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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 Jul 26. 2024

수학 대신 골프를 배운 아이

 수영 2개월 차, 처음으로 수업을 땡땡이치고 가족들과 골프나들이를 다녀왔다. 엊그제까지도 비가 이렇게 오는데 갈 수 있을까를 걱정했는데, 어제 아침부터 푹푹 찌더니 오늘 아침 해가 떴다. 차가 없는 관계로 택시를 타고 IC 근처까지 가서 부모님을 접선하고, 또 3시간을 달려 골프장에 도착했다. 35도가 넘는 폭염주의보라며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가 왔지만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11시 45분 티업을 나갔다. 구름이 있으면 좋겠단 기대와 달리 햇빛은 쨍. 온도가 너무 높아 반팔에 짧은 치마바지 차림이었는데 얼굴과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더운 라운딩이었지만 잔디를 밟으며 드넓은 들판을 뛰어다니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비용이슈가 있어서 그렇지 골프는 분명 좋은 활력소가 된다.  


 골프를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이 얘기를 하면 "집이 좀 사나 보네"부터 "선수준비를 했던거냐" 등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지만, 사실은 이렇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학원을 안 다니던 나를 보며 주변 엄마들은 "그럼 안 돼, 희소 엄마"를 외쳤고, 엄마는 그 성화에 걱정이 되었는지 수학 학원이라도 하나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아빠에게 상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본 이력이 있는 우리 아부지는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을 때 억지로 시키는 공부는 전혀 효용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시고 수학학원을 보낼 바에야 때마침 우리 가게 앞 새롭게 오픈한 골프연습장을 보내라고 하셨단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나도 동의를 했던 것 같고 그런 이유로 골프를 배우게 됐었다. 남들이 수학학원을 갈 때 그 비용과 시간을 들여 골프연습장을 다닌 것이다. 첫 골프채와 백은 우리 집 사정을 훤히 아는 프로님이 고심하여 중고채를 추천해주셔 마련했었다. 필드에 나갈 때 비용이야 어쩔 수 없지만 감당가능한 수준에서 했던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골프를 배운 지 1년여 만에 첫 필드를 나갔었다.


 이후 마치 요즘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매일 연습장에 가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고, 연습장 아주머니들이나 또래 친구들과 옥상에서 숏게임을 하며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 내기를 하는 게 내 일상이 됐다. 수영과의 차이점이라면 그 시절에 난 골프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단 점이다. 어릴 때 배우는 모든 운동이 그렇듯 프로님이 무서우셨는데, 제자가 잘했으면 하는 프로님의 마음과 달리 난 골프를 아주 잘하고 싶단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이야기했던 것처럼 뭘 꾸준히 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 골프장에 가는 게 내 일상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다 프로님께 무척이나 혼이 난 날이었는지 연습장을 안 가겠다고 부모님께 선언 후 한 달 정도 연습장을 안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프로님이 우리 가게에 찾아와 그러셨다고 한다.


"어머님, 혹시 비용부담 때문에 못 보내시는 거면 염려 말고 희소 보내셔도 됩니다."


 비용 문제는 아니었지만, 혹시나 그런 이유로 내가 연습장에 못 나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셨나 보다. 내겐 너무 무서웠지만 제자를 아끼는 마음만은 가득한 분이셨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 이야기가 생각나는 걸 보면 어린 내 마음에도 그게 감동이었는지 그 이후에 다시 연습장을 다녔다.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거의 그런 생활을 하다 프로님이 연습장을 넘기시고 함께 운동하던 또래 친구들도 다 뿔뿔이 흩어지며 나도 자연스레 연습장 나가는걸 그만하게 됐다. 그래도 3년 열심히 연습장을 다닌 덕인지 연습을 하지 않아도 공은 칠 수 있는 수준은 됐고 그 이후에는 아주 간간히 가족들과 일 년에 두어 번씩 필드를 다녔다. 회사에 다니고 나서는 직장 동료분들과도 함께 골프를 칠 기회들이 생겼다. 얼마 전 본부장님 추천으로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에서도 골프를 친다는 점이 +였다고 하니 골프가 내 인생에 있어 분명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 싫었던 골프가 이제는 즐거운 취미생활이 됐다. 할 수 있는 선에서 편안하게 골프를 치니 유행과는 별개로 우리 가족에게는 한결같이 좋은 여가 생활이다. (참고로 오늘 그린피는 7만 5천 원. 거진 5시간의 놀이이니 시간으로 따지면 아주 비싼 값은 아니다. 비싼 떡은 아니 먹으면 그만이라는 우리 어머니의 가르침이 골프취미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땀은 정말 많이 흘렸지만 그만큼 많이 웃었고 넓은 페어웨이를 보며 가슴이 시원해졌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에서 평상시 못 듣던 이야기를 들었다. 사뭇 골프를 배운 것에 감사하게 된다. 우리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런 취미 생활이 있음에, 그리고 오늘의 스윙을 만들어준 어릴 적 개근러 희소에게. 한 가지 더 드는 생각은 자유롭게 유영하는 멋 훗날에는 아마 지금, 2024년의 여름을 떠올리게 될 거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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