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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픈손가락 Aug 30. 2022

이제 네 꿈을 노래해

아픈 손가락의 소설 이야기

#1 대책 없는 우리 형


타다닥 타닥 타타타닥닥, 키보드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댄다. 마감시간에 쫓겨 글을 쓴지 벌써 세 시간째, 올려다본 시계는 2시를 가리켰고, 마감까지는 앞으로 3시간이 남았다. 지원은 몸이 찌뿌둥했다. 깍지 낀 손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자 굳었던 근육이 펴지면서 얕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유가 좀 생기자 야릇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다리도 저리고 막 화장실에 가려던 참에 삘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어쩐 일이래?’

지원에게 ‘대책 없는 형’으로 불리는 재훈의 전화였다.

반가움 반, 의아함 반으로 망설이는 사이, 애꿎은 전화 벨 소리만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형이 어쩐 일 이래애~ 잘 지내는겨? 가게는?”

지원은 연락도 없던 형이 얄미워 말을 배배 꼬았다.


“그렇지 뭐 ..” 말 끝을 흐리는 걸 보니 또 장사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그냥 안부 전화야? 아님 ..,” 재훈이 지원의 말을 잘랐다.

“응 다른 게 아니라 여름 장사는 이제 끝났고, 겨울 장사를 좀 준비해야 하는데, 작년 겨울에 죽 쒔거든. 니가 메뉴 구성 좀 도와 줄 수 없을까 해서 ..”

지원은 말 문이 막혔다. 조언을 몇 년째 해주고 있는데, 계속 고집만 부리고 따라하지 않더니 이번엔 무슨 일인가 싶었다.

‘뭔 바람이 분 걸까?’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많이 어렵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뭔 일 있어?” 걱정스럽게 지원이 물었다.

“내일 내가 갈게. 그럼. 몇 시에 한가해?”

평소 같지 않은 형의 말투며, 목소리가 자꾸 마음에 걸려서 꼭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아니 .., 아니야 ..,” 재훈은 지원이 온다는 말을 막아 섰다.

“내일부터 잠깐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한 달 정도 .., 허리가 너무 아파서 물리치료를 예약 했어. 한달 뒤에 문은 다시 열거야.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겨울 메뉴를 보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번 기회가 아니면 힘들 것 같아 전화한 거야.”


지원은 화가 났다.

“배가 불렀구먼. 아니 음식점을 한 달씩이나 문 닫으면 어쩌려고~ 형 돈 많이 벌었나 보네.”

속으론 걱정하면서 모진 말을 또 내뱉고 말았다.

사실 모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이제 영업 삼 년째라 제법 단골도 늘었을 텐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씩이나 문을 닫는다니 제정신인가 싶었다. 당장 입원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구해 쓰면서 통원치료를 하면 될 텐데, 재훈이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하는 매장을 오픈할 때도 형은 지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멀쩡한 대로변 간판 빨 잘 받는 곳으로 하랬더니 월세가 십만 원 싸다고 굳이 그 대로변 건물을 뒤로 돌아가 지하 주차장 입구 옆 음침한 곳을 택해 계약했다. 참 어이가 없었다.


“..., 이미 그렇게 결정한 걸 뭐 .., 병원도 이미 예약했고, 벌써 며칠 전부터 한 달간 임시 휴업한다고 공지도 붙였어 ..,” 지원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제정신이야?

가게를 한 달씩?’ 속으로 한숨이 새어 나오고 울화통이 터졌다. 누가 저 고집을 말릴 것인가.

“치료 끝나고 전화할 테니까 괜찮은 메뉴 좀 찾아봐 주라. 그거 부탁하려고 전화했어. 이번엔 꼭 니가 하라는 대로 할게. 진짜야, 진짜로 약속해.”

지원은 얼굴을 찡그렸다.


