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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Jul 05. 2021

웃기고 진지한 자존갑입니다만

[출간 일기 5편]

<청춘 회고>


❖ We’ve got Married


조지 클랐니 부대표님의 프러포즈는 마카롱보다 달콤했다. 다른 출판사와 계약이 되었다면 알려 달라는 물음에 실시간으로 모니터를 향해 대답했다. 아니오 아니오, 계약되었더라도 의리고 뭐고 엎고 갑니다~ 인생 최초로 빌런 됩니다!! 이미 계약이 되었을 것 같다는 아쉬운 뉘앙스를 풍기시며 혹시 같이 작업해보지 않겠냐 제안을 해오니 또다시 모니터에 대고 다급하게 말했다. ‘네네네네네네네네네~ 네이~ 네이히~네이히히히히~’ 


자, 출간이 아니더라도 이런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 어떤 태도로 임하는 것이 가장 근사해 보이는지 팁을 전수하겠다. 일단 바로 응답하지 말고 최소 두세 시간 들뜬 기분을 좀 가라앉힌 후 신중함이 축적된 답을 간결하게 전하면 된다. 사실 고난도 스킬인데 상대가 나의 신남 내지 시큰 둥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정중하지만 센스 있고 품위 있게 어절 하나하나를 전달하면 된다는 말이다. 저녁이 한참 지나서야 메일을 받았던 난 충동적으로 날뛰는 손가락을 간신히 제압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우아한 답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뼈를 묻겠습니다~!!!’ 아하하하하하~ 그나마 저게 하룻밤 자고 난 후라 상당히 절제된 거였다. (죽일 놈의 손가락~)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우리 조지 클랐니 부대표님도 후회하는 눈치셨다. 상관없다.

모로 가도 계약!                                                       



❖ 대뜸 고백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때를 말하라고 하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20대라고 외칠 것이다. 청춘의 방황이 내게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옆사람이 같이 겪는다 한들 고난의 총량이 감소하는 것도 아니요, 서로 관심 없기도 피차일반이었다. 배부른 투정으로 보일까 꾸역꾸역 이불 뒤집어쓰고 쏟아낸 눈물이 73.8리터였다. 전쟁과 기근 같은 절대적 역경만이 고통인 것이 아니라 청춘의 불확실성은 지긋이 사람을 기죽게 만들었는데 그에 보태 일이 연거푸 안 풀리니 저주에 걸린 공주님 뒤치다꺼리나 하는 시녀가 된 참담함을 느꼈다.


십 대의 나는 법대를 진학하라는 진절머리 나는 주변의 강요에 보란 듯이 이과를 갔고 반항 섞인 오기로 나름 적응도 잘했었다. 불수능이란 핑계로 애매한 성적표를 받아 든 난 한창 유망하다던 환경학과에 진학을 해 야심 차게 지구를 지켜낼 참이었지만 앞에 놓인 1미터 앞길도 지킬 방법을 몰랐다. 솟아날 구멍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는데 IMF가 터진 직후라 부익부를 제대로 실현한 온갖 부티나는 자손들과 같이 공부하느라 빈익빈만 정통으로 느꼈었다. 귀국해 재빠른 취업으로 능력을 입증하겠다던 포부와 달리 유학으로 졸업만 늦어진 나이는 취업 문턱에서 천대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참되는 일이 0.5개도 없구나 싶을 때 주변인이 치고 나가는 뒤태를 봐야 하는 건 일상에서 겪는 최악의 고문이다.


간신히 캐나다 학교에서 선생님을 뽑는다는 구인 모집에 합격해 꽃길 좀 걷는가 했더니 하필 상사들의 불륜을 목격해 젊은 순수함에 세상은 더러운 곳이었다며 괜한 패배감에 짓눌렸다. 운 좋게 영어 교육 호황기가 도래해 높은 몸값이 되기도 했지만 삶의 질은 으스러지고 늘 퀭하기만 했다.


제법 큰돈을 벌 때 깨달은 한 가지는 ‘돈’조차도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는데 그 덕에 지금도 돈과 밀당하면 백전백승이다! ‘돈아~ 나랑 있기 싫니? 그럼 꺼져! 나도 됐거든!’ 청춘의 꼬여감이 정신 승리 하나는 남겨줬지만 그 이력이 제법 숨통 트이며 성인들을 가르치고 방송인을 했던 30대에도 내 발목을 잡곤 했었다. 환경학과 나와서 영어를 가르치네요? TESOL 자격증이 없네요? 학사 출신이네요? 자기 밑천이 드러나는 줄도 모르고 상대방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예상보단 적었지만 생각보다는 많았다. 그래서 한동안 나의 20대가 미웠고 그 시간을 불행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글, 그림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무단 도용 시 단디 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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