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8시쯤 집을 나와 오랜만에 익숙한 풍경들을 마주했다. 엘리베이터가 한 번에 1층으로 가지 않고 몇 개 층에 여러 번 서며 사람들을 태우고, 단지를 빠져나가는 길엔 등굣길의 학생들을 만난다. 매일 수영을 갈 때 애용하는 따릉이 정류소에는 공무수행 중이라 붙은 화물트럭에서 자전거가 내려 채워진다. 트랜스포머급 변신능력을 보여주는 전철 입구 바로 앞 과일(여름엔 과일과 야채, 겨울엔 생선을 주로 판다) 가게도 장사 시작을 위한 진열에 한창이다. 버스에 내리는 사람들은 전철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긴다.
2024년의 8월 여름은 아침부터 푹푹 쪘다. 서울에 있는 전철 역사 중 에어컨이 없는 역사가 50개라는 기사(<"지하철 기다리다 땀 범벅"…'노에어컨' 서울 지하철역 50곳> https://www.mbn.co.kr/news/society/5050318)를 보았는데 우리 집 앞 역이 그런가 보다. 3 정거장 전에 있다는 안내표지판 아래 냉풍기와 대형 선풍기 주위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가장 시원한 옷을 입고 나왔는데도 등줄기로 땀이 흘로 나도 그 옆에 섰다. 막 시원하다 까진 아니지만 덜 더웠다.
잠깐의 바람과 내가 맞바꾼 것은 열차였다. 8시 출근시간대에는 열차가 올 때 줄을 서면 전철을 못 탈 수도 있단 사실을 잊고 있었다. 1개 역 전이란 안내를 보고 내려가자 이미 플랫폼에는 사람이 꽉 차있었다. 아 맞다. 열차가 와도 탈자리가 없어서 못 타던 출근의 역사를 4개월 만에 고새 잊었다. 다행히 오늘은 여유가 있어 다음에 오는 급행열차를 탔다. 물론 그 급행열차에도 내 몸하나 간신히 끼어넣을 정도였지만.
급행열차를 출퇴근 시간에 타면 기본 3-4번의 문 열림 닫힘을 각오해야 한다. 창문에 붙어 서서 보니 닫힌 열차 창문 너머로 급한 표정으로 계단을 열심히 뛰어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 칸은 아니었지만 그분이 타셨는지 닫혔던 문이 다시 열렸다. 이런 지각생들을 태우기도 하고, 가방과 옷자락이 끼어서, 어쩔 때는 누군가 생각 없이 버린 샌드위치 비닐 같은 것이 스크린도어 안쪽에 들어가 열차는 출발을 못하곤 했다. 출근하던 시절 그런 지연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조급한 마음에 움직일 수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 신발 속 발만 동동거리고는 했다.
돌이켜보니 오늘 탄 그 열차는 원래 항상 출근길에 탔던(탔어야 했던) 열차 바로 다음 열차였다. 이 열차를 타면 지각이 확정이었던! 그런 날이면 열차는 더 안 갔고, 문은 더 여러 번 여닫히고, 꼭 신호대기에 걸리고는 했다. 오늘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 전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9시 오피스 지구의 사람들은 모두들 바삐 움직였다. 빠른 일처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마치 회귀하는 연어처럼 역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출근길 직장인들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