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외딴섬 오리 세알

by 모정연

유민정과 태주님이 아직 내 자리에 서서 한참 '그 모임'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다.

“다들 무슨 좋은 일 있어?”

출근한 하영님이 웃으며 내 자리로 걸어왔다.

유민정이 하영님께 재빠르게 인사했다. 어쩌면 나와 잡담보다 하영님에게 눈 인사 한번을 더 하기 위해 여태 서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한 번 빚어진 옹졸한 편견 그릇은 부서지기 힘들었다.

“오늘 그날이라 그거 얘기하고 있었어요 하영님.”

태주님이 대신 우리 둘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도련님이 마련하신 모임 가는 날이요.”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하영님이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어제 도형님이 모임 만들었잖아요. 민정님이 도형님이랑 잘 아는 사이라서 같이 만들었다나봐요. 그리고 우리 연조님도 동갑이라 초대됐구요.”

“아, 어제 얘기 들은 거 같은데, 도형님이 만들었다는 모임 말이지? 잠깐만 우리 연조님도 도형님이랑 동갑이었어?”

하영님은 문도형과 유민정이 함께 그 모임을 주최했다는 부분은 가뿐히 넘겼다. 그러고는 일시정지해 곱씹는 부분이 내가 문도형과 동갑이란 포인트였다.

“네 연조님이랑 저랑도 동갑이라서요.”

유민정의 대답에 팀장님이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잠시 하영님 입이 벌어지고는 내 어깨를 꼭 붙들었다.

“어떡해 너무 잘 됐네! 연조, 정말 잘 됐다.”

이어지는 탄식과도 같은 감탄. 하영님은 아예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거기 가면 친구들도 사귀고 진짜 좋은 거잖아.”

옆에 엄연한 <발령 동기>가 있음에도 하영님은 나의 외로움을 꿰뚫는 투로 반색했다.

“오늘이라고? 그럼 오늘 저녁에 바로 먹으러 가는 거야? 나 왜 연조님이 도형님이랑 동갑인 걸 생각도 못 하고 있었지? 어제 그 얘기 다른 사람한테 들었는데도 연조님이 포함될 거라 생각을 아예 못 했어.”

저토록 좋아하는 하영님 얼굴에 안 갈 거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동기 아니어도 그런 곳 가면 다 친해지고 너무 좋지.”

하영님은 동기도 없이 외딴섬 오리알로 홀로 둥둥 표류하던 내 처지를 간파했다.

그것이 못내 착한 팀장님 눈에 눈엣가시 였을까.

팀원 대다수가 공채 출신이라 그들은 툭하면 동기 모임으로 점심 저녁을 불려 다녔다. 누군가 모임으로 식사를 함께 못 한다고 할 때면 하영님은 나를 한 번씩 물끄러미 보곤 했다. 그 눈빛의 뜻은 어렴풋이 해석했었다.

“오늘 어차피 급한 일 없으니까 일찍 마칠 수 있잖아. 일찍 정리하고 가.”

창업자 아들이 만든 모임이 팀장님에게 조언을 받아야만 할만큼 중대한 약속이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 눈치 없이 불참하려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이 회사에 발 붙일 수 있게 해준 우리 하영님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나는 거절할 수가 없어진다.

“예……. 그럴…게요.”

드디어 나에게도 맘 터놓을 ‘동료’가 생겨 너무나 행복해하는 얼굴. 나는 나를 이곳에 발 붙이게 만들어준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선택이 결국 표류하는 아웃싸이더를 만든 실패가 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이왕 가기로 한 거 뭐 그렇게 똥씹은 표정이십니까.”

모임 장소로 가기 전 회사 1층 입구에서 숙희와 만났다.

숙희는 나의 번복과 철회에 웰컴이라며 두 팔 벌렸다. 벌써 새로 개업하는 레이니 펍의 맛집 메뉴들을 줄줄 읊었다.

퇴근하기 전 하영님과 태주님은 내게 화이팅을 외쳤다. 전장에 나가는 막내를 응원하는 얼굴들이었다.

-나 우리 연조님이 일 너무 잘해서 순간 스물 아홉인 것도 까먹고 있었어. 맞아 우리 연조님 아직 서른도 안 됐지 참.

모임에 참석하는 게 하영님인 것처럼 팀장님이 더 들떴다.

