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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03. 2020

현실적인 재택근무 장단점

좋으면서도 싫은 티는 팍팍나는 재택근무 2일차

허세인지는 몰라도, 재택근무 일기를 쓰기로 하면서 부터 내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는 내키지 않는 척을 해야지'

'그래야 사람들에게는 내가 집에서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일 거니까'


감상이나 느낌을 한 두 번은 거짓으로 감출 수는 있어도, 반복하긴 힘들다. 재택근무 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세 번째로 쓰면서 보다 그간 재택근무 일기에 쓰였던 것 말고도 뭐가 안 좋은지 찾으려다 보니 오히려 글이 이상하게 써지는 것 같아 솔직하게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쓰다 보면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 솔직하게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택근무 이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해본다.


"재택근무는 정말 좋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불편함과 불안함이 재택근무의 장점만큼 상쇄한다"


AM 07:00_ 늦게 일어나서 좋아 ^ ^ b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것은 다시 말해 열악한 근무환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회사가 바로 앞 건물이 아닌 이상에야, 1시간 내외의 출근길을 나서기에 앞서 최소한 출근 2시간 전에는 기상해야 한다. 혹여 전날 과음을 했다거나, 늦게 영화를 봤다거나, 스포츠 경기로 밤잠을 뒤척일 때는 다음날 아침은 정말 곤욕이다. 사실 이것보다 더 끔찍한 건, 전날 느끼는 감정들이다. 특히 주말을 실컷 놀고 쉬었으면서, 일요일 오후 11시 나의 최애 프로그램 SBS 스페셜이 끝났을 때는(예전 개콘의 이태선 밴드 음악이 주말을 종료하는 멜로디였듯이)  '다시 지옥 같은 일주일이 시작되는구나'와 같은 감정으로 잠이 오지 않는 주말 밤의 끝을 부여잡느다. 


 그런데, 이번 주말은 달랐다. 일요일 잠들기 전에 "아.. 회사 가기 싫다"만 반복이던 내가 "ㅋㅋ 내일도 회사 안 간다!!!"라는 마음이니 잠도 너무 쉽게 온다. 물론 월요병이 사라졌다기보다는 그 시점이 아주 뒤로 밀려서 월요일 아침 노트북을 켜기 1시간 전쯤 고통이 밀려온다. 그래도 고통을 부여잡는 시간이 줄어든 게 어디인가? 정작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지금 평균 기상시간은 재택근무 이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 4년을 몸에 체득한 나의 생체 알람이 알아서 깨운다. 오히려 잠을 편하게 들어 제대로 잠을 잔다는 게 장점일 정도.


AM 08:00_지옥철을 타지 않아서 좋아 ^ ^ b


 이뿐인가, 나는 여의도에 있는 우리 회사까지 Door to Door로 90분이 걸린다. 왕복으로 180분, 3시간이다. 수포자 문과생이 산수 하는 걸 좋아하니 계속해보자면 하루의 잠자는 시간이 6시간인데, 그 절반의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낸다. 회사에서 근로하는 시간이 8시간인데 그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고 있다. 아침에는 잠이라도 깨고, 뇌라도 깨우는 시간이라고 다행일 수 있는데, 퇴근할 때의 90분은 정말 지옥이다. 서서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리디북스, 퍼블리, 밀리의 서재로 책 읽거나 아티클을 읽는 게 전부지만, 어디 그게 매일 하는 게 쉬운가?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니 3시간이 생긴다. 아직도 아침에 많은 일을 하고도 책상 앞에 앉았는데,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출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다.


 또 9호선 급행을 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출퇴근길 9호선은 '찌부'되어 다닌다. 설국열차 꼬리칸보다도 높은 인구밀도와 열악한 환경의 지하철 도착역에서 쏟아지는 인파들을 볼 때면 서로에 대한 연민도 강화되는 느낌은 모두 알 것이다. 피곤하게 출근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 정말 큰 혜택이라는 생각이다.


AM 10:30_비울 수 없는 자리


 회사에 가면 유독 화장실을 자주 찾게 되는 건 월급쟁이 직장인의 숙명인가. 회사를 다니면서부터 유독 화장실을 찾는 게 잦아졌다. 한국에서도 기업문화가 좋다고 소문난 회사에서, 비교적 더 좋은 분위기의 조직에 있으면서도 가장 개인적이고,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갈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회사에서는 잠시 화장실을 위해, 흡연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이 재택근무에서는 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 사이에 메신저가 오면 어떡하지?'

'노트를 펴고 생각을 한다고 컴퓨터가 노란불(부재중)이 뜨면 어떡하지?'


회사에서는 당연하고, 익숙했던 행동들이 보이지 않는 관계에서 오는 불신을 키울까 걱정되어 자리를 더 못 비우고 있다. 더 오랜 시간 앉아있는 덕분인지 허리는 요 며칠 새 급격하게 통증이 온다.


