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소리보다 빠른 빛

by 모정연

“어제 방송 보고 저도 연조님 실제로 한번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뵙게 돼서 너무 신기해요.”

“와 슈퍼스타님이 우리 연조를 알아주시고. 제가 다 감사하고 그렇네요.”

먼저 마신 하이볼에 취했는지 숙희 볼이 붉었다. 우리 자리는 스피커 바로 아래라 웅웅 울리는 비트 소리가 지독했다. 서로의 대화가 그 소음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다소 허리를 숙이고 대화해야 했다.

“그러게요. 저도 레디 고 커리어 방송 지원했었는데.”

쪽팔린 과거지만 송지원 앞에서 꺼내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서류 탈락했어요. 내 말에 송지원은 피디님들은 인사팀이 아니라 사람 보는 눈이 없다며 듣기 좋은 소리를 해줬다.


통성명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까지 소개가 끝났다.

송지원이 광고팀에 있다는 건 공공연한 소식이지만 그는 겸손한 슈퍼스타처럼 본인이 광고팀 소속이라고 소개했다. 생신입으로 광고 분야에 입사하니 모르는 게 아직도 많아 집 가는 길마다 카페에서 대용량 커피를 사가는 편이랬다.

“근데 술 안 드세요?”

하이볼을 주문하겠냐는 점원 말에 거절한 것을 두고 숙희가 물었다.

“집이 멀어서 운전하고 가야 해서요.”

“와 차도 있으시구나. 집 어딘데요?”

어디 사냐는 질문은 회사 와서 처음 해봤다. 멀다는 말이 맘 속의 빗장 하나를 풀었다.

“저 강북쪽 살거든요.”

그 말에 섬광처럼 나와 지숙희 눈이 번뜩 빛났다. 세상에 강북 어디요? 둘이서 짠 듯이 합창했다.

“강북구 살아요.”

“에? 강북? 우리 홍연조도 강북구 사는데? 강북구 어디?”

비상계단에서 꿀떡을 품에 안고 밟아도 밟아도 지뢰만 터지는 지뢰찾기 게임처럼 교집합 폭탄 터지던 그때가 데자부처럼 겹쳤다.

“저 삼양동이요. 연조님 어디 사는데요?”

그 말에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숙희가 나 대신 얘도 삼양동에 산다고 신이 났다.

“와 저 삼양동 사는 사람 회사 와서 처음 봐요!”

인생 살며 가장 소속감 느낀다는 학연지연혈연 중 판교에서 가장 만나기 힘든 걸 꼽으면 지연이었다.

“저는 진짜 29년을 그 동네에서만 나고 자라서 쭉 살았어요.”

“어 저돈데! 우리 완전 동네 친구였네요!”

하나만 말해도 열 가지를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강남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유학 다녀왔다는 사람에게서 유추할 수 있는 가정환경과 부모의 재정환경. 그건 피차 우리라고 다르지 않았다.

“어느 중학교 나오셨어요?”

“저는 중고등학교는 그 동네에서 안 나왔어요. 그때는 제가….”

순간 눈치 없이 송지원이 어린 시절 연습생이었단 것도 까먹고 학교부터 물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얼른 사과하자 송지원은 게의치 않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중학교는 청담에서 나오고 고등학교는 예고로 전학 갔었어요. 우리 어쩌면 같은 학교 다닐 수도 있을 뻔했다 그쵸. 초등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는 초등학교를 나온 것으로 학연은 실패했다.

“와 도형님!”

동네토박이들이 뜻밖의 지연에 신났을 때 중앙 테이블이 시끌벅적하게 뒤집어졌다. 문도형이 이제야 출몰한 것이다.

“어쩐지 묘하게 정이 가더라니 우리 다 동네 친구였잖아!”

엉덩이 들썩이며 문도형에게 가서 인사라도 해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숙희가 우리 모두를 동료 아닌 친구로 묶었다. 허공에 잔을 든 숙희가 무안하지 않게 송지원이 잽싸게 잔을 들었다. 곧 찰랑이며 셋의 물과 알콜들이 만부딪혔다.