“원래 진짜 안 가려고 했어. 근데 우리 팀장님이 너무 가라고 하니까. 진짜 하영님 봐서 가는 거야. 이게 진짜 그렇게 의미부여 할 만큼 대단한 모임인 거냐? 난 정말 모르겠다. 우리가 간다고 문도형이 이 회사에서 내 정년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연조. 들어봐. 우리 같은 사람은 그냥 가서 문도형 기 살려주기 위해 머릿수만 채워주면 되는 거야. 문도형이 불렀는데 즉답해서 하루만에 총알처럼 달려나오는 인원이 이렇게나 많구나! 아 창립자의 아들로 사는 건 이렇게 짜릿한 거구나! 문도형 승리감 도취를 위해 가서 대가리 수만 맞춰주면 된다구. 영수증에 공 하나 더 찍히게 먹어주면 되는 거라구. 도련님 자존감 지킴이로 가는 거지. 문도형은 기분 좋고 우리는 배불러서 좋고. 우리가 언제 먹어보겠나 싶은 메뉴로 혈관 한 번 깜짝 놀라게 해주고! 어제 그 글 봤지? 문도형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언제까지 무료로 애들 밥 먹여줄거냐는 말.”

저 멀리 통으로 대관한 레이니 펍으로 들어가는 앞선 무리가 보였다. 아직 우리 신호는 바뀌지 않아 대기중이었다. 빨간불 사이로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다녔다.

“문도형이 재빠르게 픽하는 애들이 생기겠지. 그리고 그들끼리의 무리가 생기겠지. 문도형은 매의 눈으로 빠르게 낚아채겠지. 누가 내 시다바리로 적합한가! 영양가 있는 놈 누군가! 뭐 지 아빠가 시켰을 수도 있고. 지가 우두머리 될 때까지 끝까지 같이 갈 놈 누군가! 제일 욕 안 먹고 무난한 모임이 동갑 내기 모임이니까 이걸로 스타트 끊은 거지. 순수의 탈을 썼잖아. 동갑 친구가 없어서 회사에서 친구 만들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거야. 이걸 욕하면 그걸 꼬투리 잡는 인간만 딱 속 좁아지게 되잖아?”

하여간에 어린 놈이 대가리 굴리는 거 빤해가지고. 그러면 공채도 아니고 S대 출신도 아닌 우리 같은 애들은 알아서 걸러지게 되어 있어요. 그럼 걸러지기 전까지 일단 배나 채우겠다 땡큐! 하면 되는 거야. 숙희가 일장연설을 길게 늘어놨다.

“그러니까 걸러질 불순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는 게 참.”

떫은 감 씹은 표정으로 답했다. 불행을 면하려면 빠르게 주제 파악을 하는 게 유리했다.

“하영님 얼굴 봐서 가는 거야. 걸러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그래도 하영님이 바라는 모양새인 거 같아서.”

하영님은 공채도 아니고 유학파도 아니고 대단한 특기 없는 내가 여기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할까. 한별은 공채들만의 리그였다. 직책을 달기 위해서는 출신이 중요하게 작동했다. 심지어 공채면서도 어느 학교 출신인지로 갈리는 곳이었다. 공채가 아닌 이들은 애초에 끼어들 미세 균열의 틈도 없이 빡빡했다. 회사에서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거짓된 희망고문이었다.

“문도형이 첨 만든 사조직이 ‘미국유학생모임’ 이런 거였어봐라. 얼마나 첫 사조직부터 재수가 없고 밥맛이냐. 문도형이는 하여간 여론 관리를 할 줄 아는 놈이다. 쥐뿔도 모르고 친구가 없네 뭐네 순수한 척 하잖어.”

숙희 말이 끝나기도 전 신호등이 바뀌었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지 아버지가 남긴 유행어 모르나. 회사가 친구 사귀러 오는 뎁니까, 일하러 오는 데지? 이거 아직도 두고두고 꼰대들 회식 단골 메뉴로 회자되는 것도 모르나봐.”

내 말에 숙희가 파하하 웃었다.

“지는 아빠랑 다르다고 어필하는 걸지도 모르지.”

부르르 치떠는 나에게 숙희가 핸드폰 화면을 불쑥 들이밀었다. 레이니 펍 메뉴 사진이었다.

“아무튼 문도형이 최대한 성골 중의 성골을 찾아내는 동안 3두품들은 배나 실컷 채우자고. 오늘 난 문어숙회만 조진다.”