재훈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애정을 갖고 나름 어렵게 시간을 내어 조언해주면, 언제나 현실의 벽과 주어진 상황을 핑계 삼았다. 그리고 결국 본인의 고집대로 모든 것을 결정했다. 따라 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매번 조언을 듣는지 의문이었다. 재훈이 자신의 조언을 액운 쫓는 일종의 부적으로 여기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번에도 분명 그럴 것이다. 아예 확신까지 들었다. 그래도 제법 이 업계에서 높은 컨설팅료를 받는 지원의 조언을 그렇게 헌 신짝 취급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제 어렵게 자리 잡아가는 식당을 물리치료 받는 단 핑계로 한 달씩이나 문을 닫는다고? 재훈이 형은 정말 못 말린다. 정말 ‘대책 없는 형’이다.


#2 정신없이 바쁜 일상


제법 많은 손님으로 북적이는 카페 안,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 찬 작디작은 공간, 뭐가 그리 좋은 지 깔깔대며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 대는 사람, 혼자 노트북 켜고 뭔가 부지런히 타이핑을 치는 사람, 누굴 기다리는지 손목시계와 출입구를 연신 번갈아 보는 사람까지 각자 저마다의 일들로 분주해 보였다. 누굴 기다리는 듯 고개 들어 잠시 카페를 둘러보던 지원은 다시 고개 숙여 책 읽었다.


카페 출입문을 열고 한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든다. 사내는 두리번거리며 바삐 누군가를 찾았다. 이내 혼자 책을 읽고 앉아 있는 지원을 보자 사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먼저 와 계셨네요? 조금 늦었습니다.”

뛰다시피 걸어온 사내가 지원에게 말을 건다.

“아~ 장대표님 이군요. 반갑습니다. 이지원입니다.”

일어서서 먼저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금 일찍 출발했는데, 다 와서 고생했습니다. 주변에 공사가 있나 봐요.”

“아~ 그러셨군요. 아마 터미널 신축 공사 때문일 거예요. 앉으시죠. 차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바지 허리춤에서 지갑을 먼저 꺼내며 지원이 묻는다.

아차 싶었는지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원을 만류했다.

“아닙니다. 제가 사겠습니다.”

지원은 못 이기는 척 사내의 만류를 뿌리치지 않았다.

“뭐로 드시겠습니까?”

“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하겠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돌아온 사내가 웃으면서 지원에게 말을 건다.

“바쁘신 분인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사과드립니다.”

“아니, 아닙니다.”

인사치레였다. 사내도 알았을 것이다. 지원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별로다.

“오늘 뵙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전화로 말씀드렸듯이 지금 하는 사업을 프랜차이즈화하고 싶어서예요. 그런데 제가 이쪽은 거의 문외한이라..,”

뒤끝을 흐리는 말 모양새만 그렇지 사내는 자신감이 넘쳐도 너무 넘쳐 보였다.

“운영하고 계신 매장이 두 곳이라고 하셨죠?”

“네, 청주점과 세종점 두 곳입니다.”

손목을 돌려 시계를 보던 지원이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한 시간 반을 빼 뒀던 약속에 사내가 45분이나 늦게 나타났으니 몹시 서둘러야 했다.

“제가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아~네.., 면목이 없습니다.”

사내는 멋쩍게 웃었고, 마음이 바쁜 지원은 상관없다는 듯 무시하고 말했다.

“지금 하시는 매장 두 곳이 왜 장사가 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사내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다.

“글쎄요..,”

