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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 Aug 16. 2023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모습

교환학생이 내게 남긴 유산 #2

 오랜만에 교환학생 시절 함께 방을 썼던 코리안걸 네 명이 모였다. 20대 초반이던 풋내기 학생들은 어느새 다들 30대가 되었다. 여러 수다 끝에 여름휴가 계획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터키, 같은 날 출국하는 언니는 스위스와 동유럽을 갈 계획이고, 결혼을 앞둔 한 친구는 신혼여행지로 칸쿤과 몰디브를 고민하고 있었고 다른 언니는 얼마 전 도쿄를 다녀왔다고 했다. 


 누군가는 들으면 '여유로운 사람들이네, 돈이 많나, 혹은 사치스럽네'라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들은 얼마나 검소한 사람들인지를 알고 있다. 우리는 교환학생 시절 한국에서 매달 넘어오는 용돈의 무게감을 아는 딸들이었다. 한 푼을 아껴 쓰기 위해 매일 장을 보고 밥을 지어먹었다. 언어도 익숙하지 않고 식재료에는 더욱이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면 고민 끝에 언제나 가장 싼 고기를 골랐다. 그걸 구워 먹으며 '왜 이렇게 맛이 이상하지' 생각했고 "아! 핏물을 안 빼고 구워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몇 시간 동안 물에 담근 고기를 구워 먹었다. (여전히 그 고기는 맛이 없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용도의 고기가 아니었나 싶다.) 한 어머니가 딸의 생일파티 사진을 보고 고맙다며 뭐라도 사 먹으라며 보내주신 용돈으로 오울루 시내 팬케이크 집에 간 것이 거의 유일한 외식이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검소한 사람들이 세상을 탐험하는 여행은 멈추지 않는다. 교환학생 시절 유럽 땅을 밟은 이후 좀 더 대담하게 적극적으로 세상 이곳저곳을 누볐다. 여행은 사치나 자랑거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기 위함 그 자체이다. 새로움과 기회, 그리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그 경험이 주는 힘을 알기에 또 다음 여행을 기다린다. 물론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돈, 시간, 에너지 등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완전히 새로운 시공간에 나를 놓이게 하는 일. 익숙지 않은 상황을 맞닿들이고 그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일은 사실 그 자체로 스트레스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이 나를 성장시킨다. 칸트는 노동 뒤의 휴식이야 말로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기쁨이라 했다고 했다. 순수한 기쁨은 노동 후 찾아오는 휴가뿐 아니라, 이러한 여행이 주는 긴장감과 생경함을 이겨낸 후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경험치 그 자체에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오늘 우리는 하나같이 여행 계획이 있는 모습을 보고 참 유럽에 살아본 티가 난다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새로운 세상에 나서는 것에 큰 두려움이 없는 친구들. 울 엄마가 항상 이야기하는 호연지기란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모습. 오늘의 대화를 통해 교환학생 시절이 내 인생에 정말 특별하고도 중요한 경험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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