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송지원을 슈퍼스타로 만든 프로그램은 2년 전 방영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이돌을 육성한다면 그 방송은 스펙과 조건으로 취업하는 고리타분한 취업 시장을 꼬집겠다며 탄생한 <취업 서바이벌 오디션>이었다.
정량화된 특정 스펙을 가져야만 취업이 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스펙 대신 ‘일하겠다는 열정’ 하나로 무장한 사람들이 취업하는 일대기를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다큐나 예능이라기엔 살아남는 것에 목적을 둔 진정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실험적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레디 고 커리어’ 첫 시작 기업은 한별이었다.
당시 한별은 젊은 유저들에게 외면당하기 시작한 위기를 직감했다. 더 큰 수익 파이를 위해서는 해외사업이 절실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해외 역량 가진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것으로 이어졌다. 어느덧 취업시장에서 한별은 해외 경험을 가진 자들만 취업 가능하다는 이미지가 견고해졌다. 해외 경험이 없으면 한별에 발가락 하나 넣을 수 없다는 세간의 이미지를 왜 타파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으나 한별 창립자까지 인터뷰를 하며 레디 고 커리어 참여 소감을 밝혔다.
<한별은 언제나 모든 인재들에게 마음이 열려있다. 한별에 들어와 함께 일하고자 하는 새롭고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열정 가진 청년들을 찾고 있다.>고 외쳤다. 한별이 해외에 눈 돌리며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이 국내에서의 레거시 포털 자리로서 입지도 좁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다. 문석준 대표는 언제나 '인재 등용'에 회사 미래가 있다고 외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레디 고 커리어 편성이 알려지던 2년 전 스물일곱 봄이라면 나는 몸담고 있던 북리버리 사업이 본격적으로 기울던 시기였다. 우린 폐업이 가까웠음을 매일 피부로 뼈저리게 실감했다.
선배들은 가장 어린 나에게 다른 앞날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물류비 임대료 순으로 차곡차곡 밀리기 시작했다. 가장 마지막으론 우리 몫의 임금이 부족해졌다.
청춘을 다이빙한 서비스가 문 닫는다는 실패감이란.
스물일곱의 벚꽃이 아직 피기 전, 방송사는 대대적으로 ‘레디 고 커리어’ 지원자를 모집했다. 대기업 한별에 취업하고자 하나 가진 건 몸과 열정 패기 뿐인 청춘을 찾는다는 공고는 심금을 울렸다. 특히나 공고 마지막 줄.
‘열심히 살아온 당신의 지난 날이 실패로 얼룩졌다고 생각하고 좌절하지 마세요.
지금 레디 고 커리어는 회사에서 빛날 준비 마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내게 지원해달라고 고백하는 카피였다.
이후 낮 시간에 선배들과 물류 창고를 정리하고 밤이면 잡으로 돌아와 방송 지원서를 썼다. 가진 건 몸과 열정 뿐이지만 다시 한 번 운동화 끈을 질끈 묶어 달려보고 싶다는 포부를 담았다. 적다가 눈물도 찔끔 흘렸다. 인생에 실패라는 먼지가 묻었지만 속에서는 여전히 뜨겁게 울컥대는 열정의 마그마가 솟고 있었다. 다소 신파가 섞이긴 했지만 '망하지 않을 곳에서 성실하게 이 한 몸의 열정을 불사지르고 싶다'는 진심 만큼은 방금 캐온 다이아몬드 못잖게 순도 높았다.
너무 '실패'에 초점 맞춘 자소서라 그랬을까. 레디 고 커리어 지원 결과는 서류 탈락.
청년 창업 실패보다도 더 기구한 실패 사연을 가져야만 방송국 인간들이 거들떠본단 사실에 좌절했다. 방송국에서 찾는 실패에도 급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왕 실패할 거 모두가 인정해주는 대찬 실패가 아닌 미지근하고 소박한 실패가 슬펐다.
스물일곱 벚꽃이 질 무렵. 결국 북리버리 서비스는 영원히 우주의 먼지 한 톨이 되어 멀어졌다.
책을 집으로 배송해 일정 기간 대여해주겠다는 우리의 포부는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났다. 스물일곱의 여름은 이모네 주꾸미 집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취준생의 몸으로 돌아갔다.
