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이 느껴져도 시험장엔 가자

행정사 1차 합격

by heeso

2024년 내 취업하기에 실패 후 시작한 공부가 하나 있었다. 끊임없는 탈락이 지겨웠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시험이었다. 되지도 않는 서류접수를 그만두고 전문자격증이나 하자 따자 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시점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며 지원한 회사에 합격해 출근을 하게 됐다. 그리고 회사적응을 핑계로 공부가 소홀해졌다. 3주 합숙교육을 가며 거의 공부를 못한 주간도 있었다. 그래도 캘린더에 날짜를 박아둔 덕에 합숙교육 중간에 용케 시험접수를 했다. 하지만 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필요한 100만큼의 공부량이 있다면 난 50도 머릿속에 못 넣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루 한시간씩 간신히 책상앞에 앉으면서도 되지도 않을 시험에 괜한 에너지를 쏟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 집중이 더욱 안됐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머리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글자들을 읽는게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시험을 보기로 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내 인생에 꽤 있었던 것 같단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시작해서 시도하다가 안되겠어라고 하며 즈레 겁먹고 먼저 포기해버린 경험들이 떠올랐다. 몇달을 열심히 공부하다 그냥 말아버린 중국어 공부, 공인중개사 시험, 좀만 노력했다면 얻었을 복수전공학위 등등. 그때는 택도 없다고 생각해 포기했지만 돌이켜보면 좀 만 더 해볼껄하는 일들이 꽤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험도 같은 느낌의 부족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그 기시감 때문이라도 일단 시험장까지만 가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리고 그 시험장에 가기 위해 정말 느리고 입력이 안되는 공부를 꾸역꾸역 해냈다.

총 3과목을 보는데 두번째 과목 문제풀이가 D-14이 되어서야 끝이났다. 세번째 과목 기출문제와 과목별 합격필100제, 모의고사 5회차가 남아있었다. 진짜 포기하고 싶었다. 두번째 과목이었던 행정법 문제는 답안지를 봐도 모르겠어 다시 필기로 정리를해가며 문제를 풀어야했다. 행정법 문제풀이를 하던 D-3주 그 시간이 이걸 계속해야돼, 말아야돼를 계속 되새기던 시간인 것 같다. 그렇게 2주를 남기고 행정학 문제풀이에 들어갔고 다행히 1주일만에 문제풀이를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시험을 6일 남기고 매일 1회차씩 모의고사를 풀었다. 첫번째 모의고사에서 간신히 합격선에 들어 모의고사인데도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다음날은 과락이었고 다음날은 또 간신히 턱걸이를 했다. 그렇게 퐁당퐁당 합격과 불합격의 맛을 3:2로 골고루 봤다. 참 애매한 수준이었다. 내가 참고하는 카페에선 모의고사에서 70점은 넘어야 실전에서 합격선에 든다고 했는데 난 합격한 모의고사도 과락점수를 피해가며 간신히 만든 60점 초반이었다. 그래도 결국 행정학 합격필100제까지를 출퇴근시간 읽어가며 마지막 시험준비를 마쳤다.

시험접수를 늦게 했더니 서울 동부 외곽 시험장만 자리가 남아있었다. 아침 일찍 한시간을 꼬박 걸려 미아까지 가서 시험을 봤다. 내가 본 고사장 기준 22명 중 8명이 결시를 했다. 나처럼 고민끝에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은 이들일 것이다. 시험시간은 단 75분. 빠르고 또 약간은 허무하게 시험시간이 끝났다. 헷갈리는 문제가 많아 시험지엔 2번을 골랐다, 5번을 골랐다, 다시 3번을 고르는 등 수정흔적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인지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내 점수가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았다. 확실히 맞다라는 생각이 드는 문제로는 합격선에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험당일은 시어머님 생신기념 식사자리가 있었다. 피자를 먹으면서도 내 눈길은 답안지가 나온다는 2시 시계에 계속 눈이갔다. 원래는 집에 돌아와 채점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도무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시댁집에 올라가는 길에 잠시 지하주차장에 들러 라이트를 켜고 채점을 시작했다. 민법은 76, 행정법은 48, 행정학은 76. 합산 200점으로 과락없이 66.6점을 맞았다. 합격이었다. J를 얼싸안고 소리쳤다.

합격이다!!

높은 점수는 아니어도, 합격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수는 아니다. 정말 오랜만에 중도포기 하고싶다는 유혹을 떨쳐내고 얻어낸 소중한 성취였다. 과거의 그 아쉬웠던 결정에서 얻어낸 교훈을 발판삼아 뜀틀을 하나 뛰어넘은 기분이 든다. 내가 시험장에 가지 않았다면 나의 합격 확률은 0이었겠지만, 어떻게든 시험장에 가기 위해, 그리고 가서도 그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위해 애썻던 시간들로 내가 합격증을 받을 확률을 조금씩 높였던 것 같다. 2차 시험준비라는 또다른 숙제를 얻긴했지만 그래도 이걸 해낸 나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특하다. 이 경험이 앞으로 내 인생을 또 어떻게 바꿀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어쩌면 포기를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다른 마음을 먹게하는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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