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픈손가락 Sep 13. 2022

책 읽는다는 건 인류의 위대한 여정을 함께 하는 것

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밥 베인의 ‘빅 히스토리’라는 책이 있다. 빌 게이츠가 지원하는 프로젝트 핵심 강의를 정리한 건데, 천문학과 물리학, 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통합해 우주의 빅뱅부터 미래까지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우리의 생은 영구의 ‘빅 히스토리’에 비하면 '찰나(刹那)'라는 말도 과분할 만큼 짧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의 생이니 우리가 ‘지금’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짐작하기 힘든 그 영구한 역사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일로도 아찔함을 느낀다. 그냥 이대로 티끌보다 못하게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작지만 뭔가 세상에 남길 일을 하고 하고 갈 것인가 결정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런 마음이 들때마다 인연이 닿는 책을 꺼내 읽고, 글을 썼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한 지식, 정보 몇 줄을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그러니 독서를 스스로 그런 하찮은 행위로 격하시키지 마라. 우리가 지금 하는 독서란 앞서 잠깐 언급한 '빅 히스토리'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사 안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 일이니까.


고대 사회에선 글을 주로 점포판에 새겼고, 알파벳의 먼 조상 격인 쐐기 문자는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에 발명됐다. 당시 발명된 문자의 주된 용도는 기록이었다. 곡물의 매매나 토지의 거래, 한 왕조의 승전이나 승려들이 제정한 율령, 별들의 위치, 신께 올리는 기도문 등을 남기는 용도였다. 이후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점토판을 비롯 돌, 밀랍에 새기거나, 나무껍질, 가죽 등을 날카로운 연장으로 긁는 등 재료에 흔적을 남기는 식으로 기록을 해왔다. 물론 안료를 써서 대나무 쪽이나 파피루스 잎, 비단에 글씨를 쓰기도 했다.


아쉬운 건 이걸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기록된 정보를 누구나 소유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비석과 같은 거대한 기념물에 새겨지지 않는 이상 저작물이란 건 특정 소수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세기에서 6세기 사이 중국에서 종이와 먹이 처음으로 발명됐다. 이로 인해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 먹물을 묻힌 다음 종이에 눌러 찍는 목판 인쇄술이 발달하게 됐다. 비로소 저작물이 필요한 수만큼 복제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대중적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런 중국의 목판 인쇄술은 인근 국가와 유럽에 급속히 전파된다. 그러다가 인근 국가인 고려에서 1234년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유럽에서도 1450년경 발견인지 발명인지 모를 일이 일어나면서 유럽 전체를 통틀어 겨우 수만 권에 불과했던 책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과거엔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써야 했기에 금속활자 발명 이전의 책은 현재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소장한 장서량의 10분 1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활자가 발명되고 50년이 지난 1500년경에는 약 1000만 권이란 책을 갖게 됐다.


인류에게 있어 기적은 이때부터 일어난다. 일단 누구나 글자만 알면 필요한 지식을 책으로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된 거다. 정말 마법 같은 일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게 된 거죠. 이후 책을 만드는 대량 인쇄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교육에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인류는 경이적인 일들을 해낸다.


작금의 시대엔 식사 한 끼 비용으로 로마 제국의 흥망과 종의 기원, 꿈의 해석 등 철학, 실용, 과학기술 등 모든 사물의 본질과 진실, 미래에 대해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책이란 걸 구입해 즐길 수 있다. 나아가 책으로부터 촉발된 과학 기술의 발달로 메모리 반도체라는 경이로운 기록물 저장 장치까지 발명됐다.


텍스트로 환산했을 때 1메가 바이트(1MB) 용량에는 500쪽 분량의 책 한 권을 기록할 수 있다. 1기가 바이트(1GB)는 모두 1024MB이므로 모두 512,000쪽 분량의 책, 1024권 분량의 책 내용을 기록 저장할 수 있는 셈이다. IT 시장 조사기관인 IDC는 최근 한 해 동안 인류가 만들어낸 디지털 정보의 총량이 161엑사 바이트(ExaByte)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이게 얼마나 무지막지한 양이냐 하면, 앞서 말씀드린 1기가 바이트의 10억 배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MP3로 녹음한다고 가정했을 때 유사 이래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나눈 대화를 담을 수 있는 양이 바로 1엑사 바이트(1EB)라고 하니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가능하게 한 것도 사실 모두 책이다.


진정한 독서의 가치는 몇 권의 책을 읽어느냐보다 어떤 책을 읽었느냐를 따질 때 빛난다. 이건 삶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인류가 발간한 책과 디지털 정보화로 기록된 정보의 양은 그 엄청나다는 유전자가 갖는 정보의 약 1만배에 달한다. 이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인 두뇌에 기록할 수 있는 정보 양의 약 10배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방대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도 우린 경우 1주일에 책 1권 읽는 것을 버거워한다. 그렇게 읽어봐야 평생을 읽어도 수 천권이 전부일텐데 아직까지 그걸 각성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현대의 도서관이 소장한 장서를 모든 합친 것의 1000분의 1, 디지털 정보로 생산해내는 한 해 양을 100만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이 건립된지도 벌써 2,30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인류사에 책이 없었다면, 다시 말해 문자 기록물이 없었다면 지난 23세기가 얼마나 끔찍하고 길었을까. 만약 인류의 긴 시간동안 세대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정보를 구전으로만 전했다면, 우린 이렇게 진보하진 못했을 것이다. 선대가 경험으로 알아 낸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후대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지금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우린 다음 세대에 빛 나는 희망을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류에게 책은 지금을 있게 한 기적이다. 우린 그럴 능력이 없지만 책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하고, 조상의 지혜를 현재로 빌려 올 수 있다. 이건 비단 시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거리, 인종, 상황 등을 뛰어 넘어 그들이 얻은 깨달음을 책으로, SNS의 콘텐츠로 전달받고 습득한다. 우린 그렇게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지식 체계와 위대한 통찰의 세계를 현세에 재림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류가 만들고, 또 만들어가는 위대한 여정에 합류하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을 읽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