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

당신은 언제 결혼을 결심했나요?

by heeso
언제 결혼할 결심을 하게 됐나요?
남편분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셨어요?
진짜로 종소리가 들리나요?


연애를 오래 했고, 결혼도 했다보니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꽤 자주 들은 편인데, 항상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난 10년을 연애했기에 결혼 전부터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도 말이다.


"결혼을 결심하는 특별한 순간이 있기보단 함께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스며들듯, 천천히 결혼에 대해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


까지는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뭐가 네 마음을 연건데?' 라는 꼬리질문엔 답이 항상 엉성했다.

최근에도 또 비슷한 질문에 만족스럽지 못한 답을 했다. 새삼스레 이번엔 그 질문에 꼭 답을 찾고싶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분명 내 안에 답이 있단 걸 알고 있었다. 우선 결혼생활에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느끼고 있고 10년 연애에 이은 결혼이지만서도 여전히 이 관계에 대해 아쉽거나 무언가 부족하단 공허한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을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그 답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던 화요일 아침 출근길, 만원 전철안에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 그건 내가 결혼식 날 남편을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즈 편지에 담겨있었다.


...
사실 그보다도, 10년간 오빠와 함께하며 조금은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단 생각을 했어. 여전히 부족하지만 말보다 듣기를 더 하려고 노력하고, 더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배운 것 같아. 또 나 자신을 잘 모르겠고 미래가 막막할 때, 어둠에 갇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법도 배웠지. 그리고 막연히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 얘기를 했을 때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오빠를 보며 오히려 함께 해볼 수 있겠단 용기를 얻었던 것 같아.
오빠도 얘기한 것처럼, 결혼은 사실 그 자체로는 혼자인 삶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지 몰라. 하지만 10년 전의 나보다 오빠 옆에 서있는 오늘의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오빠와 함께,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떨리고 또 긴장되지만, 난 지금부터 시작될 제2의 인생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왜냐면 J 같은 파트너와 함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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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fininlove/163


정리하자면 내가 결혼을 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1. 이 사람 곁에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다.
2.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하다.
3. 따듯하고 다정하게 나를 대한다.
4. (두려움과 어려움 같은)현실을 받아드리고 이겨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결혼식 서프라이즈 편지에 어떤 내용을 넣는게 좋을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지금 보니 편지 안에 내가 J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다 들어있었다.

꼭 어떤 순간이라고 짚을 수 없지만 J는 그런 남자였다. 나를 긍정적으로 자극시키고, 함께 있을 때 많이 웃게 되는 사람. 또, 내가 소중하고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해주고, 삶의 어둠을 두려워하기보단 인정하고 해보자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

아마 그를 처음 알게된 순간에도 저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게 아닐까 싶다. 핀란드에서 모두가 포기한 내 자전거를 고쳐보려 고군분투하던 모습, 우연히 단둘이 남겨졌지만 즐거운 대화에 오히려 좋았던 스톡홀롬 젤라또집, 파티에서 돌아오던 길 진지하게 설명하는 본인 나름의 미래 계획 등에 대해 들으며 나는 그에게 스며든 것이 아니었을까.

10년의 연애 기간 동안엔 더욱 많은 대화와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 적을 순 없지만 나는 그런 관계 속에서 많은 부분 변화했고 그 방향이 더 좋은 쪽에 가깝다고 믿는다. 물론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런 마음이 오히려 그 반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고민하다 저 편지가 떠올랐을 때, 유레카를 외쳤다. 그 순간 고개를 탁 들었는데 마침 용산철교 너머로 한강이 촤악 펼쳐지고 있었다. 유레카에 걸맞는 배경이었다. 오랫동안 찾지 못한 답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하다. 정리하고 보니 결혼을 잘한 것 같다. 반대로 J는 왜 나를 선택했을까. 다른 이들의 답은 무엇일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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