런 나를 무장해제 시킨건 신입생 환영파티때 만난 소희다. 소희는 하얀 원피스에 투명한 피부 그리고 웃으면 보조개가 들어갔다. 그리고 성격도 좋아서 애들하고 단번에 친해졌다. 난 그녀의 모든게 좋았고 2년 넘게 구애한 끝에 그녀와 사귀는 걸 허락받았다.


여신강림_

그녀가 나타날 때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

버튼 한번이면 되는데...

소희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렇다고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면서...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겠다면서...그녀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안간힘을 다해서 참았다.


오늘따라 소희가 미치도록 보고싶다. 카메라만 들고 비니모자를 대충 둘러쓰고 슬리퍼를 신고 지하철을 타고서 캠퍼스로 향했다.


셔터를 연신 터트리며 소희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소희와 샌드위치를 먹던 거...소희와 돗자리 펴고 앉아서 음악듣던거...소희는 겉에서 풍겨지는 이미지는 청순가형인데 의외로 해비한 음악을 좋아했다. 나는 반대로 잔잔한 발라드를 좋아했고, 어울리지 않게...


오후가 되니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소희랑 자주 가던 떡볶이 가게에 갔다. 떡볶이 가게 이모도 그대로 있고 소희랑 앉던 자리도 그대로였다.


"이모~떡볶이 2인분요~"

"아유~ 그 학생이구먼~ 그런데 왜 오늘은 혼자 왔어?"

"그게...하하하"


머쓱해서 그냥 웃어버렸다. 뭐라 설명하기도 어렵고 해서...


떡볶이를 다 먹고 나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테이크아웃하고 터덜터덜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향했다. 한강뷰가 보이는 우리집.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


그리고 나는_



회사에 가지 앉았다.


"팀장님~죄송합니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나는 곧장 짐을 싸고, 엄마에게 문자한통을 보낸 후 그냥 무작정 길을 나섰다. 이대로는 숨이 막힐 거 같아. 소희에게 가고 싶었다. 너무나도 간절하게...그렇지만 겁이 났다. 소희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하고...나는 소희가 너무 좋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 만큼...지금의 이 시간, 하루가 일년같은 이 시간 쯤이야 견딜 수 있다. 소희만 곁에 둘수 있다면...


렌트카 샵에 가서 당장 오픈카부터 빌렸다.


'그래, 떠나는 거야.'


나야말로 제대로 나를 들여다 본 적이 있었던가. 대대로 경찰집안에 경찰서장까지 하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현모양처 우리 엄마 뭐 하나 부족함없이 자랐다. 그렇다고 응석받이 외동아들로 자란 건 아니다. 대학교부터는 스스로 해결하라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대학에 다녔다. 엄마는 반대하셨지만 아버지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그래야 자립심도 키우고 독립심도 키운다며 엄마를 설득하셨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과톱을 놓치지 않았고 소희도 만났다. 그리고 대기업에 떡하니 입사했다.


나는 꿈이 없었다. 친구들이 "나는 커서 뭐가 돼야지~"라고 말을 하면 난 속으로 '꿈이 없는데...'라는 말을 되네였다. 그냥 남들 보기에 멋있는 삶, 대기업 입사 그렇게 나는 나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도 나의 길을 찾아 갈 거야.'  


내가 스스로 제대로 서있어야지 소희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얼마쯤 왔을까_바다가 보였다. 탁트인 바다가 보고 싶었다. 해질녘이라서 그런지 일몰이 그림같았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그러다 어떤 할아버지가 앵글에 들어왔다. 중절모를 쓴 중후한 신사라는 말이 딱 어울릴만큼 얼굴에 있는 세월의 흔적마져 멋지게 보였다.


"이봐~젊은이~"


할아버지는 내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것 좀 봐봐~이건 요즘 구하기 힘든 건데...이거 어디서 났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주신 거예요..."


"이거 여간해서 구하기 힘든 건데...운이 좋구만~여긴 어쩐 일로 왔어? 외져서 사람들이 잘 안들어오는 곳인데..."


"그냥 무작정 왔어요..."


"원~ 싱겁긴...따라와~"


"네? 어딜..."


