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바쁜, 그리고 아픈 시간이 이어지며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여행을 못 가서 병이 났구나 싶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더욱이 운신의 폭이 작아질 것 같단 생각이 들어 2주 뒤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행선지는 하노이, 베트남이다.
최근 어딜 간다고만 하면 꼭 일이 터졌다. 작년 터키 여행 전에는 성수동 사업지가 곧 EOD가 날 것 같아 갈지 말지를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고, 연말 태안여행은 태영의 워크아웃 선언 여부에 떨다가 결국 포기했다. (결국 태영은 워크아웃 선언을 했다.) 그리고 이번 하노이 여행 전날은 본부장님의 팩폭으로 전날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간신히 3시간을 자고 떠난 여행이었다. 힘든 회사사정이야 머리로, 마음으로 알고 있었으나 약간의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완전히 버려라. 다리가 부러진 사슴은 총을 맞는 게 더 좋을 수다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쉽사리 잠잘 수 있는 멘탈은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벌게진 눈과 저음으로 쿵쾅대는 마음으로 하노이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여행은 잊으러 가는 거다. 뭔가를 생각해서 결론을 내기 위함이 아닌,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버리기 위함이다. 다행히 무거운 마음도 하노이에서 많이 떨궈졌다. 3박 5일에 짧은 일정이었지만 알차고 행복했고 활기찬 기운을 얻고 돌아왔다.
땡처리 티켓으로 비행기표에는 돈이 얼마 안 들었지만, 생각보다 호텔가격은 비쌌다. 10만원 언더 가격의 숙소비를 예상했던 나는 결국 17만원짜리 방을 예약했다. 예약할 땐 좀 망설였지만 호안끼엠호수 바로 앞 위치와 깨끗하고 친절한 + 동남아의 습함이 없는 숙소라 만족스럽게 지냈다. 여담으로, 하노이 호텔을 알아보다 보니 창문이 없는 호텔들이 꽤 되었는데 이 호텔은 작지만 창문도 있었다.
정말 좋았던 건 베트남, 하노이는 음식들이 다 입맛에 맞았다는 점이다. 터키 여행과의 차이점 중 가장 큰 부분이다! 한국의 뛰어난 복제술 덕인지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맛! 까지는 아니었지만 가격, 맛, 포만감 다양한 측면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의 천국이었고 현지인 시장에서 손발과 계산기를 써가며 성취해 낸 과일 한가득도 즐거웠다. 꼭 먹어야지 다짐했던 두리안과 망고스틴은 못 먹었지만 슈가애플이나, 용안 등 새로운 과일을 다수 도전했다. 하지만 구관이 명관이란 말처럼 역시 최고는 망고였다.
흥미로운 곳들이 여러 곳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금요일밤 맥주거리와 토요일밤 호안끼엠 호수변이다. 하노이의 중심에 위치한 호안끼엠 호수는 석촌호수 같은 곳으로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장면처럼 그 주변은 오토바이, 자동차, 택시, 자전거 등 온갖 교통수단으로 무척이나 붐비는 곳인데 금토일 동안에는 차량통제를 한다. 그리고 그 차량통제를 하는 그곳에선 특별한 축제가 벌어진다.
금요일에 방문한 길거리 야시장과 맥주거리는 엄청난 규모의 야장으로 가본 적은 없지만 옥토버페스트는 저리 가라 하는 젊음과 흥이 넘치는 분위기였고, 토요일 밤 방문한 반대쪽 골목은 온 가족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활기찬 축제 분위기였다. 놀라운 건 그 축제 같은 분위기가 주최가 없는 모양새였다는 것이다. 주최가 없는 축제가 무슨 말인가 하면 10차선쯤 되는 도로 곳곳에 시민들이 나름의 이벤트를 만들고, 그것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모여 곳곳에 이벤트존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 형식으로 그 넓은 도로 한복판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 곳에서는 에어로빅, 그 반대편에는 바이올린 3중주, 한 블록 너머엔 댄스단의 공연이, 좀 더 넘어가니 단체줄넘기를 하느라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축제라 하면 주최가 분명하고 메인 무대와 간이 의자가 설치되고, 안전요원들이 배치되어 있기 마련인데 곳곳에 안전유지 경찰들은 조금 있었긴 했지만 그 모습은 참으로 평화로우면서도 즐거운 광경이었다. 10차선 도로의 중앙을 걸을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은 경험인데 언젠가 한번 해본 것 같아 기억을 돌이켜보니 몇 년 전 탄핵집회 이후 처음이었다.
하노이를 간다고 하니, 하노이에 뭐 할 게 있나? 하노이 할거 없는데,라는 말들이 주변에서 들렸다. 어딘가를 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꼭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다수의 경우 틀린 경우가 많다. 즐길거리와 활기참이 가득하고 시민들의 주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도시가 하노이다. 자세히 적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서대문박물관(서대문형무소) 같은 호아로 감옥박물관과 하노이 기찻길도 멋진 곳이었다. 마사지도 꼭 받아봐야 하고! 아참, 하노이의 인상적인 밤문화를 경험하려면 아무래도 주말이 좋다고 한다. 하노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목금토일월(3박 5일) 일정을 강추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