레디 고 커리어 첫방송은 어디 얼마나 대단히 실패한 놈들이 열정 바쳐 한별에 도전하는지 오기로 시청했다. 첫방송을 본 이후 방송국이 찾던 서사가 어떤 건지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산골 오지에서 오직 독학으로 공부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섬소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직접 1인 사업의 길로 뛰어들었던 괴짜 발명가, 범상한 사람들의 집단 속에서도 가장 우뚝 튀는 사람은 단연.
-안녕하세요 저는 송지원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스물 여섯살이구요. J대학교 연기예술학과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각자의 짧은 소개 뒤로 그들의 인생을 짧은 파노라마 필름처럼 송출했다.
송지원의 자기소개 이후 이어진 자료화면에 입이 벌어졌다. 그건 앳된 얼굴의 송지원이 집에서 캠코더를 켜놓고 녹화해뒀던 본인의 댄스 보컬 영상이었다. 노란 브릿지 넣은 초등학생 송지원부터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송지원의 모습이 이어졌다.
-중학교 입학하기 직전에 아이돌 기획사에 들어갔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그 기획사에서 명함을 받았었는데, 좀 더 크면 노력해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하셨거든요. 초등학생 때부터 2년쯤 혼자 집에서 연습하면서 키도 좀 자란 뒤에 혼자 오디션을 보러 갔었어요. 혼자 오디션 준비하면서 방에 문 닫고 연습하는 게 재밌더라구요. 그때 제가 평생 걸어갈 꿈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단박에 나의 서류 탈락이 이해가 갔다. 방송국이 찾고 있던 건 전파를 탈 수 있는 이런 ‘스타성’ 있는 인재였다. 실패에도 유명세가 붙을 수 있었고 그 좌절에 가슴 아파하는 이들이 많다면. 유명한 실패를 가진 출연자는 방송국에 시청률을 물어다줄 수 있었다.
-열네 살에 그 기획사에 오디션을 다시 보러 가서 합격했고 스무 살까지 연습생 생활을 계속 했어요.
자칫 취준생 말고는 아무도 안 볼 뻔했던 방송 시청률을 견인했던 게 송지원이라는 인물 덕분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시절부터 국내 가장 큰 대형 기획사에서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했다던 송지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출연 계기를 털어놨다.
첫방송 직후 송지원이 함께 데뷔조에 들었던 팀이 지금 국내외에서 가장 유명세를 떨치는 보이그룹 P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돌 오디션이 아닌 취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자막과 함께 이어지는 송지원은 새카맣게 덮은 머리에도 당장 채널을 옮겨 음악 프로그램에서 춤춘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멀끔했다. 그 잘생긴 외모가 당장 1화 방영 후 화제가 됐다.
-스무 살 겨울에 큰 사고를 겪었어요. 다리를 많이 다쳤는데 다행히 일상 생활에는 전혀 무리가 없지만.
송지원이 웃었지만 읊는 내용은 끔찍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앞으로 영원히 춤은 출 수 없다고. 아마 그 날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송지원 뒤로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깔렸다. 그 인터뷰는 수요일 열한시 애매한 시간에 편성해 전혀 기대치 없음을 시사한 방송국에 깜짝 시청률을 갖다주었다. 송지원은 연습생 때부터 유명해 팬클럽까지 있을 정도로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연습생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연예인을 할 거라 생각했던 송지원이 일반인들처럼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뭇 또래들의 가슴을 세게 울렸다.
‘저 얼굴이면 그냥 배우를 하지 인생 어려운 길을 가는구나.’
‘지금 송지원이랑 같이 연습생 보낸 애들은 전세계 투어 다니면서 돈을 끌어모으는데 송지원은 한별 인턴으로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거 왜 이렇게 짠하냐.’
‘원래 P그룹 센터가 송지원으로 구성됐었는데 사람 인생 진짜 모르는 일이다. 지금 그 그룹 센터는 한남동 고급빌라 현금빵으로 샀잖아.’
J대학교 동문들은 대학 시절 송지원이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듣고 밤낮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밝았다는 간증글을 끊임없이 올려 인기에 힘을 보탰다.
