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과 오만 그 사이에서
얼마전 아직도 전 회사에 남아 고생하고 있는 옛 동료를 만났다. 이직준비를 하고 있냐는 말에 밖이 너무 춥다고도 하고, 회사에 사람이 별로 안남아있어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퇴사가 어럽다고 말하는 그에게 저녁을 청했다. 근황 등을 이야기하다 희망퇴직 시기에도,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현시점에도 같은 이유로 이력서 오픈조차 안했다는 그에게 나는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지금 당장 이력서를 오픈하고 최소 하루에 한개씩은 지원을 해야한다고. 춥기 때문에 더욱 많은 문을 두드려야 하고, 오픈하지 않으면 확률이 0 이지만 어디든 쓰면 그보단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오히려 회사가 망해서 어쩔수없이 이직을 해야하는 상황이 왔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목소리는 더 커지고 강해졌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시간 넘게 했을까, 그는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그런데 이런 패턴은 내게 익숙하다. 좋아하는 지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요청하진 않았지만 내 딴에는 너무도 중요하단 조언을 하다가 상대가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하는 일. 아무리 애정을 가진 이야기라 해도 상대에게 부담이고 듣기 힘든 이야기가 되나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애정하는 이들에게 고생스럽게 조언하고도 늘 찜찜하다.
이런 이야기를 J에게 하면 왜 또 그랬냐며 타박을 준다.
"너가 그런다고 고맙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맨날 그렇게 찜찜할껀데 뭐하러 그런 이야기를 해~"
"나도 알어 근데 나는 진짜 애정하는 사람들한테만 그렇게 하는거란 말이야."
"너가 그런다고 사람들 안바뀌어. 바뀔 사람이었으면 예전에 그렇게 했지."
"후. 나도 아는데 그렇게가 안돼. 내 성정인가봐."
하지만 꼬리를 무는 찜찜함에 은은한 사람이 되는법을 GPT에 물어봤다. GPT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성숙한 연민이란 이름을 달아줬다. 나도 아파봤고 변화가 어려운줄 알지만, 그래도 그걸 넘어야한다는 걸 아니까 드는 맘이라며. 내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예쁜 꾸밈이었다.
결론적으로는 '효율적인 진심 전달법'의 문제였다. 내말을 다하는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닿을 만큼만 건네는 것이 필요하단 말에 공감이 갔다. 대문자T라는 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자신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때만 직설적이라고 한다. 조언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좋은 애기만 해줘서 같이 있으면 기분좋고 든든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말에 눈길이 갔다. 내가 느끼는 찜찜함의 포인트가 저것인가 싶었다. 나도 기분좋고 든든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해주기엔 내 사람들의 인생은 아직 기회가 많은걸. 이런 애정과 오만 사이 어딘가에서 마음이 외줄타기를 한다.
효율적인 진심 전달법을 노력해봐야겠다. 애둘러서 말하고, 한템포 쉬고, 네가 아닌 나를 주어로 말하기. 이걸로 나는 내 애정과 진심을 담은 말을 하고도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노력해보자. 내 진심이 은은하게 전해지는 그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