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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픈손가락 Aug 31. 2022

삶에 있어 읽기, 쓰기의 가치와 효용성

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로버트 H 슐러는 이런 말을 했다. “항상 당신이 남긴 것과 앞으로 다가올 남은 것을 바라봐라. 잃은 것은 결코 쳐다보지 마라.”, 앨버튼 하바드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살면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할까 봐 끊임없이 걱정하는 짓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하다.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아서. 여러분은 어떤가? 후회 없이 살고 있는가?


사람들이 말 할 때마다 “이생망, 저생망” 하기에 인터넷에서 이 말을 찾아봤다. "이번 생은 망했습니다."의 줄임 말이었다. 언뜻 장난삼아 하는 아이들의 우스갯소리 같지만 말 뜻 안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뜻이 담겼다. 하지만 새겨 읽어 보면, 그렇게 좋은 말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으니, 돼먹었으니 뭘 해도 안 된다는,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조 섞인 체념과 변명이 담겼니까. 나는 이 말을 재미나 무심코 지나치는 말로도 권하고 싶지 않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로버트 H 슐러의 조언을 기억하는가. “잃은 것은 결코 쳐다보거나 뒤돌아보지 말라.”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 부족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내가 무얼 남겼는지 기억하고, 앞으로 다가올 남은 시간에 무엇을 이뤄낼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아직 우린 늦지 않았다. 신은 우리 가엾은 인간을 속단하는 법이 없다. 인생에 대한 평가도 우리가 사는 마지막 날까지 기다려 비로소 판단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우리 인생이란 노트에 스스로 실패를 적기 전까지 우리 미래 노트는 하얀 백지 상태다. 그 흰 종이에 실패를 쓰든, 성공과 열정을 쓰든 그건 전적으로 당신 자유다. 신도 마지막 날까지 판단을 기다려주겠다는데 우리가 뭐라고 이번 생은 망했다 먼저 섣부른 결론을 내린단 말인가.


섣부른 생각으로 당신의 인생 이번 생도 망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내 뜻대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세상 하나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엔 그걸 좀 만들어보자.


■ 삶에 있어 쓰기의 가치


마실 물도 없이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써야 한다. 그냥 읽고 끝내는 게 아니라 꼭 써야 한다. 책을 읽고 저자의 좋은 생각 그리고 지혜를 엿보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읽기가 자기계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것 만으로 책에 담긴 온전한 생각과 지혜가 다 내 것이 되진 않는다.

'쓴다'라는 동사 안에는 '명확히 한다'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책을 읽고 엿본 저자의 지혜를 소화하고, 발효시켜 명확하게 구체화 하는 작업이 바로 ‘쓰기.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남들은 쉽다고 말하는 일이 내겐  이렇게 어려운지를 쓰다 보면 보인다. 저자 그러니까 ‘생각이었던 것이 비로소 ‘생각으로 정리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거다. 남에게서 얻었으나 지금은 온전히  것이  ‘생각 생긴다.


먼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각 이번에 설명하려는 ‘생각 구분 지어 재정의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각 무심코 떠올린 상념(想念) 시작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두서, 맥락도 없는 잡념(雜念) 말한다. 방심하면 단숨에 머릿속을  채우는 특징이 있다. 우린 스스로를 아주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라 여기지만 검증해 보면 그렇지 않다.  그런 자만은  부질없고 엉뚱한 것임을 깨닫게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보통 하루 5 번씩 바뀐다. 따지면 16초마다  번씩 생각이 바뀌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까 생각은 두서도 맥락 없이 머릿속을 쉽게 장악할  있다. 잠깐만 방심해도 16초에 16  16 전에 일어난 생각의 원류를 찾을  없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감정에 무기력한지 많은 연구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변덕이  끓듯 하는 생각들 속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전략적 생각만 쏙쏙 뽑아내기란 쉽지 않다. ‘쓰기 이럴  특효약이다. 쓰면 뒤죽박죽 됐던 생각이 정리되고, 필요한 내용의 경중(輕重) 따라 순위도 매길  있다.


독서와 쓰기의 효용성


지난 경험에 비춰 보면, 책을 눈으로 읽었을   10퍼센트 정도가 머리에 남았다. 그리고 ‘생각 생겨  맛을 알았을   정도가 머리에 남았고, 실생활에도 조금 도움이 됐다. 하지만 책을 읽는 중간 또는  읽고 나서 얻은 ‘생각 1차로 정리하고, 거기에 갖고 있던 기존 ‘생각들을 얹어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는 ‘쓰기  하고부터 기존에 내가 알던 모든 공식이 무너졌다. 새로운 세상에 개안(開眼)  것이다.


처음  읽기를 시작하는 1단계는 활자를 따라가면서 읽는 그러니까 단순히 ‘정보 얻는 수준의 독서다. 다음 2단계에 접어 들면  안에 담긴 저자의 ‘생각 읽어낼  있게 되고, 마지막 최고 단계인 3단계에 접어 들면, 읽어서 얻어진 저자의 ‘생각  생각을    있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독서의 경지도 ‘쓰기 효용성엔 비할 바가 아니다.


어느 성인도 말했다. 독서의 완성은 ‘쓰기’라고,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맞다. ‘쓰기’는 독서를 통해 얻은 저자의 이론, 경험, 그 안에 담긴 생각을 뽑아내고, 곱씹고, 소화시켜 세상에 내놓는 ‘참 생각’의 결정체다. 우린 이를 위해 '산고'에 비할 만큼 쉽지 않은 시간들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가 소중한 생명의 탄생 앞에 저절로 겸손해지는 것처럼 ‘생각’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 겸손해진다. 자기가 써냈으면서도 자기 것 같지 않은 결과물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다. 결과물을 마주하면 그저 감사할 뿐 다른 생각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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