송지원이 사고를 당한 건 고작 데뷔를 석 달 앞둔 시점이었다는 이야기와 P그룹 멤버들 역시 방송을 챙겨본다며 SNS에 응원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마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데뷔를 목표로 연습생들을 응원하는 것처럼, 시청자들은 취준생들의 한별 취업을 응원하기 위해 일종의 팬덤이 생겼다. 그것은 이미 연습생 시절부터 팬덤을 가지고 있던 송지원 출연자에게 가장 유리했다.
한별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좌충우돌 실수하고 좌절하는 모습. 어려운 미션에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은 나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지켜봤다.
하루종일 서빙하느라 머리에 주꾸미 볶음 냄새를 묻히고 매주 방송을 챙겨보며 한별에 대한 호감도가 머리 끝까지 상승했다. 휴게라운지에서 매일 대화 나누는 멋있는 구성원들. 회의에서 프로페셔널한 팀장들의 언어들. 출연진 인턴들이 헤매고 화장실에서 눈물 흘리면 위로하러 와주는 선배들. 삼시세끼 맛있는 밥 나오는 구내식당까지. 그 방송으로 한별은 모두가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자리매김 또한 성공했다. 방송 중 잘하고자 하는 마음에 실수 연발하는 출연진 인턴들에게 따끔한 경고는 커녕, 치킨을 사주면서 실무에 경험 있고 이렇게 배우고자 마음 충만한 인턴들이라면 함께 일하는 게 영광이라는 말을 전한 선배의 말은 여기저기로 퍼져 유명해졌다. 한별 아닌 다른 곳에서 실무 능력을 키우고 있는 중고 신입들의 심금을 징하게 울렸다. 해외대가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거라 모두 어렵게 여겼던 한별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취준카페에서도 언급 적었던 한별의 이야기는 레디 고 커리어 이야기로 연일 게시글이 올라왔다. 한별에 들어가려면 뭘 하면 좋겠느냐는 이야기에 이제는 입사 바이블처럼 모두가 레디 고 커리어를 한 번 보라고 했다. 사내 분위기부터 어떤 인재를 실무진들이 바라는지 인재상 힌트를 얻기에 이보다 좋은 답안지가 없었다.
방송이 한참 무르익어가던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한여름의 어느 날.
한별 경력직 수시 채용 공고가 열렸다.
-한별의 미래 신사업을 이끌어갈 경력있는 인재를 기다립니다.
‘자격 조건 : 새로운 사업으로 수많은 유관부서와 커뮤니케이션에 능통한 소통능력 보유자, 이전에 없던 BM을 창시한 새로운 사업기획 경험 보유자,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환경에서도 효율적인 신사업 관리 모듈을 설립해본 경험 보유자, 필요 시 담당 파트너사 혹은 내부 부서에 사업모델 피칭이 가능한 자. 그 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포맷의 신사업 창업 및 실무 2년 이상 경험 있는 자.
그때도 한별의 공고가 달라졌다. 아무리 경력직 공고라고 하더라도 특정 언어 우수자, 최소 2개국 이상의 언어 능통자에 대해서는 늘 빠지지 않던 이야기가 달라졌다. 창업 경험 보유자를 찾는다는 공고 내용은 한별 역사상 처음이었다.
비록 망했을지언정 북리버리 사업을 하면서 직접 선배들과 모두 도전해봤던 일들이었다.
송지원이 포함된 다섯 명의 인턴들이 고군분투하는 한별 방송을 틀어둔 채 나의 자소서를 만들었다. 쉼표와 띄어쓰기 행간까지 외워버릴 정도로 수백 번 고친 자소서가 그 무렵 완성되었다.
나는 이렇게 잘났고 성공해본 인간입니다, 외치는 대신 담담히 나라는 인간의 실패와 원인을 분석했다. 그것에서 얻은 레슨런으로 한별에서는 어떻게 반드시 성공하는 신사업을 전개할 것인지 청사진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유난히 뜨거웠던 그 해 여름. 수박이 가장 달게 익은 그 시기 송지원이 방송에서 유달리 튀었던 이유는 남다른 멘탈 회복력이었다.
송지원은 중간 평가에서 <5명의 인턴 중 가장 기본기가 없는 친구>라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방송이라 자극적으로 짜깁기 되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충분히 멘탈이 갈려 나갈 만한 말이었다.