짧은 대답과는 달리 사내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졌다. 지원은 사내의 생각이 정리되길 잠시 기다렸다가 처음 겪는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프랜차이즈, 겉으론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사업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이젠 장사가 아니라 사업을 해야 한단 점이죠. 과거 장사라는 관점에서 해 오던 것들을 이젠 사업이란 관점으로 반드시 전환해야 합니다. 성패가 거기 달려 있으니까요. 장사를 할 땐 굳이 몰라도 되는 매장이 잘 되는 이유와 원인을 사업을 하면서는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음식 맛 때문인지, 서비스 혹은 그 외 다른 조건들 때문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죠. 이는 판매할 상품이나 서비스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빈 매장을 먼저 오픈하자 떼쓰는 황당함과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지원의 말은 단호했으며 확고했다. 뭔가에 세게 얻어맞은 듯 멍해진 표정으로 사내는 연신 미간을 씰룩거렸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맹 사업이란 대표님이 갖고 있는 특출 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가맹점주들에게 공유하고 그 대가를 받는 일입니다. 가맹본부 대표가 직접 하면 100퍼센트던 효율도 가맹점주가 하면 그대로 따라하는데도 80퍼센트 밖에 나질 않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까 프랜차이즈의 성공은 프랜차이즈화 상품의 가치를 80퍼센트로 줄여도 경쟁력을 갖느냐 에 달려 있는 겁니다.”

둘 사이엔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건 반대편의 사내였다.

“듣고 보니 제가 중요한 것을 많이 놓치고 있었군요. 생각이 많아집니다.”

시간이 촉박해 지원은 사내의 심리 상태까지 돌볼 겨를이 없었다.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 반 이상은 자신이 가진 진짜 상품을 모릅니다. 그러니 가맹사업화 성공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그 상품을 찾아 주기도 하지만 품이 워낙 많이 드는 일이라 높은 비용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또, 사업화 하기에 애매한 상품을 가진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통계수치나 빅데이터에 의존하기 보다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힌 육감, 직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민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당장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막막할 뿐인 거죠.”

사내는 그렇게 지원의 이야기를 십 오분 정도 더 듣더니 심각하고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커피숍을 나섰다.


이번 주만 해도 지원은 이런 미팅이 두 번째다. 그들은 광고를 보고 오기도 하고, 아는 지인의 소개로 오기도 하는데, 정확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소개로 오는 사람이 두 배는 많은 것 같았다. 여기서 컨설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대략 20퍼센트, 마음먹는다면 더 수주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 때문에 3건 이상을 동시에 받는 것은 힘들었다.


지원이 ‘대책 없는 형’이라 부르는 재훈과의 인연도 이런 컨설팅 때문이었다. ‘대책 없는 형’ 답게  재훈은 멀쩡한 은행을 다니다 매일 현금 다발 들고 오는 친구의 돈 다발 진원지가 궁금해졌고, 그 진원지가 만두 가게 란 사실을 알게 된 후 용감하게 은행을 때려 쳤단다. 그렇게 재훈은 은행원 출신의 만두 빗는 기술자가 됐다. 도대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지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후 형과 지원의 첫 만남은 그가 만두 빗는 기술에 도가 텄을 때쯤 이뤄졌다. 재훈이 꿈꾸던 대로 고향에 만두 가게를 냈지만 매출은 신통치 않았고, 그나마 여름엔 좀 낫다가 겨울이면 초주검인 상태가 반복됐다. 지원은 만두가게 이름이 ‘청실홍실’인 것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혼수 예단 전문점도 아니고, 만두 가게가 청실홍실이 대체 뭐람’

차라리 ‘재훈만두’가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지원이 평가한 재훈의 가게는 마케팅부터 기획, 계절 메뉴의 부재까지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비록 한 번도 지원이 해준 조언을 따라 하진 않았지만 그것을 인연으로 그 둘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참 지기로 지냈다. 매번 정성 가득 담아 전하는 진심 어린 조언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형이었지만 지원은 그가 좋았다. 가장 어렵고 아플 때 사귄 친구가 진짜 친구라 했는데 지원에겐 재훈이 그런 친구이며 형이었다. 정말 대책만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 패닉


‘대체 이 놈의 사무실은 어디서 이렇게 찬 바람이 들어오는 거야?’

지원은 작년 이맘때 하던 욕을 올해도 어김없이 해댔다.

