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난 글재주가 그렇게 훌륭하진 않지만 또 아주 젬병은 아닌 학생이었다. 다만 그리기보단 글짓기가 쉽다고 느꼈기에 표어나 포스터 그리기 대신 글쓰기를 선택하고는 했고 가뭄에 콩 나듯 아주 듬성듬성 장려상 같은, 참가상보다 약간 높은 순위의 상을 타고는 했다. 글쓰기 대회를 나가보면 현장에 가서 제출을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기한을 두고 글을 제출하는 것들도 많았다. 그럴 때면 항상 초안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나름의 평가를 기다렸다. 그럼 엄마는 단호하고 또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편이라 느낀 바를 적나라하게 말해주곤 했다. 평가를 해달라 해놓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또 기분이 토라졌다. 우리 가게에서 꽤 오래 일하며 그런 모습을 한동안 보던 20대 초반의 일하던 오빠는 이렇게 말했었다.
"야, 희소야. 어차피 보여줘 봤자 좋은 얘기도 못 들을 텐데 뭐 하러 보여주냐. 그냥 제출하면 되지."
그러게, 그랬으면 될걸. 그럼에도 글짓기를 포함한 거진 모든 숙제들을 엄마에게 쪼로로 가지고가 또 혼나고 마음이 뾰로통하기를 반복했다. 그 시절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어릴 적에도(지금도) 누군가 내 글을, 혹은 내 결과물을 봐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눈을 믿었던 것 같다. 엄마는 대다수 내 글에 낙제점을 내렸지만 아주 가끔, 아주 쿨하게 "잘썻네."라고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런 날이면 내 기분은 날아가고, 며칠 뒤면 놀랍게도 제출한 글짓기가 수상을 했다는 낭보가 전해지고는 했다. 그런 날들을 거치며 내 글들은 우리 집 자체 첨삭을 받았었다.
2주 만에 방문한 본가 방문에서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단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오랜만에 내 브런치에 들어가 글을 읽기 시작했다. 누구나 보라고 쓴 글들이지만 엄마가 읽을 때는 조금 더 긴장이 된다. 엄마는 잠시 침묵 속에 글을 읽더니 말했다.
"우리 딸, 점점 더 글이 좋아지네!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글, 그리고 '오 , 이런 것도 있었네!'도 좋지만 '아 그렇지, 그렇지' 이러면서 동조하며 읽게 되는 글이 좋더라. 그런 점에서 '마음 가는 손님' 글이 참 좋다."
마치 어릴 적 숙제검사를 맡는 기분으로 엄마의 소감을 기다렸다. 이 정도면 매우 후한 평가다. 내 스스로 나름 정제하여 쓴 글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어떻게 읽힐까 궁금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안 그래도 자료가 넘쳐나는 이 인터넷 세상에서 내 글들이 데이터를 낭비하는 그런 글들이면 어쩌지 하는 하는 걱정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다행이다. 엄마에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닿았을 수 있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구글 메인에 올라 기록적인 48,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수영글 덕분에 전체 누적 조회수 10,000회를 기다리던 내 브런치는 일주일 사이 누적 조회수 50,000을 넘어섰다. 지인들 외에도 내 글을 봐주시고 친절하게 라잇킷을 눌러주시는 브런치 동료분들이 생겼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내 글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면 또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을 주는 그분들 때문이 아닐까. 알고리즘의 축복이 끝나가는 월요일, 한 번도 전하지 못했던 이 마음을 한 번쯤은 전하고 싶다.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도 마음 한켠을 정리했습니다. 내일은 더 잘 써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