중간 평가 후 회사 옥상 앞 자판기로 올라간 송지원은 포카리 스웨트 두 개를 뽑았다. 악평을 받은 다른 인턴들이 화장실에 들어가 펑펑 휴지 뽑아 우는 것과 달리 송지원은 덤덤했다.
속상하지 않느냐는 피디의 질문에 송지원은 웃으며 포카리 스웨트 하나를 건넸다.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하루에 수업을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오전에만 수업을 듣고 회사에 갔어요. 중학교는 그걸 양해해주는 곳에서 나왔고 고등학교는 중간에 예고로 전학을 갔거든요. 제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게 맞아요. 지금 저랑 취업시장에서 싸우는 친구들이 하나라도 더 공부하려고 악착같이 새벽에 공부했을 때 저는 그 시간에 춤추고 노래하면서 보냈잖아요. 기본기가 부족하면 공부를 해야하는데 열정으로 때우려고 한 제가 잘못한 거죠.
다른 인턴들은 억울하다거나, 본인이 가진 장점을 더 보여주지 못해 답답하다고 인터뷰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가진 건 근성 밖에 없으면서 나의 열정을 높게 쳐주지 않는다고 악쓰지 않았다. 부족한 게 맞다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포카리 스웨트나 삼켰다. 물론 송지원은 방송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악플도 가장 많이 받는 출연자였다.
‘송지원 출연 이유? 당연히 적당히 얼굴 알리고 어떻게든 다시 연예계판으로 기어 들어가려고 하는 건데. 다른 인턴 네명이 들러리처럼 되는 게 어이 없네. 누가 봐도 송지원은 한별에 입사할 생각이 없음. 그러니까 팀장들이 지적해도 타격감 없는 거임. 쟨 방송에서 얼굴 알려서 연기자든 모델이든 다시 연예계쪽 러브콜 받아서 데뷔하려는 목적 갖고 출연한 거라 취준생 기만하는 거임. 송지원 대신 한별에 더 간절한 사람 하나가 들어가서 출연했어야 하는데 방송국 것들은 역시 시청률에 눈 멀어서 대형기획사 유명 연습생 출신 하나 껴넣은거지. 송지원의 취업을 응원하는 방구석 취준생들아 정신 차려라.’
송지원이 가장 지적 받았던 피티 실력은 다섯 지원자 중에서 눈에 띌 정도로 좋아졌다. 물론 송지원이 가장 바닥이었기 때문에 성장할 일밖에 안 남아 그런 것도 컸다. 송지원은 그 다음 평가에서 일취월장이라는 공통된 피드백을 받았다. 빠른 주제파악과 자기반성. 송지원도 그 방면에서는 부족한 외국어 능력과 학업 능력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월등했다.
송지원 유행어도 생겨났었다.
-이거 제가 해봐도 될까요?
팀이 제일 어려운 미션을 받거나 팀원들 간 그레이 영역에 속한 잡무들이 생길 때면 번쩍번쩍 손 드는 버릇.
레디 고 커리어 최종 마지막화에서는 95%의 한별 실무진과 직책자들 평가 그리고 5%의 시청자 투표 점수로 우승자 한 명이 가려졌다. 마지막 방송은 특별히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1% 미만의 시청률을 기대했던 방송은 평균 시청률 9%를 기록하며 소소한 화제를 일으켰다.
나 역시 유료문자메시지 100원의 용돈을 투자해 최종회에는 한별 입사를 응원하는 출연진 이름을 적어 전송했다.
<레디 고 커리어 한별편 최종 우승, 송지원>
최초 방송 공고에 적혀있던 우승 포상은 한별 입사였다.
그 해 연말 송지원은 이전까지 한별에는 존재한 적도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게 분명한 ‘특채입사자’ 전형으로 한별에 입사한다.
그리고 같은 해 연말 나 역시 한별 경력 입사자 수시 채용에 합격했다.
한별의 대다수가 들어가는 정문이 아닌 아주 작고 작은 쪽문을 통해. 우리는 한별에 들어왔다.
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세간의 편견과 달리
우리는 1년 4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한별에 발 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