창틀도 제법 두꺼운 샤시로 갈았고, 난로 놓을 때 뚫는 연통 구멍도 없는데 대체 겨울만 되면 어디서 무릎 밑으로 냉기가 흘러 들어왔다. 미칠 노릇이었다. 탕비실에서 커피 한 잔을 뽑은 지원이 자리로 돌아와 매번 하는 일은 무릎 담요를 빈틈없이 챙기는 일이었다. 무릎 도가니가 얼어붙어 삐걱 거리는 상황을 만들기 싫으면 어쩔 수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지원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탕비실 간 사이 놓친 것은 없는지 살피려는 것이다. 부재중 온 메시지는 없나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더듬고 있는데, 어제 이맘때쯤 가게 문을 열었나 싶어 재훈에게 전화를 걸었던 생각이 났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걸었는데 받질 않았었다. 그래서 지원은 재훈 형이 가게 문을 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전화를 건 시간은 점심 시간이었고, 신호가 한참 가는데도 받지 않는 것을 보면 홀로 또 주방을 이리저리 분주히 뛰어 다니나 보다 했다.

‘맞아, 그래서 오늘 점심 시간을 피해 전화를 해보기로 했었다. 지금이 몇 시지?’

지원은 뽑아 온 커피를 들고 책상 앞 소파로 걸어가며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 장단에 맞춰 한 모금씩 커피를 들이켰다. 슬리퍼에서 발을 빼 반탁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고, 몸을 소파 깊숙이 기댔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오후 2시 40분, 이제 바쁜 점심 장사는 한숨을 돌릴 시간이다. 지원은 상상했다. 여느 때처럼 가게 앞 파라솔에 앉아 축 처진 어깨로 다리를 활짝 벌리고 담배 피우는 형의 모습을. 피식 웃음이 났다.


딸깍. 전화를 받았다.

“형~지원이야. 가게 문 열었나 보네, 하하.”

전화는 받았는데, 대답이 없다.

“뭐야? 아직도 바빠? 이따가 걸까?”

희미하게 수화기 너머로 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원씨? 저기, 홍재훈씨가 ..,”

‘형수 같은데 ..,’ 지원은 반탁 위에 올렸던 다리를 거둬 들이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직감으로 알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뭐가 이상했다.

“저기요.., 홍재훈씨가 죽었어요.”

지원은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떨어트렸다. 커피 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지원의 바지단을 뜨겁게 물들였지만 뜨겁다고 느끼지 못했다.

“홍재훈씨가 .., 지금 청주 목련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예요. 어제 ..,”

머리가 하얘져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드문드문 몇몇 단어만 뇌리에 와 박혔다. 울음이 몽울져 목구멍을 꽉 막았다. 말도 나오질 않았다. 이후 수화기 너머로 뭐라뭐라 형수가 더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들리지도, 기억나지도 않았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 새 지원은 차를 타고 있었고, 목련 공원 방향으로 속도 내 달리고 있었다. 두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가는 동안 느껴지는 것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슬펐다.


마지막 전화 통화에서 가게를 한 달씩이나 쉰다고, 배가 불렀다고 타박했던 모진 말만 자꾸 생각이 났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멈춰지지 않는 눈물 때문에 기압 높은 곳에라도 오른 듯 고막이 아팠다. 지원의 귀엔 형에게 비아냥거렸던 ‘배불렀네’라는 말만 계속 들렸다.

“미안해, 형. 미안해..,”


눈 쌓인 목련공원 정류장은 지원의 마음처럼 허전하고 쓸쓸했다. 누군가 오고 가는 곳이란 상징이 날을 세운 매서운 겨울 바람은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아팠다. 보냄이 아쉬워 우는 것인지 옷 속을 파고드는 칼 바람 때문에 우는 것인지 지원의 눈에선 자꾸 뜨끈한 눈물이 났다. 잠시 진정된 듯 싶었던 울음은 장례식장 호수를 찾기 위해 훑어보던 안내판에 적힌 형의 이름을 보곤 또 자제력을 잃었다.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워 차마 형의 영정이 모셔진 제단 앞에 설 용기가 나질 않았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다는 것이 그럼 암치료를 위해서였단 말인가. 형이 야속했다. 자꾸 목 놓아 울기만 하는 지원에게 다가온 형수도 지원은 야속했다.

