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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달간 매일 수영을 하면 생기는 일

by heeso Mar 16. 2025

 지난 열달간 가장 큰 성취가 뭐였다고 한다면, 단연 수영이 아니었을까. 수영을 배우리라 마음을 먹은 뒤 주5일 수영을 왠만하면 빼먹지 않고 갔다. 그 시간을 계산해보면 9달x5번x4주x1시간 = 180시간 정도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구쩜오달을 수영했지만 며칠간의 공백을 고려하면 아홉달정도로 계산하는 것이 얼추 맞을 것 같다. 180시간이라.. 따져보니 일주일하고도 반나절 내내를 안쉬고 수영을 한 꼴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맥주병 인생을 좀 달리 살아보자는 취지였으나, 결론적으로는 그 두려움의 해소를 넘어 애정을 갖게 됐다. 하긴 그렇게 매일을 꾸준히 해대는데 장사있을까? 스스로 느끼기에도, 주변사람들이 말하기에도 난 이제 제법 수영인 티가 난다.


 완벽하진 않아도, 접배평자를 이제 다 할 수 있고 물속스타트는 깃발을 가뿐히 넘는다. 수영복이 세개, 수모는 다섯개, 안티포크도, 수영장용 속건 수건도 세개씩 있다. 훗날 도전할 프리다이빙을 위해 반년 넘게 써온 귀마개도 졸업했다. 어깨가 퍽 넓어져서 얼마전 백화점에서 입어본 55사이즈 자켓이 비좁았다.


 뭐든 많이 해봐야 는다는 말이 정확하다. 매일 매일을 채워나가다 보니 실력은 늘고, 사람들은 익숙해지고, 수영장 장소 자체에도 정이 들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곳을 왔다갔다 하는 그 행위 자체가 내 생활에 깊숙히 자리잡았다고 할까. 마치 출근하는 것마냥 화 아침 9시 반이면, 월수금 저녁 5시 반이면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 갈 때 따릉이가 아주 효자 노릇을 했다. 폭우나 폭설이 쏟아지는 날이 아니라면, 여름에는 챙모자를, 겨울이면 털모자에 마스크와 장갑을 장착한 나는 검은 비닐봉다리를 가지고 다니며 젖은 안장이나 미세먼지에도 상관없이 늘 따릉이를 깨우곤 했다. 빠르면 5분, 신호가 걸리면 7분정도 걸리던 그 수영장 출퇴근길. 초여름 시작되어, 봄이 움트는 계절까지 이어진 나의 이 수영장 출근길은 다양한 풍경을 선물했다. 여름엔 매미소리가 가득한 느티나무 터널을 지났고, 가을엔 그 우거졌던 낙엽을 옴팡지게 맞으며 달렸다. 가을야구과 연말의 콘서트로 가득한 인파를 헤치면서도, 매서운 눈보라와 칼바람에 맞서서도 발을 세차게 굴렸더랬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주 목요일 아침, 그리고 금요일 저녁의 마지막 수업을 하러 가는 길이 마치 퇴삿날 같았다. 살면서 퇴사는 한번밖에 안해봤는데, 딱 그 마지막의 출근길의 느낌이었다. 수영장에서 인사를 하고, 탈의실에서 또 인사를 하고, 식사를 같이 하게된 몇분과는 수다를 한참 떨고 집까지 걸어오다 정말로 헤어져야할때 또 인사를 했다. 기쁜 소식이라 너무 축하한다면서도, 못 보는게 정말 아쉽다는 이야기들. 나도 그렇다. 수영을 하며 따듯한 맘을 가진 좋은 분들은 참 많이 만나 행복했다. 2주만에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복귀란게 없는 무소속이었지만 수영장 식구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각기 다른 직업과 세상을 사는 사람들과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됐고 가끔 가벼운 식사나 맥주를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나의 취업 소식에 축하와 아쉬움을 보여준 그들의 마음과 취업의 기쁨과 떠나는 서운함이 함께 있는 내 마음이 아마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수강신청이 쉽지 않아 새로운 반 등록을 못했다. 그래도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새로운 반 등록도 언젠가는 할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거기에 만나는 인연들이 생기겠지. 근 열달간 수영하며 행복했다. 마치 10달간의 수영캠프를 다녀온 것 같기도 하다. 내 인생의 수영파트 phase 1을 마무리한다. 멀지 않은 시일내에 phase 2가 열렸으면 좋겠다. 행복했던 10달의 수영캠프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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