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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Jun 06. 2024

벚꽃이 지고 2부

다시 봄_

내가 존을 만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아니 운명이었나? 훗_


엄만 여행을 좋아했다.

세계의 언어를 다 배우고 싶어했고,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집안에는 먼지 한톨이 없었고,

가족들의 식사 때마다 한상 가득

맛있는 음식들을 차려냈다.


난 엄마가 마법사인가? 요술할머니인가?

착각할 정도로 엄만 정말 재주가 많았다.

그런 엄마가 커리어우먼이 아니라

이렇게 정주부라는게 아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엄만 늘 그랬다.


"엄만 이렇게 우리 연우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추억을 만드는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엄마의 꿈은 엄마가 되는 거였거든.

엄만 연우에게 추억통장을 만들어주고 싶어.

연우가 힘들때면 언제나 찾아쓸 수 있는..."


엄마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웃는 얼굴_

그래서인지 나도 늘 행복했다.


엄마가 구워준 핫케이크를

먹으면서,


"엄마~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린이예요~" 라고 말했

엄마는 종종 이야기 하곤 했다.


상남자에 범접하기 힘든 외모 뒤에는

이렇게

엄마의 따뜻하고 밝은 심성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이런 외모 덕에 오해를 살때도 있었지만

실은 벌레 한마리도 서워서 못잡고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볼때면

베개를 끌어 안고 울 정도로 마음이

여렸다. 


소희는 이런 내게 끌렸다고 했다.


소희랑 사귀고 싶어서 극장 데이트를

했던 날 소희 옆에서 흐느끼며 울던

 모습을 보고는 짝 놀랐다고 했다.


그런 반전 매력에 푹 빠졌대나 뭐래나.




오키나와_엄마와 나의 첫 여행지였다.

엄만 연우가 이제 많이 컸으니 세계 곳곳을

누비고 싶다고 말했다.


그 첫 여행이 오키나와였다.

엄마는 바다를 좋아했다.


"에머랄드빛 바다가 있잖아~"

엄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첫 날 우린 우미가지 테라스에 갔다.

작은 그리스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리스의 산토리니가 그대로 있었다.

온통 새하얀 상점가가 층층이,

이국적인 풍경과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

그리고 공항이 가까워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멋진 장면까지도

볼 수 있었다.


"엄마~나 사진 찍고싶어~"


엄만 카메라를 내 손에 쥐어 주면서

찍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려할때

노을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들이

우리의 가슴을 붉게 물들였다.


가슴이 두근두근을 넘어

벌렁벌렁 거렸다.


그렇게 나의 7살 가을이

예쁘게 채색되어 가고 있었다.



엄만 잠시 눈을 비볐다.

난 엄마가 왜 그랬는지는 어린 나이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가 왜 그랬는지...


여행 둘째날, 우린_

국제거리로 향했다.


국제거리는 상점가들이 즐비해 있어서

구경거리가 정말 많았다.


난 이것 저것 구경하면서 신이나 있었다.

그런 나를 엄만 흐뭇하게 바라보며

마음껏 구경하자며 호흡을 같이 했다.


한참을 걷고나서 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자 엄만 내 배낭을

들어주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연우야~~~저기 하늘색 간판 보이지?

우리 거기 가볼까?"


"응~"


가게 앞에 다다르자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할머니 한분이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일본어를 알지 못했어도

가게  유리창에 대문짝만하게 붙은

사진으로 팥빙수 집이라는 걸 알았다.


"팥빙수다~~~너무 신나~~~"


엄마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서

들어가서 귓속말로 테이블 앞에

앉으라고 내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가게 안에 신기한 물건들이

많아서 이리저리 휘젓고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엄마는 몇번이고 주의를

줬지만 끝내는 포기한듯 했다.




그때였다.

다시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내 또래

소년과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셨다.


나는 눈앞에서 처음보는 피부색의

소년에게 계속해서 시선이 갔다.


그게 바로 존이었다.

존도 계속 나를 봤고,

서로 눈이 계속 마주치니까

둘다 누가 먼저랄것 없이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그러곤 존이 크로아티아어로

뭐라고 했는데,  엄마가 그 말을

알아듣고는 내이름이 연우라고

알려줬다. 나는 내이름을 물었다는 걸

눈치채고서 엄마에게 존의 이름도

알고싶다고 물어봐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 얼굴을 장난끼어린

얼굴로 바라보며


"존" 이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나는 계속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존은 굉장히 활발해서 내손을 잡고는

보드게임 하는 테이블로 이끌었다.

우리는 엄마와 할머니가 팥빙수를

드시며 이야기를 나눌 동안 계속

보드게임을 했다.


"엄마~~~목 말라요~~~"


주인 할머니는 어린이 친구들은

이걸 먹어보라며,

시원한 파인애플 주스를 만들어 주셨다.

그 파인애플 주스가 어찌나 맛있고

시원한지 간이 지나도 계속

그 맛 생각났다.

그래서 가끔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

주곤 했는데, 역시 그 맛은 안났다.

할머니 주스는 더 달았다.

엄마의 음식에는 짜고 달게 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단짠제로

법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몰래 간식을 많이도

사먹었지만~훗~


존이 할머니랑 가려할때

난 바닥에 철푸덕 앉아서 울었다.

존과 헤어지는게 너무 아쉬웠다.

엄마는 존의 할머니에게 존과

연우가 연락할 방법이 없을지

정중하게 여쭈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대단했다.