“그렇게 아파 입원했으면 마지막으로 인사라도 하게 해줘야지 이러는 게 어딨어요. 흐흐흑”

아팠다. 미련이 그리고 후회가 사람의 마음을 이리도 아프게 하는 건 줄 미처 몰랐다.


가만히 지원의 옆자리에 앉은 형수는 담담하게 형의 마지막을 들려줬다.

처음엔 정말 허리가 아파 물리치료를 예약해 받았노라고, 하지만 나으란 허리는 안 낫고, 엄한 살만 쪽쪽 빠지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고, 그래서 뒤늦게 한 암 검사 결과, 간암 말기란 소리를 들었고, 그땐 정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촛농처럼 떨어지는 눈물, 콧물을 훔치며 지원은 형을 생각했다. 형수의 말을 듣고 보니 어제 갑자기 생각나 전화를 걸었을 때가 형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그냥 말없이 가기가 아쉬워 그렇게 나를 불렀나 보다 란 생각이 들자 또 다시 고개가 숙여졌다.

“어차피 그럴 거면 하루 더 빨리 걸라 하지 그랬어. 그럼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잖아. 고맙다고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인생 막장에 떨어져 힘들었을 때 형이 참 많이 위로가 됐었다는 마음의 말을 꼭 전하고 싶었는데..,”

이젠 정말 그럴 기회가 없어졌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 꺼내지 못했던 마음의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겨자 한 숟갈을 그냥 삼킨 것처럼 콧등이 아팠다. 지원은 찡그린 얼굴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진정이 됐다고 믿었던 오열이 다시 터진 건 저 먼발치에서 걸어오는 형의 큰 딸아이를 본 순간이었다. 지원의 큰 딸과 동갑, 검은 상복 소매를 비집고 나온 작고 하얀 손으로 웃고 있는 형의 영정을 든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알게 했다.


지원은 이제 더 이상 그곳에서 슬픔을 버틸 자신이 없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원은 보고 말았다. 형의 영정 사진은 웃고 있었지만 형의 영정을 든 가녀린 딸아이의 작고 하얀 손이 미세하게 떨고 있다는 것을.


#4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단순히 공허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허무가 지원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미친 사람처럼 깔깔대다가도 순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고, 열심히 살고 싶다는 삶의 의욕마저 생기지 않았다. 죽음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온 마음을 덮쳤다. 지원은 자신이 정상 상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형을 보내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나, 단순히 우울하단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름 자신이 조금 나아졌다고 판단했을 무렵이었다. 잠들기 전 꼭 샤워를 하는 지원이 여느 날처럼 샤워 꼭지를 머리 위로 올리고 세찬 물줄기 속으로 눈을 감고 들어갔을 때였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순간 까만 두려움이 몰려왔고, 흐르는 물줄기가 폭포 소리만큼 거대하게 들렸다. 턱 막혀진 숨은 쉬어지지 않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눈을 뜨려 했지만 눈도 떠지지 않았다. 지원은 살기 위해 뒷걸음질을 쳤다. 유일한 살길은 물줄기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비명을 질러댔지만, 구멍 뚫린 파이프처럼 바람 새는 소리만 쉭쉭 거렸다.


온 힘을 다해 간신히 물줄기에서 벗어나자 지원은 맥이 탁 풀려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미친듯이 얼굴을 가리며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걷어 냈다. 미친듯이 머리가 머금은 물기도 털어 냈다. 그제야 간신히 어둠의 공포가 뒤로 물어나 앉았고, 눈이 떠지며 숨이 쉬어졌다.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지원은 욕실 바닥에 쓰러져 얼굴을 묻었다. 눈에서 타일 바닥으로 검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거실 소파 깊숙이 몸을 뉘인 지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축 처진 그의 몸에는 진기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것만 같았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생각할 기운마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다음 한 마디가 계속 입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건가?”

