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son & Goldstein(2003) 장기 기증 디폴트의 교훈
‘만약 내가 불의로 사고로 죽었을 때 장기를 기증하겠는가’라는 질문은 불편하다. 장기 기증이 사회적이나 도덕적으로나 올바른 것인지는 알지만, 나의 죽음이라는 불쾌한 주제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뜻 이러한 질문에 응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장기 기증에 찬성한다고 답하지만, 실제로 장기 기증 등록 비율이 높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불편한 생각들을 통과하는 것은 의의로 힘들다.
2003년 존슨(Johnson)과 골드스타인(Goldstein)은 장기 기증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기본 설정(Default)'이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결과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왜 국가마다 장기 기증 동의율이 차이가 나는가? 같은 유럽이지만 독일은 12%이고, 오스트리아는 99% 이상을 보인다.
논문은 장기 기증 정책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먼저 명시적 동의(Opt-in) 제도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은 기증자가 아니며, 기증을 원하는 사람만 별로도 등록해야 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이 채택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추정적 동의(Opt-out) 제도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이 기증자이며, 기증을 원치 않는 사람만 별도로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이 채택하고 있다.
실제 유럽 국가들의 데이터를 비교한 결과, 정책 차이에 따른 격차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Opt-in 국가들의 동의율은 대부분 4%~27% 사이에 머무른다. 반면 Opt-out 국가들의 동의율은 거의 100%에 육박한다. 이는 종교나 문화적 차이보다는, 각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법적 기본 설정(Default)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Johnson & Goldstein (2003), Do Defaults Save Lives? (Science)에서 발췌>
실제 161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확인했다. 세 가지 상황(Opt-in, Opt-out, Neutral)을 부여한 후 장기 기증 동의율을 조사한 결과도 Opt-out이 Opt-in보다 높게 나왔다. Opt-in 그룹에서 기증 동의율은 42% 이지만, Opt-out 그룹에서 기증 동의율은 82%였다. 질문을 강제로 선택해야 하는 그룹에서도 기증 동의율 79%로 나왔다. 기본 설정만 바꿔도 동의율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은 놀랍다. 수치상으로 보면 Opt-out 방식이 실제 사람들의 잠재적 선호라고 할 수 있는 중립 상태의 결과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Johnson & Goldstein (2003), Do Defaults Save Lives? (Science)에서 발췌>
존슨과 골드스타인은 사람들이 기본 설정을 따르는 이유를 기존의 연구에서 밝혀진 결과로 설명한다. 권고(Endorsement), 노력(Effort), 손실회피(Loss Aversion) 등이다.
먼저 암묵적 권고 효과이다. 사람들은 기본 설정을 정책 입안자가 제안하는 권장 사항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게 기본이라면, 정책당국이나 전문가가 추천하는 선택 아닐까?” 특히 의료나 공공정책 영역에서는 국가가 중립적이지 않다고 인식되기 쉽다. 코로나 시기에 코로나 백신을 맞는 것이 기본으로 설정된 것도 이런 연유다.
다음으로 노력이다. 사람들은 의사결정의 노력을 회피하고자 한다. 선택을 변경하려면 양식을 작성하고 서명을 해서 우편으로 보내거나 전화를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은근히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그래서 선택을 바꾸는 데 드는 물리적, 정신적 에너지를 피하려 한다. 장기기증처럼 불쾌한 주제에서는 이 아주 작은 비용이 결정을 방해한다.
마지막으로 손실 회피이다. 사람들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Status Quo)이 있다. 기본값을 바꾸는 행위는 무언가를 잃는 선택처럼 느껴질 수 있다. 즉, 상태를 바꾸는 것을 손실로 인식한다. 손실은 이익보다 더 크게 인식되므로 사람들은 기본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 논문은 적절한 기본값 설정을 통해 장기 기증을 통한 생명 구조를 높일 수 있음을 테이터로 증명한 기념비적인 연구이다. 정책 입안자는 무의식 중에 결정된 기본 설정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제도를 잘 설계하면 사회 전체의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잘 알고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