AM 11:30_요리 스트레스, 휴식의 소멸


 앞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점심시간이 가장 큰 비효율이다. 회사에서는 점심시간 내려가 5천 원만 내면 매일매일 다른 메뉴에 호텔 셰프 출신의 퀄리티 높은 음식으로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과장을 보탠 말이지만, 그만큼 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다. 또, 밥을 먹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입가심하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식곤증도 사라졌다. 그런데, 집에서 근무를 하면서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내게 밥을 해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밥을 해야 했고, 설거지도 쌓여만 갔다. 이뿐인가? 밥을 해 먹지 않으려면 배달을 시켜야 하는데, 밥을 해 먹든 배달을 시켜먹든 메뉴는 거기서 거기다. 재택근무 단 3일 만에 질려버렸다. 물론 그사이에 주말이 있었고, 그 덕에 몇 날 며칠을 집에서 밥을 먹은 탓도 있지만, 매일 밥을 먹는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재택근무의 일상화가 되어도, 매일 다른 메뉴의 도시락을 배달받지 않는 이상 이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또, 밥 차리고 밥 먹고 설거지하면 그 시간이 온전히 나의 점심 휴식시간을 갉아먹게 되어 나의 쉬는 시간이 사라진다. 덕분에 점심이 매우 곤욕스러운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또, 산책을 하고 수다를 떨면서 회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털 수 있는 시간들이 사라졌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이게 밖에서 잠깐잠깐 볼 때나 유튜브, 넷플릭스가 재밌는 것이지 점심시간마다 틀다보면 물린다. 


PM 2:00 _쏟아지는 식곤증, 그리고 온습도.


 식곤증이야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몰려오는 것은 비슷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회의를 하다 보면 자꾸 말을 하게 되어 입이 풀리고 몸이 움직여지면서 풀린다. 그런데, 정말 하루 종일 입을 꾹 닫고 오로지 마우스와 키보드만 딸깍거리게 되니 몸의 움직임이 떨어져 금방 식곤증이 몰려온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환경이 있었는데, 바로 온도와 습도다. 바깥 소음을 막고자 문을 닫았더니 난방온도가 올라가면서 집이 정말 더워진다. 잠깐 창문을 열면 아직 겨울 기운이 가시지 않아 금세 추워진다. 또, 작은 공간에 가습기 없이 노트북만 돌아가니 건조해진다. 회사 사무실은 넓고 높아서 공기 순환도 잘되고, 덥거나 건조하지도 않았는데 생각지 못한 환경의 역습이다.


PM 04:00_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나의 목소리


 이날 오전부터 메신저로 빠르게 말들이 오갔다. 


"어쏘님, 팀장님한테 메일 보낸 거 왜 저한테(파트장) 따로 얘기 안 했어요?"

"매니저님한테 논의드리고 보고하기엔 팀장님이 서둘러 보고해달라고 해서요. 매니저님한테 메신저로 일일이 설명드리기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그냥 한 번에 정리해서 메일 썼습니다."

"아 어쏘님께서 오히려 이렇게 논의 없이 메일을 쓰시니까 어쏘님이 해야 할 일만 늘어나니까 그렇죠."

"네 그렇긴 한데.. 하.. 이거 우리끼리 설명하고 팀장님한테 또 보고하고 말로 간단하게 우리끼리 논의할 일을 너무 오랜 호흡으로 하는 거 같아서 지쳐서요"

"다음부터는 차라리 저한테 넘겨주세요 지금 어쏘님 보고한 거대로 하면 어쏘님만 해야 할 일 많아져요"


사실 메신저로만 말들이 오가니까 간단한 것도 길게 길게 쓰고 있다. 보고야 간결하게 할 수 있다지만, 팀원 파트원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해야 할 일들인데 메신저로 하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정말 키보드 치다가 손가락 부러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회사에 있다 보면 이렇게 키보드 많이 칠 일이 없었다. 오히려 마우스 딸깍이는 게 일이었지. 키보드를 많이 친다는 건 엄청나게 메신저로 사람들이랑 이야기한다는 건데, 회사에서는 메신저로 수다 떠는 게 재미긴 해도 눈치가 보여 그만큼도 못하지만 재택근무하면서 업무 얘기로 이렇게 많이 채팅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안 그래도 일이 많아질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는데, 파트장과 메신저에서 날 선 이야기들이 오가니까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말로 하면 웃으면서 시작하고 웃으면서 끝날 이야기들인데 메신저로 무슨 이모티콘 스티커 동원해서 할 것도 아니니 전달되는 뉘앙스가 왜곡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어쏘님, 파트 회의가 어려우니 전화로 우리 to do list  설명해주세요"

 "네 이거, A팀 개발자가 이건 이번 주까지 개발된다는데, B팀은 개발 요청일 어긋났다고 한주 밀린다네요"

 "아.. 그래서 날짜가 다른 거구나? 알겠어요 ㅎㅎ 생각보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네요?ㅎㅎ"

 "그러니까요 ㅋㅋ 제가 설명드린 것 중에 아까 그 엑셀은.."


메신저로 할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아주 짧은 시간에 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목소리의 톤 높낮이를 주며 나의 말하고자 하는 뉘앙스를 더욱 풍부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게 아니라 한마디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나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PM 06:00_저 퇴근할게요!

 

 재택근무를 하기 전에는 사무실에서 같은 파트가 아니어도 한 마디씩 나누고, 농담도 하고, 뉴스도 이야기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눈빛, 목소리를 교감해왔는데, 집에서 일을 하고부터는 메신저가 켜진 사람들과 일을 하니 매우 제한적인 대화들만 오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퇴근할 때도 굳이 인사할 필요가 없는데, 우리 팀은 원래 출퇴근 시에 인사를 안 하긴 해도, 친한 사람들끼리는 목소리로나마 인사라도 했는데 이것마저 사라졌다. 누군가는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내게 회사가 차지하는 게 일보다 사람과의 만남의 장이라고 정을 더 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약간은 인간미 없는 아쉬움이 있는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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