“이렇게 살아도 정말 되나?”


지원은 얼마 후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자신이 갑자기 아픈 게 아니란 것쯤은 알았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그에게 두려움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했다. 다만, 그동안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자기 안에 이미 살고 있는 두려움을 애써 모른 척하고 지내다 병이 난 거라고 믿었다. 아닌 것처럼, 괜찮은 것처럼, 견뎌 낼 수 있을 것처럼. 그러다 형의 죽음이 도화선의 불씨가 됐을 것이다. 이미 시한폭탄을 품었는데,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졌으니 폭발할 수 밖에. 당연한 일이었다.


지원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살고 싶었다. 지원은 이번에도 책을 찾았다. 사업에 실패해 인생 막장까지 흘러 갔을 때 나를 살려준 책, 노숙을 이어가면서도 놓지 않았던 그 책에 다시 한번 기대보기로 했다. 지원은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이번엔 뭔가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될거란 사실을. 지난 번에도 지원은 막장을 벗어나기 위해 3년간 1천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매일 한 개 이상의 글을 썼다. 이번에도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모두 신통치 않았고, 샤워 공포증은 여전히 계속됐다. 치료도 병행하긴 했지만 증세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뭐가 문제일까. 노력해도 속 시원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지원에게는 자주 찾는 힐링 장소가 하나 있었다. 슬플 때 가기도 하고, 뭔가 강한 결심이 필요할 때도 그곳을 찾았다.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배배 꼬인 문제가 있을 땐 캔 맥주를 들고 갔다. 지원은 그날 맥주 2캔을 사서 그곳으로 향했다.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는 저녁 야경이 아주 볼만했다. 그렇다고 엄청 대단한 것은 아니어서 생각보다 찾는 사람이 적은 것도 지원에겐 장점이었다. 그런 점이 맘에 들어 지원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할 땐 그곳을 자주 찾았다.


지원은 그날도 희끗희끗 눈 덮인 지붕들이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딸깍, 꼴깍꼴깍. 날뛰던 생각이 맥주 찬 기운 덕에 얼어붙는다.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기껏 얻은 것이 공황장애라니 터져 나오는 헛웃음 지으며 지원은 남은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젠장 ..,’


지원이 다 먹은 맥주 캔을 찌그러트리는 사이 조용한 적막을 깨고 누군가 등 뒤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오늘 혼자 이곳을 만끽하긴 글렀군’ 지원은 남은 맥주나 마저 마시고 일어서야겠단 생각을 했다. 오늘의 이 참신한 방해꾼이 누군가 싶어 뒤돌아 본 지원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다가오는 삼십대 중반 여자의 손엔 6개들이 캔맥주 캐리어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난 두개인데, 여섯개? 대체 고민이 얼마나 많다는거야?’


지원이 앉은 벤치는 바닥에 다리가 박힌 고정식 2인용이었다.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달랑 하나라 이곳을 찾은 목적이 같다면 뜻하지 않은 합석을 해야 하는데 ..,

털썩, 지원의 생각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벤치 빈 곳에 꺼리김없이 걸터 앉아 맥주 캔부터 땄다.그런 그녀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녀가 이 곳의 주인이고, 지원은 손님인 것 같았다. ‘이 상황은 뭐지?’ 지원은 오른쪽에 남은 마지막 캔 하나를 바라봤다. 이걸 따야 하나 아니면 그냥 생각을 멈추고 여기서 일어나 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 지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이미 이 곳의 주인이 된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방해해서”

“..,” 지원은 뭐라 답을 해야할지 몰랐다.

방해받은 것은 사실이니 그렇다고 하면 될까?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지나친 솔직함은 때론 자신을 향한 화살이 되는 법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원은 부답(不答)만이 답이라고 판단했다.

