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마드리드 공항에 저녁 9시쯤 도착했다. 아빠가 비행기에서 '스페인은 이 시기 밤 9시에도 환하데,' 라고 해서 '북유럽도 아니고 무슨 소리야'라 했는데 정말이었다. 밤 9시, 밝은 하늘의 마드리드에 착륙했고 10시가 넘자 그제서야 까만 밤이 찾아왔다.
아직은 밝았던 마드리드의 9시. 짐을 찾고 나오니 그제서야 어둑해졌다
첫번째 숙소로 고른 마드리드 에어비앤비는 예약 후 밤 9시 이후 체크인이면 20유로가 추가된다는 말로 날 당황시켰다. 왠지 모를 억울함에 방을 바꿔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후 숙소예약을 해보니 스페인숙소는 그런 경우가 상당했다. 심지어 시간대별로 그 금액이 50유로에 달하거나, 아예 일정시간이 지나면 체크인자체가 불가한 경우가 많았다.
집에서 기상 후 약 23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한 강행군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아빠가 업무전화를 하고(나중에 들어보니 새벽 1, 2시였다고 한다), 엄마는 기내식을 남긴탓인지 배가 고프다며 새벽 3시에 깨서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 덕에 나도 잠을 잔건지 안잔건지 모르는 하룻밤이 되었다. 결국 우리 가족 모두는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모두가 기상했고 가져온 컵밥으로 아침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발생. 아무리 해도 전자레인지에선 음식이 데워지지 않았고 엄마를 신나게 했던 커피머신도 소리만 요란할 뿐 커피 내리기를 거부했다. 사실 이것뿐이 아니라 숨어있는 수건 찾기, 결국은 켜지 못한 히터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상당했다. 엄마와 아빠는 콧물을, 나는 피곤함을 얻었다. (너무 피곤해 사진 하나를 못 남겼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우리나라와 달리 대면체크인이 필수이고 전자레인지 하나 돌리는 게 내 맘대로 안되는 걸 보며 '이렇게까지?'라고 생각되는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필수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여행업에 종사하면 영어를 잘해야만 할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스페인을 보라. 영어가 안 통한다고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나 영어가 안 통할 수 있다니!
그런 밤을 보내고 맞이한 마드리드 첫날 아침은 조용했고 그리 부산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이른 시간 이동으로 못 갈 것이라 예상했던 소로야미술관을 가보게 된 것도 좋았다. 아침 9시 이미 가득했던 산하네스 츄레스와 결국 6 접시나 해치운 해산물타파스에서의 식사, 그리고 저렴한 복숭아들과 톨레도 오누 길 창밖에 펼쳐진 올리브나무들, 이름 모를 들꽃이 가득한 평원들도. 이제는 엄마아빠를 깨워야겠다. 현재시각 오후 8시 16분. 아직 스페인이 아닌 대한민국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나의 빠빠와 마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