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중학교 시절 은사님을 뵈었다. 오랜만의 연락에도 반가운 마음으로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다. 1~2년에 한 번 스승의 날 같은 때야 한두 번 카톡을 드렸을 뿐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그런 공백이 무색할 만큼 선생님과의 대화가 즐거웠다. 결혼이야기, 퇴사이야기, 그저 사는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가 진로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어떤 일을 해볼까 고민이 된다, 흔히 말하는 있어 보이는 일보단 그냥 작더라도 소소한 행복이 있는, 일하는 것에서 성취감과 긍정적 피드백이 확실한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이야기에 선생님은 내가 기억 못 하는 10년 전쯤 일화를 말씀하셨다.
"희소 네가 대학 진학을 결정했을 때 그 소식을 전하면서 '선생님 저 거기로 가기로 했어요. 잘했다고 해주세요'라고 하더라. 왜 재수 말고 그 선택을 하냐는 주변의 성화가 많았을 게 뻔히 보였고 네가 거기에 지쳐 보여 짠했었어. 그런데 너는 그때도 지금도 한결같구나."
학창 시절 꽤 성적이 좋았었고 주변의 기대를 받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고3 시절 입시에 미끄러져 흔히 말하는 대학순위가 그리 높지 않은 대학을 갔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하는 게 너무 지겨웠고 지금과 비슷하게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게 없던 이유로 공부를 하기가 더 싫었다. 그런 이유였는지 남들은 하나도 얻기도 힘든 상위권 대학의 수시지원 기회를 여러 개를 얻었음에도 모두 고배를 마셨고 수능성적 또한 그리 좋지 않았다. 그때 내가 선택한 것이 지금의 졸업한 학교이자 전공이었다. 재수는 하고 싶지가 않았고 그 지겨운 진로 고민이 졸업생들의 진로가 뚜렷한 과에 가면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 시절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었다. 전공이 적성에 안 맞긴 했지만 그 선택을 크게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왜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무엇인가를 미친 듯이 좋아하거나, 바라는 간절함이 없는 내 성향이 항상 아쉬웠다. 진로 고민도 궁극적으로는 그 이유다. 무엇인가가 정말 하고 싶어지면 그 길로 가면 되지만 그런 간절함이 없어서 그게 어렵다.
"간절하지 않아서 이렇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해요. 탁월하지 못한 느낌이랄까요."
"그게 유일한 단점일 수도 있겠네. 근데 그건 목표지향적인 성향이거나 혹은 뭔가가 부족, 결핍할 때 생기는 건데 그런 게 없어서 그럴 수도 있어. 희소 너는 그렇게 살고 싶니?"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화려한 삶, 그런 것에 너무 몰입하다 또 한편으로 균형을 잃고 매몰되는 삶은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방향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소소한 것에 행복을 누리는 사는 삶, 지금에 만족하는 삶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에 더 가까울 것이다. 다만, 나는 일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내 일에서 만큼은 탁월해지고 싶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 기껏 쌓아놓은 지난 8년의 경력을 못 쓰는 것에 대한 아쉬움,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하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다 가질 수는 없는 것 같아. 원하는 걸 가능한 생각 하되 한 가지 정도는 놓칠 수도 있지. 오래 일한 경력이 있으니, 그게 너에겐 보수일 수도 있겠다. 근데 그건 시간이 해결할 문제기도 해. 잘 찾아보렴 희소야. 좋은 소식 전해주렴."
카페에서 일어서며 보니 4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즐거웠지만 탁월함의 추구와 소소하게 행복한 삶이 완전히 반대되는 목표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독기 없이 그냥 사는 사람 특징'이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보니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라는 책 홍보였다. 부제는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였다. 한 줄 리뷰가 눈길을 끌었다.
<탁월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껴본 사춘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에게 강추>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위로 보단 도움이 되는 책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