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후 10개월, 9년차 직장인의 현실 이직기

이직은 기세다

by heeso

새로운 직장으로의 출근을 1주일 앞두고, 달콤한 이 평일낮의 여유로움을 어떻게 즐겨볼까 뒹굴리다가, 오늘은 지난 일년간 나에게 큰 기쁨이 되어준 브런치에 오랜만에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사실 자유인 시간에 디데이가 생기고 나서, 지난 열 달을 돌아보는 글을 한편 쓰고 싶단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글이란 것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작이 어렵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한 지인에게 브런치 새 글을 기대하겠단 말을 듣고, 원래 해야 했다고 한 다른 일들보다도 이 기록이 의미 있는 일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타자를 친다.


2024년 4월 30일 자로 퇴사를 했으니 3월 중순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기로 한 나는 딱 열 달 하고도 반을 자유인 무소속 신분으로 살았다. 그 십쩜오달 간 스페인, 일본, 이탈리아, 목포, 제천, 창녕 등을 여행했다. 초반 몇 달간은 매일 글을 썼고 그중에 몇 개의 글은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몇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 5일 수영을 하며 새 회사의 개인신상명세서 취미란에 '수영'을 적을 만큼 수영장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물속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을 많이 좋아하게 됐다. 영어공부 앱 스픽의 불꽃은 338일 차 이어져오는 중이며 오랜 기간 연인이었던 J와 결혼을 해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아주 많아진 나는 마트부자 동네에 사는 이점을 살려 하루 세끼부터 간식까지 다양한 음식에 도전하며 요리왕 비룡은 아니고 이무기 정도까지로 요리 실력이 늘었다.


브런치에도 여러 번 밝힌 바 있듯이 여유롭고 행복한 열 달이었다. 반면에 이렇게 윤택하고 반짝이는 삶의 많은 부분과 달리 직업을 찾는 일에서는 계속된 실패의 연속이었다. 정말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력서와 자소서를 고심해서 쓰게 한 회사도 있었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무시로 지원한 회사들도 있었고, 마치 내 회사가 될 것처럼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들도 있었지만. 아무튼 결론적으로 지난 열 달 동안 나에게 면접기회가 온 것은 수십 개(혹은 백여 개)의 회사에서 딱 7개였고, 그중에서 공식적으로 JOB OFFER를 받은 곳은 딱 한 군데였다.


사실 다음 주에 출근하기로 한 회사는 내가 여기까지만 이력서를 내야겠다고 마음먹은 회사였다. 탈락과 거절이 지긋지긋했다. J도 내가 아직은 어리고 시험공부를 잘하는 체질이라면서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었다. 실제로 시험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오늘의 계획은 그 공부를 하는 거었지만 그 대신 브런치 글을 쓰는 중) 하지만 사람 인연은 모르는 일이고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난 후 면접을 본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고, 연봉 협상 기간에는 얼마 전에 탈락했던 회사에서 나의 취업상황을 체크하는 전화가 왔다. 사장님이 나를 기억하시는데 현재도 구직중이라면 제안을 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결국은 앞회사를 택했지만, 나를 펑펑 울게 했던 회사의 면접자리에서 완전히 엉망은 아니었고 나를 각인시켰구나 라는 마음에 자존감 XP를 조금 회복했었다. 그런 제안이 하루 이틀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온 것이 참 신기한 일이다.


자리를 얻게된 회사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대기업이다. 그래서 헤드헌터에서 처음 제안을 받고 이력서를 내면서도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서류전형 탈락의 연속에 질릴 대로 질려있었고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져있었다. 그래서 사실 지원 후 연락이 없을 때, 떨어졌나 보다고 으레 생각했었다. 그러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도 기쁨보다는 왠 일, 이란 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1차 면접도 안되면 뭘 해야 하나를 고민하며 딱 하루, 인터넷 서핑 70%, 면접 준비 30%를 하고 면접을 보러 갔었다. 1차 면접 대기장에서 예상치 못한 과제를 받았을 때,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 해보지 뭐,란 마음으로 임했다. 웃음 하나 없었던 1차 면접도, 1차보단 편안할 거라는 인사담당자의 말과 달리 압박덩어리였던 2차 면접도 그저 솔직하고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답변했다.