"가서 인사하고 올까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좌불안석된 심정을 읽었는지 송지원이 같이 엉덩이를 들썩여줬다. 그러자 지숙희가 테이블을 한번 탁 내리쳤다.

"가서 인사할 거 뭐 있어. 자기들끼리 인사하느라 바쁠 텐데. 우린 그냥 먹기 바쁘면 돼."

숙희 만류에 납득해버리고 싶었다. 멈출 줄 모르는 문도형 환영 소음이 파도처럼 넘어왔다. 왠지 이 소란의 높은 파고 속에 숨어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합리화가 들었다. 때맞춰 점원이 빈 강냉이 접시를 리필해줬고 문어숙회는 언제 나오냔 숙희 닥달에 곧 나온다고 기대감을 심어줬다. 저쪽은 인사 나누느라 바빠 보였고 우리도 나름대로 바빴다.

"저랑 숙희도 사실 빠른년생이에요."

한번 비슷한 처지라는 인식이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공통점 탐구를 시작하고 싶었다.

송지원은 빠른97이고 우리 둘은 빠른96이었다. 송지원은 학교를 일곱살에 입학했고 난 여덟살에 가는 바람에 우리는 같은 해에 입학해 고3까지 같은 학년이었다. 반면 숙희는 학교를 일곱살에 들어가 우리보다 일년 빠르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숙희 혼자 재수하고 우리 둘은 현역으로 입학해 다시 대학은 15학번으로 같아졌다.

“쥐띠들 우글대는 모임에 낀 가축이란 점까지 어째 똑같네 우린!”

우린 결속될 때마다 건배를 이었다. 할머니와 오래 산 숙희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가끔씩 했다.

“띠는 입춘 기준이라 같은 년도에 태어나도 다르잖아요. 특히 우리 같은 빠른년생들은요.”

“저 97이니까 소띠 아니에요? 빠른년생이면 제가 96년생 띠일 수도 있어요?”

내가 쥐띠가 아니야? 역으로 묻자 숙희가 혀를 찼다.

“홍연조 넌 네가 돼지띠인 것도 몰랐냐! 으이구. 송지원님 생년월일 포털에 입력해보세요. 검색만 하면 띠 알려주는 세상인데. 홍연조 네 생일을 포털에 쳐봐라 돼지띠라고 알려주잖냐. 아 지원님 생일은 입춘 지나고 나서라 소띠가 맞으시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동갑으로 퉁쳤지만 엄연히 우리 사이에는 쥐띠가 있다 이말 입니다. 띠로 따지면 우리가 송지원님보다 아주 하아안참 누나다 이런 말씀.”

인생의 큰 거사 앞두고 가끔 '쥐띠 운세'를 검색했었다. 분명 잘 들이맞았는데 갑자기 돼지된 출생의 비밀이 꽤 충격이었다.

“근데 두분은 어떻게 이렇게 친해지셨어요?”

“동갑이고 저희 둘 다 공채 아닌 것도 똑같고, 또 사는 곳도 비슷하고 그래서 엄청 친해졌어요. 친해진 계기도 좀 웃기고.”

송지원은 더 말해달란 얼굴로 특유의 미소를 내걸었다. 이제 뉴스타 방송을 본 사람들이라면 내가 공채가 아니란 걸 알 거다. 입사하기도 전에 떠들썩한 특채입사자란 사실이 만천하에 까발려졌던 송지원의 입장은 어땠을까. 실은 우리 셋 다 공채가 아니란 사실이 아까부터 결속의 방점을 찍어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그때 문어숙회를 기다리던 숙희가 허기짐에 진동벨을 다시 한 번 눌렀다. 하필 시끄러웠던 곡이 다음 곡으로 넘어가면서 잠시 장내가 고요해졌다.

“이분들 주문만 받고 문어숙회 가져다 드릴 거니까 잠시만요.”

홀로 수십명의 응대를 받아내는 점원이 지친 목소리로 우릴 향해 건조하게 외쳤다.

“뭐야? 저기도 누가 또 있는 거야?”

