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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Jul 05. 2021

웃기고 진지한 자존갑입니다만

[출간 일기 4편]


<이 구역의 감별사>


 ❖ 궁예 전술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셔서…’로 시작되는 출판사 접수 메일을 받는다면 일단 고개 숙여 5초간 Thank you 하길 바란다. 투고하는 입장에서야 출판사가 나의 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신중하게 검토할 거란 환상을 품게 마련이다. NO NO NO~ 그들은 주로 돈 될 만한 투자처를 찾아다니고 계약된 책들의 출간 작업을 진행하며 기존 몇 년 치(보통 5년 치) 계약된 작가들의 세금 정산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살고 있다. 많게는 매일 수십 건 투고 메일이 쏟아지는데 일단 열어 봤다면 손가락 있는 사람~ 답메일까지 보내줬다면 손가락에 성의까지 있는 사람인 거다. 유감스럽게도 잘 접수되었다는 그 메일은 곧 거절을 뜻한다.


왜? 코코 샤넬의 손녀가 동시에 몇 명에게 제안 메일을 보냈다고 가정해 보자. ‘봉슉아~ 이번에 가족 할인가로 샤넬 클래식 미듐 사이즈를 단돈 100만 원에 떼어올 수 있수와~ 나랑 같이 팔아보겠수와? merci~’   이런 메일을 받았다면 빠른 판단으로 사업성을 점치고 다른 사람과 손잡기 전에 손녀 따님을 낚아채야 할 것이다. 너의 메일은 잘 접수되었고 검토하는데 2주 이상 걸린다 이런 답장을 쓸 시간 따위 없다는 말이다. 곧이곧대로 듣고 출판사에서 내 원고를 검토해 보겠다고 회신을 보내왔다며 풍악을 울리고 자진모리장단으로 흥겨워해 봐야 조만간 로봇에게 거절 메일을 받게 될 것이다.

<신사적인 로봇이 접수 메일을 보내는 유형>

⦿ 저희는 내부 담당자의 검토와 출판사 전체 직원의 회의를 거쳐 출간을 결정하는데요. 이 과정에 1~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경우에만 개별 연락드리고 있습니다.  로봇!

⦿ 원고 검토 후 그 내용에 대해 코멘트를 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수많은 원고 투고에 대해 일일이 답장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로봇! 

⦿ 투고 원고는 해당 팀에서 소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며, 검토 기간은 약 3~4주 걸리는 점 참고 바랍니다. 로봇!

⦿ 귀중한 원고 잘 받았습니다. 보내주신 원고는 편집부 검토 후 출간 여부가 결정이 됩니다. 출간하기로 결정이 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로봇! 

⦿ 현재 많은 분들께서 원고를 보내주셨고, 접수된 원고는 순차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검토 이후 출간하기로 결정된 원고에 한해서 개별 연락을 드리고 있습니다. 로봇!     

                                               


<그 로봇이 잇따라 거절 메일을 보내는 유형>

⦿ 보내주신 투고 메일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송구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출간 방향이 달라 출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송구 나와~!

⦿ 보내주신 원고 또한 내부 회의를 통해 성심성의껏 검토해 보았습니다. 다만 저희 출판사의 일정이나 출간 방향에 맞추어 상의한 결과, 선생님의 옥고를 출간하는 일은 역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옥고 나와~!

⦿ 보내주신 원고를 검토했습니다. 죄송하지만 현재 출간 방향을 고려해봤을 때   당사에서 출간은 힘들 것 같습니다.  고려 나와~!

⦿ 보내주신 원고는 잘 받아보았습니다. 다만 저희 출판사의 출간 분야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출간이 어려울 듯하다는 회신드립니다. 다소 나와~!

⦿ 공들여 쓰신 소중한 원고의 검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만 저희 출판사의 방향과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아쉽지만 이번에는 출간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상황 나와~!



출판은 연애와 exactly 똑같다. 왜 차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으며 붙잡아봐야 소용이 없다. 편집장의 입장에선 ‘차인 이유를 상세히 알려주세요’, ‘감히 날 차?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돈 줄 테니 책 내줘~’ 등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응답 내지는 정중한 기계적 거절을 하는 것이니 여기서 잠깐만~! 이것이 바로 상처 받지 말아야 하는 포인트다. 거절은 꼭 원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타이밍이 안 맞으면 일어나는 일! 물론 알면서도 계속 차이니까 작아지다 못해 티끌이 된 기분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보완점을 찾아 투고를 했더니 드디어 ‘신호’‘감지’되기 시작했다.




❖ 하트 시그널


맨 처음 투고했던 업계 1위의 그 출판사에 민망하게도 새로 고친 기획안을 재차 보냈다. (뭐 거의 점 하나 찍고 나타나 유혹하는 아내 느낌) 첫 메일에 받았던 기계적 답변과 달리 이번엔 예상 밖 ‘사람’이 답을 해왔다. 기획안과 원고를 검토했음을 강조하며 포기하지 말고 에세이 분야 전문 출판사 리스트를 다시 뽑아 투고를 멈추지 말라고 독려했다. 지긋지긋한 ctrl c + ctrl v가 아닌 것이 기뻤고 나름의 인정이 느껴져 짜릿했다. 하트 시그널은 보통 3일 안에 오는데 연이어 또 다른 출판사에서 원고를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전문 서적을 출판하는 곳으로 매출액이 높길래 혹시나 해서 기획안만 제출했던 곳이다. 기독 출판사에 ‘부처님 핸섬’ 이런 기획안을 보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갑자기 등장한 에세이 투고가 신선했는지 느낌상 내 원고를 끝까지 다 읽은 것처럼 답변을 보내왔다. 고심한 흔적도 역력했는데 한 번도 수필이나 소설을 출판했던 곳이 아니기에 파격적 시도의 기로에 서 있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출간할 의향을 물어 기분은 좋았지만 나 역시도 새로운 영역에 스타트를 끊는 것은 부담스러워 거절을 했더니 놓친 물고기가 커 보였는지 논문 급 답장을 주셨다. 출판의 역사부터 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내 덕분에 출판인으로서 많은 위로와 깨달음, 사명감 등을 얻으셨다며 꼭 책이 세상에 나와 스테디셀러가 되길 바란다고 덕담들을 쏟아내주셨다. 친구를 얻은 기분이었다.


❖ 프러포즈


그러던 중 아리송한 빛줄기가 내리 꽂혔다. 매우 간결하게 ’OO 출판사에서 일하는 OOO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회의를 통해 검토해보고 연락 주겠습니다.’ 이 출판사는 남편의 인생 책(누적 판매 무려 천만 부!!)을 출판했던 데라 끌렸던 곳인데 문제가 있었다. 일차적으로 로봇이 보낸 것인지 사람이 보낸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차적으로 이름을 보니 상남자인데 젊고 발랄한 내 글을 진짜 재미있게 읽은 거라면 보나 마나 매우 젊은 신참인 거였다.

‘여보, 우리 OO가 내 글 재미있게 읽었대. 아유 이뿨~ 재미있어쪄여? 근데 신참이 재미있게 읽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그래도 누나가 응원을 보내요~ 회의에서 꼭 누나 원고 윗사람들한테 보여줘야 돼요. 퐈이팅~’ 속으로 응원을 날리며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이틀 뒤 그 출판사에서 다시 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OO출판사 부대표 OOO입니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여보~~~ 우리 OOO가 부대표래~~~~’


To be Continued…

[글, 그림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무단 도용 시 단디 벌함]

#웃기고진지한자존갑입니다만 #박윤미작가 #인스타그램jazonegap #출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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