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의 이틀을 보내고, 마지막날은 하롱베이를 다녀왔다.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는 이곳은 바닷가에 수백 개의 작은 섬들 중간중간 솟아있는 지형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워낙 멋지단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하노이에서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라 이번 기회에서 원데이 투어에 참여했다.
하롱베이 투어는 내가 택한 당일치기뿐 아니라 크루즈에서 숙박을 하며 1박, 2박, 3박 여행까지도 진행된다고 하는데 박수가 더 길어질수록 하롱베이의 더 깊숙한 곳(구석구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당일투어투어를 했지만, 제트보트를 타는 옵션을 추가해서 1박을 해야만 가볼 수 있는 곳까지를 둘러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하롱베이 내 다양한 크루즈들
하롱베이 투어에도 여러 가지 옵션이 있지만 나는 인당 89,000원 수준의 15인 소규모 세미프리미엄 형태의 영어 투어에 참여했다. 비슷한 스케줄에 굉장히 다양한 가격대의 투어들이 있는데 보통 버스와 크루즈의 퀄리티와 식사의 종류(뷔페 or 식사 or 도시락)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 같았다. 영어로 진행되는 만큼 절반은 인도인(이유는 모르겠지만 베트남에는 인도여행객이 많았다!) + 절반은 그 외에서 온(한국인은 우리 말고 딱 한 명) 사람들이 모인 투어였고 투어가이드를 맡은 '남 Nahm'은 유창한 영어로 하롱베이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단체 사진도 몇 장 찍었는데 공유를 못 받아 아쉽다.)
열심히 설명중인 남과 투어 동료들
투어 특징상 하루종일 버스, 배를 같이 타고 식사를 같이 하기에 다른 투어객들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점도 장점이었다. 메뉴로 나온 오징어볶음의 재료를 유추하다가, 대화의 주제가 Squid Game으로 이어지고 그 이야기 끝에 인도에서 온 중년 어머님이 Parasite로 유명한 한국배우가 얼마 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참 글로벌화 된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와 넷플릭스의 힘이 놀랍기도 했다.
하롱베이 자체의 풍광도 좋았지만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동굴탐험이나, 제트보트, 카약 등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키톱섬에서의 해수욕장의 뷰도 정말 아름다웠다. 해수욕은 강추이고 그뿐 아니라 카약을 탄다면 무조건 젖으니 반드시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을 가져가거나 수영복을 입는 것을 추천한다.
엄청나게 큰 방이 있는 동굴탐험! 이곳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해저동굴이 베트남에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카야킹! 날이 좋아 원숭이도 봤다!
사진을 더 못찍은게 아쉬운 티톱섬 해변!
항구로 돌아오는 길 붉은 노을빛도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음식이나 음악은 없었지만 노을빛은 아름다웠고 하롱베이의 작은 섬들 사이사이를 지나는 풍경을 배경으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선상파티가 이런 게 아니면 무엇일까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평화...
하노이로 돌아오니 저녁 9시 정도였고 저녁식사와 전신마사지를 한번 받고 나니 밤 11시. 새벽 2시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기에 딱 좋은 시간이 되었다. 새벽비행기 일정의 하노이 여행에서 하롱베이 일정을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마지막날의 하롱베이도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하노이는 가급적 금토일 주말여행이 좋을 것 같고, 하롱베이는 일정의 효율을 생각해서 배치하면 될 듯싶다. 사실 그날, 예약해 둔 택시가 늦게 와 마음을 졸이며 공항에 갔는데 2시간 정도 비행기가 더 연착됐고, 그날 투어의 노곤함 때문인지 새벽까지 뛰어노는 중동 어린이들의 비명에도 2시간은 게이트 앞에서 딥슬립을 했다. 여행은 원래 피곤한 거라지만 물놀이를 하게 되는 하롱베이를 마지막 날로 한다면 저가항공 일반석과 공항 벤치에서도 딥슬립이 가능하다!
하노이에 다녀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 회사에는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하노이 출발 전날 본부장님의 충고는 매우 현실적 조언이었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도 훨씬 전에 회사와 직원 모두를 위해 실시해야 했던 일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하노이는 타이밍이 기가 막힌 여행이었다. 일말의 희망이 있다면 버려라, 라는 말을 들은 다음날 떠난 여행이자, 연차를 쓰고 가는 마지막 여행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점이 된 여행이기도 하니.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 중이다. 8년 동안 내 힘으로 떠나지 못한 이 회사를 떠나게 된 기회,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 졸업도 하기 전 23살에 취업한 내가 처음으로 소속이 없는 자유인이 된 기회. 만 7년 11개월을 가득 채운 퇴사이고 내 나이도 만으로 하니 정말 20대를 온전히 받친 첫 직장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 마음 홀연히 비우고 떠나리라. 그리고 이 기회는 곧 스페인 여행기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