잔잔해진 파도 속 문도형의 목소리. 숨은 적도 없는데 들켰다. 순간 우리 셋이 눈을 마주쳤다. 남의 잔치에 숨어 식량을 갉아먹는 쥐새끼는 우리였다.

“아 맞다 저쪽에도 우리 회사 분들 계셔.”

이어지는 유민정 목소리. 그리고는 드르륵 의자 밀리는 소리. 타박타박 대리석에 찍히는 신발 소리.

“오라는 문어숙회는 안 오고 병자년생이 오네.”

강냉이를 씹으며 중얼대는 지숙희 발음에 송지원과 나는 윗입술을 깨물고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제발 취했어도 욕 좀 하지마. 복화술로 경고하자 지숙희가 데시벨을 낮추지 않고 이었다.

“병자년생에 태어난 애한테 병자년생이 온다고 하는 게 뭐가 욕이야.”

와그작 와그작 강냉이 씹으며 지숙희는 말소리를 안 죽였다. 여전히 스피커에서는 기가 막히게도 노래가 멈춰있었다. 비트가 사라진 자리를 문도형 발걸음이 점점 크게 채웠다.

“와 여기 계셨구나. 여기 계신지도 모르고 인사도 못 드렸어요. 안녕하세요.”

서글서글한 입매가 경쾌한 말투로 인사했다. 하영님이 내준 숙제가 제 발로 걸어왔다. 엉덩이를 들썩이는 시늉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저기도 자리 많은데, 왜 여기 앉으셨어요. 와 지원님도 와주셨네요.”

문도형은 이 육십명 넘는 숫자에 송지원이 포함되지 않은 것도 간파하고 있었다. 번지르르한 환영사 없이 숨어서 강냉이나 먹고 있던 인간들에게도 벙벙하게 부푼 솜사탕 같은 말씨였다.

“문어숙회 나왔습니다.”

점원은 숙희 소원을 테이블에 세팅했다. 두 개를 이어붙인 식탁이 모자랄 정도로 접시 위용은 남달랐다.

“와 맛있겠다. 저도 잠깐 여기 앉아도 될까요?”

이미 문도형은 내 옆자리 의자를 꺼내는 중이었다.

“저희 수저 한 사람 더 세팅해주세요.”

송지원이 점원에게 공손하게 부탁했다.

“여기 유명한 분들 다 계신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찾아뵙는 건데.”

물속을 유영하는 사람처럼 문도형의 모든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물살 거스르는 것에 어떤 저항도 받지 않는다는 듯 유속에 상관없이 물갈퀴 달린 인간처럼 분위기 타는 게 일품이었다. 성골이고 육두품이고 할 것 없이 챙겨

“연조님이랑 숙희님 안 오실까봐 계속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 발언에 소름이 끼쳐 내 명치를 내려다봤다. 이미 레이니 펍에 들어오기 전에 사원증은 고이 접어 가방에 넣어둔 채였다. 그러므로 내 목에 사원증도 없는데 문도형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문도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소매를 걷고 막 도착한 젓가락을 집었다. 하마터면 찌질한 말투로 ‘저를 아세요?’ 물어볼 뻔했다.

“지원님도 저희랑 동갑이셨구나. 와 몰랐어요. 우리 얼른 먹어요.”

오물오물 문어를 씹는 문도형을 보는 것만으로도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처럼 숨 쉬기가 불편해졌다.

“근데 여기 노랫소리가 너무 크다. 머리 아프시죠.”

무슨 우연인지 이어진 노래는 P그룹이 전세계를 강타한 히트곡이었다. 저 스피커 속 목소리로 함께 존재할 수 있었던 송지원은 문어숙회를 초장도 안 찍고 담담하게 먹을 뿐이었다. 문도형은 곧바로 호출벨을 눌렀고 볼륨을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본인 하이볼을 한잔 더 넉살 좋게 시키는 얼굴을 우리 모두 미술품처럼 관람했다.

“무슨 얘기 하고 계셨어요?”