열 달간 많지는 않지만, 약 열 번 정도의 면접을 보며 확실히 느낀 것이 있다. 면접은 기세다. 기생충의 명대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시험도, 면접도 기세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하여사는 말씀하셨다. 그래, 희소야, 사실 인생이 기세야! 지원자를 당황시키려는 면접관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상황에 맞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을 납득시키는 것이 면접의 기술이라는 것을 난 알게 되었다.


약 열 번의 면접을 보면서 각종 유투버들이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는 질문들에 나름 답변을 준비해서 갔었지만, 갈 때마다 내 말문을 막히게 하는 질문들이 있었다. 특별한 질문들은 아니었지만 면접마다 꼭 하나씩은 그런 질문들이 있었고 면접장을 나오고 며칠 동안 그 질문들에 대해 고심했었다. 그렇게 열 번 정도 면접장에서 창피를 당하고 고심하는 시간을 갖고 나니, 마지막 면접에서는 질문에 압도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근거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똑같은 질문이 아니었어도 답변할 수 있는 일종의 거리가 생겼던 같다. 그리고 그 답변이 꾸며내거나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기에 주눅 들거나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면접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서류와 면접 탈락을 거치며 어떤 날은 아주 깊이 가라앉았고 어떤 날은 정말 속이 상해 펑펑 울어버리기도 했다. 처음 몇 번 떨어질 때야 나랑 연이 아닌가 보다고 생각했지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서조차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는 정말 내가 못나서 그런 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고민에 있어서는 전자가 완전히 맞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랑 맞을 순 없고,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처럼 회사 역시 그 연은 따로 있나 보다. 그리고 지난 열 달간 수많은 회사와의 스쳐 지나감이 이번 회사와의 만남에 도움이 됐음은 두말나위 할 필요가 없다.


2차 면접 합격 소식을 면접 당일 밤 10시 반에 듣고 나서도, 사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레퍼런스 체크가 거의 3주간 진행이 되었는데 내가 연락처를 넘긴 5명 모두는 물론 나도 모르게 최소 한 명 이상에게 나의 레퍼런스 체크가 갔다는 걸 알게 됐다. 참 좁고도 무서운 세상이라는 점과 어디서든 깽판은 안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바쁜 와중에도 정성스럽게 인터뷰를 해주신 옛 선배님들과 동료분들께 정말 감사했다.


한평생 누굴 걱정시켜 본 적이 없는데 내 재취업이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여럿한테 들어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던 날들이다. 그들을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회사의 이름을 듣고 다들 너무 잘됐다, 부럽단 이야기들을 했다. 사실 그건 모를 일이다. 회사가 좋을지는 가봐야 안다. 큰 기대는 큰 실망을 낳는 법이다. 이름난 좋은 회사 이런 것보다 내가 기대하는 건 그곳에서 만날 새로운 사람들과 경험들이다. 내 인생의 새로운 새끼줄이 될 시간들. 그 새로운 새끼줄을 꾈 기회를 만들어낸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한편으로는 거진 1년 만의 업무 복귀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미리 너무 많이 걱정하거나 염려하고 싶지도 않다. 닥치면 다 하게 될 일들이고 힘든 일도 그때 가서 견디는 수밖에 없으니. 걱정한다고 다 해결되면 걱정만 하고 있게, 란 말처럼 말이다.


회사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한 걸음을 내디딘 지금이 마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는 순간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무소속이면서도 지금 이 시간을 졸업하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이별이 아쉽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도 함께 있는 졸업. 언제나 마무리는 중요하기에 이번주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또 한가지, 정말 어려운 요즘 취업시장에서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응원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나 역시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어려운 시간들과 조금은 창피한 경험들이 살이 되고 뼈가 되어 당신이 결국 해낼 것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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