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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호 Aug 23. 2020

버킷리스트 말고 행복리스트

버킷리스트 말고, 행복 리스트를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하는 이유

은퇴는 대충 찍는 객관식이 아니다. 철저한 취향 맞춤형 주관식이다.


경제적 자유 혹은 은퇴를 생각하면 누군가는 내부자들에 나온 것처럼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할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귀농을 떠올리는가 하면, 건물주이자 카페주인을 꿈꾸기도 한다. 은퇴해서 제주도 가서 게스트하우스 하면 연예인들이 놀러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국내에서의 소박한 삶을 영위하든 해외를 나가서 조금은 플렉스를 꿈꾸든, 각자가 원하는 삶의 형태는 다르고 그 모습 또한 골목 카페 이름이 수 만개인 것처럼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원하는 진짜 은퇴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경제적 자유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은퇴 후의 일상이 곧 필요한 은퇴자금을 가늠해보는 바로미터가 되고, 원하는 미래의 청사진이 되기 때문이다. 목표가 없으면 과정이 불투명해지고, 그저 어설프게 은퇴자금이 평균 몇 억이니, 대한민국 노인빈곤율이 OECD 최소치이니 하는 공포 마케팅에 휘둘려 매달 수십 만원씩 보험회사에 납부하는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은퇴 후의 일상을 지탱할 '최소한의 현금 흐름'이 곧 경제적 자유의 기준이 되므로, '구체적인 은퇴의 모습'를 스스로 정의해야 경제적 자유 달성을 위한 목표 설정도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진짜 은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잠시 연애를 할 때를 생각해 보자.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으면… 눈물을 닦고 연애하던 친구를 떠올려 보자. 행복한 연애는 무엇으로 완성될까? 상대방을 시도 때도 없이 웃겨주기? 상대방이 원하는 모든 것을 사주기? 매일매일 너 생각나서 사 왔다며 꽃을 사주기? 모두 아니다. 서로 만났을 때 편하고 행복할 때 비로소 행복한 연애가 완성된다. 행복한 연인은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만 해도 세로토닌이 뿜어져 나오고, 저렴한 숙소에 머무는 경제적인 여행을 해도 행복한 기분이 샘솟는다. 매일같이 파인 다이닝을 즐기거나 값비싼 선물을 주고받는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아도, 둘 만으로 충분하다.


은퇴도 마찬가지다. 진짜 은퇴는 드라마의 한가한 재벌 회장님 모습이나 광고에 나오는 골프 모델의 모습이 아닌,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래야 오랫동안 유지 가능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시간을 채워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한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나는 뭘 해야 행복한 거지?


당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전의 나는 확실히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행복의 정의를 불행에서 찾으려 했다. ‘나는 아직 공부만 해야 하는 학생이라서 행복하지 않아.’, ‘나는 취업이 아직 되지 않아서 행복하지 않아’, ‘아직 나는 독립하지 않고 부모님 집에 눌러앉아서 행복하지 않아.’라고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서 나의 행복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소유의 갈망으로부터 불행을 느끼니, 그 갈증을 채우면 행복해지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 갈망이 해결된 순간,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 정도는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는? 다들 알다시피 인생은 결핍의 연속이고, 갈망은 하루하루의 그림자와 같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갈망을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평생 행복하기 어렵다. 학업이 끝나니 취업, 취업이 끝나니 연애, 연애를 하다 보니 결혼, 아이, 집, 차... 이러한 삶을 살다 보면 죽기 직전까지 관짝을 소나무로 할지 향나무로 할지 고민하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갈망의 굴레에 내 삶이 휘말리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사실 행복은 경험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온다. ‘파이어족이 온다’를 쓴 스콧 리킨스는 은퇴 준비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행복리스트를 쓰는 일이라고 한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내가 충분한 돈이 있다면 어떤 핵심적인 경험을 하면서 남은 일생을 채우고 싶은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난 1년을 돌이켜 보자. 조금씩 나아가 10년을 돌이켜 보자. 일상적이지만 행복했던 경험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소중히 하는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주의해야 할 점은 절대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것의 문제점은 불행을 피하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오는 것을 방관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하려고 자취하다가 생활고에 시달린다거나, 너무 외로운 게 싫어서 대충 아무나 만났다가 나쁜 사람 만나서 고생한 이야기 정도는 주변에서 흔하게 들어봤을 것이다.  


by @cathrynlavery from Unsplash


나의 행복 리스트


하루 정도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자주 가는 카페나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1시간 정도만 조용히 자신의 행복리스트를 써 보자. 나 역시 나의 행복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행복리스트의 구성 요소는 다음 세 가지 정도를 정하면 제일 좋다.   


1. 나를 행복하게 하는 10가지 : 구체적으로 최근 1년 내에 행복하다고 느꼈으며,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들

2. 내 행복의 기준 : 특정한 활동보다는 기준이 되는 철학에 가까운 가치관

3. 나에게 덜 중요한 가치들 : 누군가에게는 중요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덜 중요한 항목


가능하면 세 가지 항목 모두 작성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사람은 최소한 행복리스트 10가지만 써 보는 것도 좋다. 행복리스트를 작성해 보면서 진지하게 나 자신을 바라볼 수가 있었고, 어떤 활동에서 나는 행복함을 느끼는지, 나의 남은 삶을 어떤 방향으로 채워야 할 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 세 가지에 해당하는 행복리스트를 만들어본 결과는 글의 가장 아래에 첨부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행복리스트를 쓰고 나서 마음 깊이 행복해졌다. 일종의 내 삶의 지침서를 나 스스로 찾아낸 기분이었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고, 앞으로 계속 고쳐나가야 할 리스트이다. 삶이라는 것은 하루하루 변해가고, 일 년만 지나도 사실 느끼는 감정이 사뭇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저 방향을 설정하는 가이드로서만 생각하자.


6.25 한국전쟁을 역전 끝에 휴전으로 이끌고, 군대 내 인종차별을 금지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말했다.


계획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다.

계획을 세우고 달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고, 완벽하게 달성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계획을 세우는 과정 자체가 삶에 행동력을 부여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의 은퇴, 경제적 자유, 오늘 당장 행복리스트부터 써 보자. 그러면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어떤 모습의 은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바호와 아내의 행복리스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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