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1월 3일. 너무도 먼 날이라고 생각했던 그날은 예상보다 빠르고 큰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한 1주일 전부터는 괜히 우울하고 긴장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황청심환도 미리 사두었는데 먹어보니 오히려 졸려 당일에는 먹지도 않았다. J나 나나 다행히 실전에 강한 타입인지 당일에는 거의 떨지 않고 웃으며 식을 진행했다.
당사자에게는 특별한 일이지만 결혼식은 사실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수많은 식중의 하나일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형식적인 식순보다는 가능한 의미를 담아 우리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구성을 짜려했다. 다행히도 참석하신 분들의 후기를 들어보니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 같았다. 10년의 연애스토리를 담아낸 식전영상, 결혼생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4가지 주제를 담은 혼인서약서, 두 아버님의 진심이 담긴 덕담과 축복기도, 우리에 대한 애정으로 사회를 맞아준 지인의 삼행시 이벤트, 핀란드 시절부터 우리를 지켜본 나의 옛 룸메이트의 축사, J의 잘 다듬어진 축가, 나의 서프라이즈 편지낭독까지. 식순으로만 보자면 특별할 게 없지만 그 안에 진심과 사랑, 신뢰가 들어있어서인지 식을 보며 눈물을 흘린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얘기를 전해 들으며 버진로드 위에서도 안 흘린 눈물이 내 눈에도 고이기도 했다.
물론 실수도 많았다. 잠깐 잘못 든 길에 30분이나 도착시간이 늦어져 당일 챙겨야겠다고 생각한 현장체크는커녕 식전촬영도 허둥지둥 마쳤다. 사진을 보니 배에 힘을 주고 어깨를 피려던 계획과는 달리 구부정하고 볼록한 모습으로 입장했다. 혼인서약서에 적힌 숫자 3을 나는 삼으로 J는 셋으로 읽어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아빠의 인사말에 울려 퍼진 박수를 듣고 긴장한 사회자가 '귀중한 덕담 감사합니다'를 미리 외치는 일도 있었다. J는 가사를 잊어 즉석 개사를 하고 아빤 읽은 문단을 또 읽었다. 2부 촛불점화 때는 도저히 불이 안 붙어 애를 먹었다. 예상과 달리 당일에 오지 못한 손님이 많아 준비한 식사가 꽤 남기도 했다.
실수투성이라면 실수투성인 결혼식이었지만 진심을 담았고 다들 잘해보려 했기에 생긴 실수 같은 느낌이어서 그런지 오히려 이 완벽하지 않은 결혼식이 더 좋게 느껴진다. 불가피하게 못 오신 분들도 계셨지만 정말 많은 분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았다. 참석해 주신 300여 명 모두가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채워준 시간. 어젯밤에는 그 잔상이 계속 남아 몸은 마치 몸살을 앓을 때처럼 무거웠지만 쉬이 잠들지 못했다.
''오늘 결혼식 보면서 제가 알던 희소님의 모습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의 과정을 전부 보진 못했지만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고 다른 누군가에게 말해줄 수 있는 하루가 되었네욤...ᐟ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고 저도 감사하다는 말 늦게나마 다시 전해드려요 축하해요''
"오늘 결혼식 넘 좋았다~ 사람들도 다 밥맛있고 결혼식 너무 잘 준비했다고 얘기하더라 ㅋㅋ 엿들었어! 사회도 넘 재밌었고 볼게 넘치고 모두가 환영하는 결혼식이었네~ 신행 즐겁게 잘 다녀오고! 행복하게 잘살오 희소"
"행복한 신혼 응원할게요~
컨텐츠 많은 결혼식
기억에 많이 남음"
"희소 결혼식이 한개한개 진심이 담겨서 다 너같더라ㅎㅎ 너 결혼식인데 내가 너무 재밌게 즐기다 온거같네ㅎㅎㅎ "
"희소다운 서약과 편지, 넘 감동이었어"
"희소 오늘 넘 예쁘고 아름다웠어! 희소다운 결혼식!! 이제 보니 남편분과도 많이 닮았더라! 행복한 가정 이루길"
"산책할 때마다 진행경과를 들었는데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인 오늘 결혼식 감동 열배 백배였어요!!담대하게 나아가는 앞길을 축복하고 함께 기도할게요!!!"
"희소야 오늘 너무너무 아름답고 예뻤어 식도 실로 오랜만에 집중해서 보고 T인데 눈물도흘림ㅋㅋㅋㅋㅋ 신행 잘 다녀오고 연말에 한번 보자 축복해"
"빛희소 결혼 축하
오늘 넘넘 예뻤고 감동적인 결혼식이었어요 ㅎㅎ 신혼여행 가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와요~~~!"
"오늘 정말 너무 예뻤고 보는 사람이 행복햐지는 결혼식이어썽(편지 너무 잘썼더라!!) 신행 잘 다녀오구 행복만하자~~~"
"아줌마들이 이모들이 엄마 친구들이 모두 너무 멋진예식이었다구ㆍ모두 집중하구 예식에 몰입되는시간이었다구ㆍ근래에 보는정말 멋진 커플이었다구, 칭찬이 넘치는 축하의 말씀을 전해주셨단다ㆍ"
격려와 애정, 응원과 축복을 가득 받은 결혼식 다음날. 어제의 그 설렘을 다시 한번 복기하며 이탈리아로 떠난다.
2024.11.4
로마행 비행기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