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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02. 2020

재택근무일기 1일차 B

밥도 내가 하고 일도 내가 하고 1인 기업...?



AM 11:30_밥은 누가 할래?

우리 회사는 11시30분부터 점심시간이다. 재택근무한다고 배가 늦게 고플리가. 슬슬 밥 먹으러 가려고 컴퓨터를 멈추고 일어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갈 곳이 없다. 회사에서는 6,600원만 내면 햄버거도 먹을 수 있고, 김밥 라면도 먹을 수 있고, 5,000원만 내면 대형 급식을 먹을 수도 있다. 아니 좀 더 보태서 밖으로만 나가도 여의도 맛집이란 맛집의 음식들은 즐비하다. 그런데...? 우리 집엔? 햇반, 사각 김, 김치, 계란, 스팸 이게 전부였다. 인터넷에 이어 두 번째 충격이다. 혼자 살다 보니 집에 대충 비상식량만 챙겨놓지, 밑반찬을 구비하지 않은 탓이었다. 



AM 11:45_아니 그래서 이제 밥 준비한다고?


김치를 썰고 스팸을 큐브 모양으로 썰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김치와 스팸을 넣고 볶는다. 어떤가? 재택근무를 하며, 점심을 정갈하게 준비하는 모습일까? 절대..! 한정된 점심시간 내에 빨리 밥 먹고 쉬고 싶은 건 모든 직장인의 공통 마음가짐이듯, 밥을 만드는 시간마저도 아깝다. 재빨리 볶고, 햇반을 돌려 밥도 부어 같이 볶는다. 그리고, 어딜 가겠나 다시 우리 집 나의 사무실인 내 방으로 밥을 갖고 들어왔다. 이상하다. 밥 먹는 곳은 방금 전까지 일하는 곳이었고, 메신저에는 밥 먹으러 가지 않은 사람들이 메신저에 불을 밝히고 있다.



AM 12:00_혼밥인데 왜 목이 막히지?


회사에서 나만큼 혼밥 잘하는 사람도 없다. 군 제대하고 복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에서도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익숙했다. 회사에 와서도 팀원이나,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점심을 먹다 보면 지치는 날도 있어 혼자 밥을 먹는 게 별미였다. 그런데 집에서, 일하던 컴퓨터 앞에 앉아 넷플릭스를 틀고 밥을 먹을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하다. 뭔가 일과 휴식의 경계가... 없어지는 기분...? 



PM 01:00_말을 안 하고 살아도 되겠는데...?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그리고 업무를 대부분 메신저와 메일로 하다 보니 오전에 전화 온 팀장님과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오늘 한마디도 안 한 것이다. 이 고요하고, 적막이 흐르는 나만의 사무실 너무 좋다. 이렇게 평안하게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정말 원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딱 1시간 만에 깨졌다



PM 02:00_피아노 천재의 귀환


코로나바이러스는 나만 재택근무시킨 게 아니었다. 어쩌면 전국의 수많은 직장인들, 그리고 학생들, 아이들을 집에 머무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유치원, 초등학교는 휴원 휴교를 했지만, 엄마 아빠들은 회사를 나갔을 수 도 있다. 그럼 할머니 할 아버지가 맡아서 봐줄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 친구들이 지금 우리 집 위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1시간가량을 건반을 치고 있었다. 나도 클래식이라면 문외한이지만, 이건 분명 못 치는 게 맞다. 왜냐하면, 한곡을 모두 연주하지 못하고, 계속 같은 마디를 반복해서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트럭에 과일 싣고 골목을 지나가는 아저씨, 골목에서 술을 자시고 소리치는 아저씨 등 회사에서는 경험해볼 수 없는 극악의 근로환경에 쳐해지고 말았다.



PM 05:00_업무 공식 종료


'매니저님~ 몇 시에 퇴근하실 거예요?'

'롸잇나우! 재택근무자도 5시에 퇴근하라고 했잖아요 어서 컴퓨터를 꺼요!"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칼퇴근, 누구보다 조기퇴근을 잘하던 나였는데, 어째 모두의 불이 켜진 상태에서 컴퓨터만 꺼버리는 게 마음이 신통치 않다. 그래도 어쩌겠나 재택근무기간 동안에는 전 직원이 5시 퇴근이라고 하니.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귀가 시간. 말도 안 돼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내가 반바지를 입고 내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있다니...?! 그런데 재밌는 것은 집에 오자마자 자기 전까지 시간이 아까워 바로 컴퓨터를 켰던 나인데, 이상하게 퇴근을 했다고 하니까 바로 옆 저기 침대도 눈길이 안 가고 거실의 소파로 당장 갔다. 내 방에서 나가야만 진짜 퇴근을 하는 기분인 것이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 드디어 넷플릭스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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