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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Jul 02. 2020

인국공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이유

인국공 정규직 직원들은 김연경이 아니다.

 지난 6월 여자배구계의 메시라고 불리는 세계 탑 배구선수 김연경이 11년 만에 복귀를 했다. 그것도 기존 연봉 17억에서 무려 80%를 삭감한 3억 5천만 원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부상 여파나 올림픽 대비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했지만, 세계 어느 팀을 가도 연봉 20억을 받을 수 있는 배구 여제가 겨우 3억 5천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샐러리캡 문제다. 한국 배구연맹에서는 한 팀의 독주를 막고자 각 팀, 선수마다 연봉 총액 제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유명선수들을 한 팀에서 싹쓸이해버리면, 리그 운영의 질이나 재미가 한층 떨어지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총 23억원의 연봉총액제안에서, 리그 탑급 선수인 이재영, 이다영에게 총 10억 원을 지불했다. 그리고, 선수 한 명에게 최대로 줄 수 있는 6억 5천만원을 김연경에게 지불하게 되면, 다른 팀원 12명이 남은 6억 5천만원을 갖고 나눠야 한다. 김연경 영입 하나로 다른 팀원 12명의 연봉 삭감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와 관련해 꾸준히 한국배구연맹측(KOVO)에 연봉 총액 제한(샐러리캡)의 상한선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KOVO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 기어코 23억 내에서 김연경을 영입하고 다른 선수들과 게약을 하기 위해서는 한쪽의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김연경은 다른 선수 12명의 계약을 선 집행한 후 남은 금액으로 계약하겠다고 하였고, 흥국생명은 세계 탑급 선수를 3억 5천만원이라는 헐값에 계약할 수 있었다.



 관련해서 배구계는 물론 스포츠계에서도 김연경의 희생에 손뼉 치면서도 KOVO의 안일한 대처에 비판을 하고 있다. 김연경 영입을 그대로 하고, 김연경이 6억 5천을 고수했다면, 3억 원의 증분액만큼 12명의 선수들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태가 김연경의 희생으로 마무리되면서 훈훈하게 포장되었지만, 김연경의 결심이 있기 전까지 12명의 선수들은 생계가 걸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연경 역시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포기한 것은 어느 누구도 책임져주고 있지 않다.


 원래 하려던 얘기로 돌아오자.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화 실시(이하 인국공 사태)로 인해 끊임없는 '을과 을'의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인국공 비정규직 1900명이 정규직화 되며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의 갈등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도 핵심은 샐러리캡이다.


 현재 공공기관은 기획재정부 예산 편성 지침에 따라 총액인건비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인건비 총액을 정해두고 이 안에서 직원 월급 등을 주는 것이다. 어떤 기관에서 인건비 총액을 초과한 임금 상승이 있다면 이 기관은 경영성과 평가에서 낮은 점수가 나오고, 다음 예산 편성 때 불이익을 받는다


 인국공 사태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바로 총액인건비, 이른바 샐러리캡 문제이다. 인천 국제공항 역시 민영화되지 않고 공기업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총액인건비 제도를 적용하고 있으며, 이 샐러리캡 안에서 1,500여 명의 정규직 직원에게 임금을 지급하던 현상황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직원 1,900명이 정규직화 되면서 해당 임금분까지 포함해서 나눠줘야 한다면 아무리 기재부 예산 지원이 늘어난다 해도 한동안은 기존 정규직 직원의 임금이 동결 혹은 상승 저해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부분을 피하기 위해서 인국공은 자회사를 설립하여 다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기도 했다. 자회사 설립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이들의 인건비는 총액인건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업비’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검색 보안 1,900명에 대해서는 인천 국제공항공사 직고용을 하게 되면서 자회사 고용하는 우회전략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 5월까지 만해도 인국공사장도 자회사 설립을 통한 경비보안 고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지난 5월 20일 청와대 주관으로 열린 국방부, 경찰청, 국토교통부, 국정원 등 관계 기관 회의 뒤 공사의 입장이 뒤집힌 것에 대해 스스로 모순된 결과를 발표해 옹색한 입장인 것이다.



 기존 정규직 노조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재부가 1900명분의 인건비 예산+a 만큼의 지원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사측이 결정한 데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의 권리를 위해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평균 연봉 9100만 원 받는 사람들이 고작 절반도 안 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라고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인국공 정규직 직원들의 연봉에는 경영평과 성과급이 존재한다. 어떻게 회사 살림을 잘 꾸려나갔느냐에 따라 추가로 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동기부여 장치가 있다. 고정된 기본급 외에 모두가 일을 잘 해내야 하는 이유에는 기재부에서 할당된 예산 안에서 이 인센티브 금액을 활용해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도록 독려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공항이 12년 연속 공항서비스 세계 1위를 지켜내었던 것이다.


 

 고정된 샐러리캡에 외부인력이 들어와 당장 임금보전을 넘어 성과급을 나눠야 하니 당연히 실질적 임금 삭감의 요소가 되는 것을 단지 야박하다고 몰아세울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지속적으로 정규직 직원들을 비판해온 김두관 의원처럼 평균 연봉이 1억 5천만 원인 국회의원들에게 평균 연봉 3,300만 원의 비서들의 연봉을 올릴 테니 국회의원 연봉을 깎자고 하면 깎겠는가?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 국회 인턴들을 모두 정규직 시킬 테니 국회의원 연봉에서 깎자고 하면 깎겠는가?


 김연경의 자진 연봉 삭감 사례는 결국 KOVO와 흥국생명만 좋은 일을 시켜주었다. 김연경은 당연히 받을 수 있는 3억을 못 받게 되었고, 다른 12명의 선수들은 김연경의 양보로 3억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김연경 한 명의 희생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김연경과 달리 인국공 정규직들은 생계인이다. 프로선수인 김연경의 3억만큼 인국공 정규직들이 회사 안에서 그려왔던 미래 또한 중요하다.


+ 이번 편에서는 정규직 입장에서 왜 분노할 수밖에 없는지 정리했습니다. 그냥 맛보기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고, 다음 편은 왜 취준생들이 인국공사태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지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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