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켠에 식물들을 키우고 있다. 올리브, 아가베, 하트, 행운목, 파티오라, 호야, 시클라멘, 그리고 서양난 한대. 별로 많단 생각을 못했었는데 세보니 꽤 많다. 지난여름 물 주는 걸 깜빡하여 말려 죽인 유칼립투스 한그루와 수염 틸란드시아, 반대로 또 물을 너무 많이 줘 물러버렸던 용신목 한그루를 빼면(?) 이 식물군단 친구들은 4년째 우리 집에서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지난주 너무 키카 커버린 올리브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는 김에 온 집안 식물들의 오래된 큰 순들을 잘라냈다. 본대보다 커버린 파티오라의 곁순을 잘라내 용신목이 사라진 화분에 꽂아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주고 행문목과 아가베의 헌순도 좀 정리해 주었다. 그 덕이었을까? 오늘 오랜만에 들여다보니 다들 연둣빛 새순을 쭈욱 뽑아내고 있다. 새로운 자리에서 축 처져있던 파티오라도 이제는 뿌리를 내렸는지 다시 끝이 짱짱해지고 연둣빛 새순을 피어내고, 파티오라 본진에서도 곁순에 가던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고민하여 더 예쁜 위치에 새순을 뽑아내는 중이다. 이미 두 번째 꽃대를 뽑아낸 서양난도 새잎을 내며 내년을 기약 중인데, 언제 갑자기 꽃대를 솟아내 나를 기쁘게 할지 모를 일이다. 행운목과 아가베에서도 원기둥, 원뿔 모양의 순이 올라오고 있다.
그저 가끔 물을 챙겨줄 뿐인데 이들은 열심히 가지를 뻗고,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운다. 일주일에 두어 번, 어떤 식물은 보름에 한번 물을 주는 약간의 수고로움으로 얻어지기에는 과한 멋짐이다. 엄청난 생명력 그자체를 바로 옆에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 집 거실에서 이 친구들을 지우면 안 그래도 책상 하나만 덜렁 있는 우리 집은 정말 허전할 것이다. 반려식물 상담소를 고민하면서도 내가 반려식물을 키운다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오늘 이들을 관찰하다 보니 나도 반려식물을 키우고 있었구나 싶다. 기특함, 고마움, 부재에서 오는 서운함을 보니 이들이 나의 '반려식물'인 게 분명하다.
8년 다닌 회사를 퇴사한 것도 일종의 이런 가지치기였을 것이다. 오래된 헌순에 쓰였던 에너지를 모아 나는 요즘 글을 쓰고, 수영을 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나를 돌아본다. J는 나에게 '돌입'말고 '몰입'은 언제 할 거야라고 물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이런 회사에 가본다면 좋지 않을까를 고민했고 어제는 그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앞으로의 미래야 모를 일이지만 이런 작은 새순을 피어나다 보면 언젠가 꽃도 필 거라 믿는다. 나의 반려식물들이 이미 증명했다. 반려식물의 소리 없는 응원을 받아 나도 새순 피우기에 내 에너지를 쏟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