1절 후크 멜로디 소리가 작아지고 그 자리를 문도형이 채웠다. 문도형의 시선분배는 예술이었다. 우리 셋을 어찌나 골고루 바라보며 대화하는지.

“이 모임 초대 알고리즘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어요.”

숙희가 뿔테안경을 올리며 범상하게 말했다.

“저희 스물아홉살들끼리 모이는 모임인데, 이거보다 더 단순한 알고리즘이 없지 않아요? 역시 숙희님 같은 개발자 눈에는 다른가?”

이 대단한 놈! 이 놈은 지숙희가 개발자란 것도 안다! 공채 아닌 인간들의 소속까지 외웠다! 아이비리그 나온 기억력은 쓸모와 비쓸모를 가리지 않고 남용됐다. 숙희도 애저녁에 사원증은 목에서 뺀 지 오래였다.

“도형님 이건 대단히 복잡한 알고리즘입니다. 스물아홉 방이라고 했죠. 그럼 여기 빠른년생은 어디 범주까지 포함하실 겁니까? 전 빠른96. 제 중고딩 친구들은 다 95에요. 다 서른이라고요. 뭐 저도 한살 빠르게 살 필요는 없지만요. 근데 도형님은 미국에서 왔으니 스물아홉 기준이 혹시 만나이인가요? 그런데 도형님은 한국나이 스물아홉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한국식 기준을 끌어들여서 12년동안 95년생이랑 친구먹고 96한테 선배짓하고 산 저보다 빠른97로 태어나 96년생들이랑 친구 먹고 산 송지원님이 저보다는 더 모임에 적합한 인재인 거 아닌가 뭐 그런. 복잡한 이야깁니다.”

특유의 말 어미에 쪼를 넣을 때마다 숙희가 허공에 젓가락을 탁탁 찍었다. 코미디 프로 시청자처럼 문도형은 싱글벙글이었다.

“이건 도형님이 미국에서만 오래 살았다고 하니 모르실 거 같아서 그냥 뭐 팁을 하나 드리자면.”

이제 스피커 볼륨도 작아져 서로의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잘 들리는데도. 지숙희는 아까처럼 계속 몸을 낮췄다. 군사기밀 모의하는 자세에 문도형은 기꺼이 취한 숙희 눈높이에 맞춰 본인 허리를 한껏 낮췄다.

“돼지랑 쥐만 있는 것보단 소를 아예 끌어들이는 게 더 좋아요.”

“음, 아, 그렇구나. 근데 뭐에 좋아요?”

“뭐 궁합적으로.”

인생 3분의 2를 미국에서 보내 미국인에 가까운 인간에게 샤머니즘 발언을 발사하는 숙희 입을 막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당연히 숙희님 말씀인데 새겨 들어야죠.”

문도형은 처음 만난 취객에게도 호의를 넙죽 베풀었다. 그리고는 내 쪽으로 몸을 천천히 기울였다.

“연조님.”

송지원과 눈을 맞춘 채 문도형 쪽으로 귀를 낮췄다.

“소랑 돼지랑 쥐가 뭐에요?”

그 말을 들은 송지원이 건너편에서 웃음이 터졌다.

“한국에는 1월 2월에 태어나면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요. 지원님도 97년생인데 학교를 빨리 가서 96년생이랑 학교를 같이 다녀서 저희랑 동갑으로 산다는 뜻이에요.”

그제야 아아 추임새를 붙인 문도형이 이해했단 듯 박수를 쳤다.

“지원님이 그럼 저희 회사에 있는 빠른 97분들도 저희 단체방에 다 초대해주세요! 제가 이걸 놓쳤네요.”

이로써 문도형은 빠른 97 챙기기 숙제를 송지원의 과제로 넘겼다. 숙희님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문도형이 숙희 잔에 본인 하이볼 잔을 들이밀었다. 숙희는 잔을 간신히 들어 맞부딪혔다.

“아 그리고 저 방송도 되게 잘 봤는데.”

문도형은 돌연 유능한 엠씨처럼 자꾸 진행을 했다. 지치지 않고 쏟아지는 화제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엄청 팬 됐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문도형의 말에 지숙희도 화답하듯 박수를 짝 쳤다.