숙희가 크게 확대해 보여준 메뉴가 그거였다.

문 열고 들어간 호프는 멀끔했다. 테이블 바닥 벽 천장 의자 모두 반질반질 광택이 났다. 테크노벨리에 어울리는 금빛 호프집이었다. 중앙에 앉아있던 몇몇이 힐끔대며 인사했다. 아는 얼굴이 없었다.

“우리는 저쪽 가자.”

주춤대는 사이 숙희가 내 팔꿈치를 당겼다. 누구도 우리에게 중앙 테이블로 와 앉으란 말을 하기 전이었다. 미리 테이블 구조를 보고 온 숙희 덕분에 착석 판단이 빨랐다. 처음 모였다고 해서 모두가 초면은 아니었다. 이 안에는 이미 입사 동기들이 우글우글했고 그들은 서로 반말로 인사 중이었다. 중앙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옷도 잘 입었다. 한별은 회사 직원들이 모두 세련되기로 소문났다. 당연히 근교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보유했으니 표본이 많을 뿐이었다. 지옥철 시달림 없는 사람들 옷은 구김살 없이 빳빳했다.

정규분포 끄트머리에 분포하는 이들은 당연히 중간값과 멀어져야 하는 법. 숙희는 주방과 화장실로 꺾이는 코너 쪽에 자리한 자그마한 테이블에 앉았다.

시끄러운 비트가 쿵쿵 울리는 스피커 바로 아래 자리였다. 천운처럼 길게 늘어진 캐노피가 자리를 완벽히 가려줬다.

점원이 하이볼 두 잔을 가져왔다. 이미 테이블 별로 주문이 다 들어간 상태라고 안내했다. 유난히 피곤한 기색의 점원은 ‘특제망고자몽유자복분자하이볼’을 띄어쓰기 없이 발음했다.

“저희 배가 고파서 그런데, 저희 테이블부터 음식 좀 세팅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저희 테이블에 문어숙회 주문도 들어갔어요? 혹시 안 들어갔으면 추가 해주세요.”

알겠다며 점원이 테이블 위 메뉴판을 접었다. 혹시 모르니 두고 가라고 숙희가 잽싸게 말렸다.

“일단 짠!”

숙희가 잔을 갖다댔다. 강냉이를 집어먹는 내 손등을 그녀는 아프게 찰싹 때렸다.

“이런 영양가 없는 걸로 배 채우지 마.”

“그지야? 됐어. 나 배고파.”

“좀만 참고 문어로 배 채워. 강냉이는 무슨.”

쿵쿵대는 스피커 비트가 정수리를 직격타했다.

“이쪽은 꺾여서 하나도 안 보인다. 잘하면 오늘 진짜 밥만 먹고 갈 수 있겠어.”

숙희가 승리감에 취해 말했다. 이건 하영님이 시킨 숙제가 아니었다. 하영님은 여기서 한 명이라도 더 친구를 사귀고 오길 바랄 거다. 숙제를 하겠답시고 정답은 두고 오답만 적는 기분. 심지어는 오답이란 걸 알면서도 쓰고 있어 더 거북했다.

“나 화장실 좀 갔다올게.”

혼자 홀짝홀짝 하이볼을 잘도 마시는 숙희를 두고 일어섰다. 화장실에 가려고 하니 좀 전의 그 점원이 말렸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돼서 화장실은 수압 문제 때문에 이용이 안 되니 건물 공용 화장실을 쓰란 거였다. 건물 하나를 빙 둘러 먼 화장실까지 걸어가며 엄마에게 메시지를 적었다 지웠다. [나 오늘 늦어] 이건 너무 싸가지가 없는 거 같고. [나 오늘 회식이야.] 적당한 거짓말로 둘러댔다. 갑자기 창업자 아들이 만든 모임에 동갑이란 이유로 불려왔다고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길었다. 화해하지 못해 고작 메신저 창인데도 어색함이 줄줄 흘렀다.

“내가 비우고 오랬다고 진짜 이렇게 오래 걸리냐!”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벌겋게 얼굴에 열 오른 숙희가 레이니 펍 문앞에 서있었다.

“뭐야 뭐 화장실 갔다온 걸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려?”

“너 도망간 줄 알고 잡으러 가려던 길이었다!”