“그쪽은 뭐가 그리 꽉 막혔습니까?” 기다리던 답이 없자 그녀가 또 먼저 말을 건넨다. 뜸을 조금 들이다가 지원도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파요. 마음이. 병이 든 걸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이번에도 부답이면 결례라고 생각했다.

“..,” 이번엔 그녀가 말을 못했다. 대꾸할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공황장애라는 군요. 얼마전 가깝게 지내던 형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 이어지는 대답도 예상치 못했고, 그녀는 이번에도 말을 하지 못했다.

“간암 말기인 줄도 모르고, 허리가 아파 물리치료만 받다가 뒤늦게 진단받고 한 달만에 ..,”

지원은 형의 죽음 이후 ‘죽음’이란 그림자가 자신에게 달라 붙었고,

지금은 두려움과 공포로 자신이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듣던 여자가 성에 낀 맥주 캔만 만지작 거리다 입을 뗐다.

“저도 겪었습니다. 우연치고는 공교롭네요. 가깝게 지내던 주변 사람을 잃는 고통, 저도 압니다.”

지원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힘들었습니다. 벗어나는데 ..,”

여자는 어렵게 말을 끝내고 지원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는 5년 전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다고 했다. 사고였고, 출장을 가던 길이었단다. 남편은 그녀가 싸준 여행 가방을 채 열어보지도 못했다. 사고 후 남편 없이 돌아온 여행 가방을 유품으로 받아 든 순간,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아픔을 그녀는 너무나 담담히 지원에게 이야기 해줬다.


그녀는 출장가기 며칠 전 빛 바랜 속옷이 안쓰러워 같은 방 쓰는 동료에게 창피 당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큰 맘 먹고 비싼 속옷을 사줬다 했다. 그렇게 사준 뜯지도 않은 그 비싼 속옷을 다시 받아 들고서야 비로소 남편이 이제 곁에 없음을 실감했다는 말을 끝으로 그녀는 끝내 고개를 떨궜다. 오늘이 그가 떠난지 딱 5년 되는 날이고, 오늘따라 산책 삼아 자주 찾던 이곳이 몹시 그리워 왔다고 했다. 지원도 터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남편의 죽음, 지원이 겪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무거웠을 그 고통에서 그녀는 대체 어떻게 벗어났을까? 그 방법이라면 지원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캔 더 하실래요?”

“고맙습니다.” 지원은 그녀가 건네주는 맥주를 받아서 땄다. 딸깍.

“미친듯이 일을 했습니다. 있던 건 당연히 했고, 없던 일까지 만들어서 했죠.”

“..,”

“남편 생각이 날 때마다 일을 했어요. 풋, 그 덕에 돈도 좀 벌었죠. 한동안 그렇게 일에 미쳐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픈 것이 나아지진 않더군요. 치료 방법이 아니었던거죠. 일에 미치는 일은 그냥 고통을 잠시 잊게만 해줬던 겁니다. 조금 한가하거나 여유로워지면 슬픔은 족쇄를 풀고 금방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그럼 뾰족한 방법이란 없는 거군요 ..,”

뭔가 있을 것만 같아 잔뜩 기대를 했던 지원은 금세 풀이 죽었다.

그녀는 뜸을 좀 들인 후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치료는 시간만 끈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죠. 덮어 쓰는 것보다는 뭔가 새롭게 만들어 쓰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에 미쳐 잊으려고 하는 건 간직하게 된 슬픔을 그냥 덮어 버리려는 것과 같은 거였죠.”

그녀는 마지막 남은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때 한창 유행하던 미라클 모닝이란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금 덜 자고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해 기적을 만드는 자기 계발 운동이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쯤이니 전 그걸 적극적으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작은 결심이 하나가 치료는 물론 제 인생까지 바꿀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미라클 모닝이요 ..,?” 지원도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았다.

“그래요. 기적의 아침이요. 처음 하는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는 일을 미라클 모닝으로 아는데, 그건 미라클 모닝의 진짜 가치를 모르는 거예요. 진짜는 ‘지금’을 사는거죠. 과거도 미래도 다 버리고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 그게 참 미라클 모닝 입니다. 그게 진짜 미라클 모닝이 가리키는 삶의 방향이에요.”