"잔말말고 따라 와~"


할아버지를 따라서 해안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리고 바다끝 길모퉁이 절벽 위에 집이 한채 있었다. 보기에도 옛스러운 '옛날 사진관'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들어와~험..."


사진관 안에는 나무 난로가 중앙에 놓여있고, 낡은 뷰카메라 사진기가 한대 있고,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무 테이블 위에는 화병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흰색 꽃이었다. 해안가에서만 자라는 꽃인듯 했다.


"산자고야~ 꽃말은 봄처녀~아내가 좋아했었지..."


"너무 예뻐요...별 같기도 하고...그럼 아내분은?"


"5년 전에 세상을 떴지...참 고운 사람이었어...저 꽃처럼...들꽃같은 사람이었어...저기 사진 보이지? 아내야..."


사진 속 여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정말 야생에서 자라나는 들꽃이라고 할 만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이 사진속에 고스란히 담겨서 마치 들판 위에 함께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네요..."


할아버지는 찻주전자에 녹차를 띄우고 찻잔과 함께 내오셨다. 차를 우리고 따르는 동작 하나 하나가 우아했다. 그리고 뭔가 말없는 말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넨...뭘 찍고 싶나?"


"그냥 마음가는 대로 담아보고 있어요..."


"죽은 사진 말고 살아있는 걸 담아...이야기가 있고 말하는 것 같은 사진 말야..."


"어렵네요..."


"여기 며칠 지내면서...생각해 봐..."


"네? 여기에서요?"


"다락에서 지내면 돼~혼자 사는 늙은이 말벗도 되주고..."


"저야 감사하지만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원~ 요즘 사람들은 따지는 것도 많아서 힘들겠네...때론 단순해져 봐..."


"네..."



그래서 내가 여기...있은지 한달이란 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할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해질녁이면 사진관 앞에 앉아 노을을 봤다. 아무 말이 필요 없었다. 이렇게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그냥 맹목적으로 남들과 같은 선에 서있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배워볼텐가?"


"에? 제가요?"


"사진에 사자도 모르던 나도 했는데 젊은이는 충분히 할 수 있어~"


"네...뭐...그럼..."


"차근차근 알려줄테니 서두르지 말고..."




"자넨 사진을 찍을때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저는...음...구도가 아닐까 생각해요..."


"이론적으론 그렇지...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피사체에 대한 사랑이야.


그래야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다네."


오늘 수업은 이게 끝이었다.


'사랑...어렵다.'


나는 소희를 떠올렸다.


정말 신기하게 소희를 찍은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정말 그런 걸까...'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발밑에 채이는 돌들...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파도...


멀리 지는 노을...


모든 풍경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사물 하나 하나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본 적이 있었던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저녁이면 찍은 사진들을 프로젝터에 넣고 돌려봤다.


"자넨 풍경을 바라보는 눈이 뛰어나.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자네가 헛수고를 하지 않았으면 하네...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텅빈 사람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어렸을때 기억이 났다. 할아버지가 누르던 셔터소리..,나는 풀밭 위를 날아다니던 나비...

할아버지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것이다.


사진은 지워지지 않는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 시간 속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다.



한달의 시간이 더 흐르고 배낭을 쌌다.


"할아버지...저 가야겠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았거든요."


"혹시...이 늙은이가 생각나거든 편지 한통 부탁하네.


자네가 찍은 사진도 같이..."


집에 와서 다시 짐을 쌌다.


유럽으로 떠난다. 크로아티아로 가기로 했다.


거기에 친구가 살고 있다. 존...존을 만나러 간다.



"헤이~맨~"


역시 존은 유쾌하다.


15시간 이상의 비행에 지쳤는데도


존의 밝은 얼굴을 보니 피로가 풀다.


존은 두브로브니크의 성벽 근처 마을에서 작은 카페를


다.


존은 오픈카를 운전하며 잠시 눈을 붙이라고 했지만


주변 풍경이 너무 예뻐서 눈이 감기지 않았다.


30분 정도 달려가니 존의 집이  보였다.


집 마당에는 존이 아끼는 이요르가 있었다.


리트리버 견인데, 존이 몇년전부터 키우고 있다.


존은 비혼주의에 모태솔로라 혼자서 카페를 하면서


이요르랑 살고 있다.


"짐 풀고 나와~맥주나 한잔 하자~"



2부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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