“건물 화장실에 칸이 3개밖에 없는데 2개는 막히고 하나는 사람이 엄청 오래 있다가 나와서 기다리느라. 추운데 뭐하러 나오기까지 했대. 아님 카톡을 하지.”

수갑 채우듯 숙희가 팔목을 콱 움켜잡았다. 끌려가는 모양새로 질질 걸어가던 그때였다.

“어?!”

누군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습관처럼 땅을 보며 걷다가 멈춰선 운동화에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그저께 사내방송 나오신 분 맞죠! 와 저 완전 팬 됐는데!”

주황색의 한별 사원증이 목에 걸린 금발 사내가 아는 척을 해왔다.

“와, 지원님이다.”

술 취한 숙희가 감탄사처럼 뱉었다.

송지원.

바로 앞에 선 금발 사내 사원증에 적힌 이름. 내 것과 비슷하게 아직 사원증 줄이 오염되지 않고 깔끔한 편이었다.

한별 사원 중 ‘송지원’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어제 입사하고 내일 입사하더라도 송지원은 들어봤을 거다. 송지원은 그야말로 한별의 연예인이었다. 그런 슈퍼스타가 나를 알아본 것이다.

“어제 방송 나온 연조님 맞으시죠!?”

“예 얘가 어제 방송 나온 그 유명한 홍연조 맞아요.”

송지원도 한별 뉴스타 방송을 봤을 거라 생각하니 민망했다.

“근데 지원님도 여기 초대 받고 오신 거예요? 단체방에서는 왜 이름 본 기억이 없지.”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구시렁대는 숙희가 핸드폰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적였다. 테이블에 놓고 왔는지 손에 아무것도 집지 못해 허둥대며 갸웃댔다.

“지금 여기 무슨 모임 하세요?”

“알고 오신 거 아니에요?”

“저는 그냥 이거 사서 다시 회사 가던 길이었어요.”

그제야 송지원 손에 들린 커피가 보였다. 유명 축구선수 얼굴이 컵홀더에 박혀있는 양 많기로 소문난 카페 컵이었다.

“어 지원님 안녕하세요!”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우리 셋이 한꺼번에 돌아봤다.

“아 맞다 지원님도 저희랑 동갑 아닌가? 지원님 나이가 어떻게 되셨죠?”

싹싹한 기색으로 유민정이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지금 오는 길이었는지 어깨에 가방을 멘 채였다.

“빠른 97. 학교는 96년생들이랑 다니셨고.”

송지원보다 빠르게 답한 건 숙희였다. 그 대답에 송지원이 어떻게 알았냐며 허리까지 굽혀 웃었다.

“제가 이래뵈도 지원님 뽑은 사람입니다.”

술 취하면 지숙희는 너스레가 늘었다. 아 그거 보셨구나, 저 뽑으셨던 거예요? 송지원과 지숙희가 둘만의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지원님도 같이 들어가요. 우리 어차피 다 동갑인 건데. 도형님이 회사에 스물아홉살들끼리 모이는 모임 하나 만들었거든요.”

주최자도 아닌 유민정이 덥썩 송지원을 합류시켰다. 송지원은 회사를 뒤집어 놓은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그런 모임은 왜 만들어요? 송지원이 유민정에게 질문했으면 즉답이 날아왔을 테지만 숙희를 바라보며 묻는 바람에 숙희는 그저 어깨나 으쓱 해보이고 말았다. 송지원은 거절 않고 순순히 함께 따라 들어왔다.

우리 넷이 들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문도형은 주인공답게 15분이 지났지만 안 보였다.

“와, 민정님이다.”

중앙 테이블 여기저기서 반가운 인사가 단 한명에게로 쏟아졌다.

“여기 자리 많은데, 이쪽 같이 앉아요.”

유민정이 중앙 테이블로 걸어가 의자들을 순차적으로 끄집어냈다.

“아 저희는 다른 쪽에 앉아서.”

내가 먼저 답하며 먼저 몸을 돌렸다.

“아 그러셨구나. 지원님은 여기 와서 앉으실래요?”

“아뇨, 저도 이쪽 가서 앉을게요.”

뜻밖에도 송지원은 우리를 따라왔다.

“연조님도 보셨어요? 제 방송.”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는 송지원이 물었다.

“그럼요.”

“그럼 연조님도 저 뽑으셨어요?”

송지원이 본인을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사실 회사에 가장 요란하게 입사한 걸로 따지자면 문도형 이전 태초에 송지원이 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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