“지금이라 ..,” 지원도 어느 책에서 읽어 본 것 같았다.

“맞아요. 지금이요. 우린 지금을 사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제가 남편을 잃고 가장 후회한 게 뭔 줄 아세요? 왜 진작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 하지 못했을까, 빛 바랜 속옷 대신 새 속옷을 챙겨줬더라면, 출장 가기 전 그냥 보내지 말고 꼭 한 번 더 안아줄 걸, 사랑한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해서 출장을 보낼 껄, 주로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죠.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아주 쉽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린 그걸 못하고 지나쳐요. 그러니까 우린 지금을 살면서 결국 지금을 사는 게 아닌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죠. 뭔가에 쫓기고, 엉뚱한 것을 쫓아 지금을 자꾸 놓치는 겁니다. 문제는 그거 예요. 그래서 우리가 아픈 겁니다.”

지원은 그때 알았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지금 자신이 어디가 고장나 아픈 것인지 알았다.


지원이 내린 결론은 후회였다. 그녀의 남편도, 지원의 형도 너무 갑작스럽게 그들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남긴 후회 덫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지금을 살아야 하는데, 후회가 족쇄 되어 그들을 과거에 묶어 버린 것이었다. 멀쩡하게 지금을 살다 가도 ‘후회’의 기억이 되살아나면 그들은 지금을 버리고 과거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과거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잊으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을 살라는 말이다. 지금을 살라는데 왜 자꾸 과거를 지우려고만 하는가. 과거를 지우는 일 말고, 우린 지금을 살아야 한다. 지나버린 과거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열심히 지금을 살아서 자꾸 멀어지게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시간은 지금과 지금이 연속해 만들어진 미래 뿐이다. 그러니 어찌 할 수 없는 과거에 괜한 기대를 걸지 마라.


그 깨달음이 있은 후 부터 지원은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1059일, 쉽지만은 않은 기록이었다. 미라클 모닝을 제대로 해보기 위해 지원은 술을 끊었고, 건강 관리를 시작했다. 잠의 질을 높여 짧은 잠에도 일상이 지장받지 않도록 수면 과학을 공부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미라클 모닝을 습관화화 하려고 노력했다.


지원은 1059일만에 전망대를 다시 찾았다. 올려다 본 하늘이 별들로 반짝인다. 전망대 최고의 명당 벤치도 아직 그대로였다. 지원은 늘 앉던 자세로 벤치에 기대 야경을 그윽하게 바라봤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를 살던 지원이, 지금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축복이다.


지원은 그 날의 만남을 생각했다. 지원을 살린 인연을 만나게 됐던 그 날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서 알았다. 그 날의 일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는 사실을. 왜 하필, 그날,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인연이 나타나 미라클 모닝과 지원을 맺어 줬을까. 어떻게 그리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언뜻봐도 범상치 않은 포스의 그녀가 자신에게 어떻게 그리 솔직할 수 있었는지 그건 우연이 아니라 형이 보내준 일종의 구원 메시지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손은 어느새 손 때 묻은 벤치를 그립게 쓰다듬었다. 지원은 두 발에 힘을 잔뜩 줘 힘차게 벤치에서 벌떡 일어섰다. 코끝이 찡했다. 고개를 치켜 들어 흐르려는 눈물을 막는다. 흐릿하게 보이는 별 사이로 뿌얘진 환영이 겹치자 형의 얼굴 같은 것이 보였다.


“형 나 좀 보고 있나? 나 잘하고 있는거 맞지?”

돌아 나오면서 손을 높이 하늘로 들어 흔들었다.

“나 간다 형!”

그렇게 시내 야경을 뒤로 하고 걸어 나오는 지원의 뒤로 앉았던 벤치 아래에 가지런히 놓인 6캔 들이 종이캐리어가 힐끗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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