내가 외국인 친구와 사귈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으니 말이다.

엄마의 용기가 있었기에

존과 내가 지금까지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식당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셨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존에게 편지를

썼고, 그걸 계기로 존과 내가 커가면서

인터넷으로 챗도 하고 메신져로도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존과 화상통화를 하면 시간 가는 

몰랐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존과 통화했다.

그리고 방학때면 존을

만나러 크로아티아 갔다.

 존의 삼촌이 공항까지

데리러 왔고, 방학내내 할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존과 함께 바닷가에서 놀았다.

그러고나서 집에 돌아가면

엄만 크로아티아 사람이 다됐다며

까매진 피부에 놀라곤 하셨다.



존은 내게 있어서 영혼의 단짝이다.

나는 늘 방학이 기다려졌다.



존은 아무말도 묻지 않았다.


내가 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는지

소희랑은 왜 떨어져 있는지...

그저 나를 웃게 해주려고 재밌는

농담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존_나 사진 찍을때 너무 행복해_

좋아하는게 뭔지 몰라서 그냥 최고가

되려고만 했는데, 이젠 알게 됐어."


존은 내 어깨를 가만히 그러나

힘주어 감쌌다.


"연우_난 널 믿어.

너의 꿈을 응원할거야.

언제나...

할머니가 지금 여기 계셨다면

아마도 널 꽉 안아주면서 잘했다고

하실텐데..."


존의 할머니는 2년전 돌아가셨다.

존은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았기에

할머니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다.


우린 둘다 마음이 통했는지

서로 끌어안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도 많이 보고싶어_그리고

할머니가 해주시던 요리가

너무 그리워."


우린 밤이 깊어 가도록 계속 얘기를

나눴다.


하늘의 별이 유난히 빛났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슬며시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벌써 해가 저만치 가있었다.


"내가 얼마나 잔거야? 존?"


"피곤했을거야~더 자~

난 카페에 가봐야 해서_식탁에

아침 차려뒀어~일어나면 먹어~"

 

조용히 문이 닫히고,

이요르가 머리 맡에 와서

 볼을 간지럽혔다.


"이요르~아침 먹고 같이 산책 갈까?"


이요르는 기분이 좋은지 펄쩍펄쩍 뛰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넘기고 식탁에

앉았다.


"이건..."


할머니가 해주시던 화덕요리다.

할머니는 주로 돼지고기를 쓰셨는데,

나는 그 고기보다 감자를 더 좋아했다.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역시나 맛있었다.

존은 할머니의 요리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할머니가 식탁 맞은편에 앉아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평소 아침은 가볍게 먹었지만

너무 맛있어서 한접시를 뚝딱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 카메라를 챙겨서 할머니의

주방에 갔다. 화덕과 할머니가 쓰던

도구들 조리대가 다 그대로 있었다.


계속 되는 셔터소리_

나는 카메라와 하나가 되었고,

할머니의 부엌은 프레임 속에서

한폭의 그림이 되었다.

할머니의 애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때였다.

무언가가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할머니의 부엌이란 타이틀로

전세계의 부엌을 찍어보자!


나는 우선 크로아티아의 시골마을을

돌며 할머니의 부엌을 찾았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흔쾌히 부엌을

내주었다. 어떤 분들은 사진작가

냐면서 당신들도 찍어주면 안되냐면서

포즈를 취하기도 하셨다.

또 어떤 분들은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붙드시는 분들도 계셨다.

존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운전기사를

자청했고, 할머니들 곁에서 분위기

메이커가 되주었다.


그 후로도 나는 세계 곳곳의 부엌을

찍으러 다녔다. 몇년간 번돈으로

아껴쓰면서 경비는 충분했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전시회를 열었다.



할머니의 부엌이란 이름으로_

그리고 메인사진에는 역시

존의 할머니의 부엌 사진과

존의 할머니 사진을 걸었다.


주름이 있어도 고왔던 할머니 얼굴_

할머니의 웃는 얼굴이 전시회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전시회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물론 이건 친구들과 지인들의 공이

컸다. 너도 나도 홍보해 준다며

도왔다.



그렇게 전시회의 마지막 날_


전시회가 끝날 무렵

어디선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의 템포기 왠지 모르게

귀에 익숙했다.


소희였다.


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달려갔다.


템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소희와 나는 꽉 끌어안고,

서로의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쥐며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된거야?"


"내가 당연히 와야지~"


"못본새 더 예뻐졌네~불안하게..."


"칫~ 바보~ 알잖아~

너밖에 없는거..."


소희의 두볼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다.


난 거침없이 하지만 부드럽게

소희에게 입맞춤했다.


"이 완전히 돌아온 거야?"


"그럼_내가 있을 곳은 바로 네 옆인걸~"


나는 소희를 번쩍 들어 안아서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계속 입맞춤했다.





소희는 글을 썼다.


벌써 두번째 작품 연재 중이다.

첫 작품에 소희가 그동안 어디를

다녔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 담았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두달 뒤면 우리는 웨딩마치를 올린다.

2년간의 기다림_

나는 한국에서 웨딩마치를 올리고

크로아티아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두브로브니크로_

물론 존도 만나야지.


그리고 편지 한통을 보냈다.

할아버지에게_

할머니의 부엌과 소희를

담은 사진을_



사진 속 소희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소희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프레임 안에 전부_


할아버지를 추억하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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