“예, 여기 있는 저랑 홍연조님도 그 방송 겁나 팬이라 투표까지 지원님한테 했잖아요.”

숙희가 송지원 쪽으로 문어숙회 접시를 조금 더 당기며 말했다. 숙희는 P그룹 팬이었다.

그러자 느린 템포로 문도형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전 그저께 방송 말씀드린 건데.”

문도형이 고개를 돌렸다. 마주한 시선에서는 프로필 속 사진으로 봤던 것과는 다른 반짝이는 무언가가 들어찬 눈이 보였다. 너무 반짝거려서 꼭 물에서 방금 건져낸 것 같은 눈이었다.

잠시 정적이 있었던 건 이런 멘트에 세련되게 받아치는 법을 몰라서였다. 그저께 방송을 잘 봤다는 사람이 아직은 대등한 동료가 아니라 창립자 막내아들로만 인식되었기 때문에.

“저도요. 엄청 팬 됐어요. 방송에서 연조님 엄청 열정으로 막 반짝거리는 게 보이시더라구요.”

어색해진 침묵을 깨준 건 송지원이었다.

민망함에 문어숙회 한 점에 숨었다. 우물대는 입 속에서 매콤한 초장 맛이 퍼졌다.

“전 연조님이 방송에서 한별을 별이라고 비유한 게 되게 신기했어요. 되게 낭만적인 이야기잖아요.”

-대학 시절에 한별에 여러번 떨어지면서 저에게는 닿을 수 없는 별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렇게 멀리 있는 별에 닿으려면 로켓트를 타고 날아가야 하는데, 나는 로켓트를 탈 수 없는 것 같으니 그럼 포기하거나 아님 날아가는 사람들만큼 빠르게 뛰어보거나. 포기 아니면 객기밖에 없다면 전 객기를 택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대학 땐 경력 공채로 한별에 가야겠다고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지만 제가 더 성장한 뒤에 다시 재도전하고 싶다는 오기가 들었던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사업이 저물 때쯤 다시 도전한거죠. 결과는 사업이 실패했지만 과정에서는 제가 얻은 성공의 자잘한 경험들이 분명 있다고 믿었거든요.

나의 처절하고 절실했던 투쟁이 문도형에게는 낭만으로 닿았다. 로켓 속에 앉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풍경은 뭐가 됐건 아름답지 않을까.

“근데 세 분은 원래 친하셨어요?”

우리의 괴리를 곱씹는 사이 문도형은 주제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아뇨 저희도 지원님은 오늘 처음 뵀어요. 저랑 숙희님은 회사에서 오며가며 친해졌고.”

“제가 방송 볼 때부터 우리 송지원님 팬이라 지나가는 거 발견하자마자 여기까지 끌고 들어왔네요.” 숙희가 다시 접시를 문도형 쪽에서 송지원으로 또 조금 당겼다. 더 당기다간 접시가 송지원 명치를 곧 찌를지도.

“저도 몰랐는데 저희 셋이 사는 동네도 비슷하더라구요. 아예 연조님이랑 저는 거의 같은 동네.”

“와 정말요? 세분 어디 사시는데요?”

진심인지예의인지 잘 교육된 매너인지 문도형은 호기심이 헤펐다.

“그냥. 강북이요.”

내가 빠르게 답을 잘라냈다. 구구절절 우리 신상정보를 읊기 싫었다.

“강북 사시는구나. 강북 어디요?”

“삼양동이요.”

침묵하고 싶은 순간 송지원이 발언했다.

“네?”

“삼양동이요. 강북구.”

네 어디요? 문도형이 몸을 기울였다. 귀에 소리를 들이밀어도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송지원은 꾸역꾸역 두 번이나 더 '삼양동'을 강조해 발음했다.

“그냥. 경기 북부랑 더 가까운 쪽 있어요.”

송지원에게 그만 말하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충 일갈했다.

“도형님은 모르실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동네라.”

성골 골라내기 게임을 하려거든 여긴 육두품 동네라 텄으니 그만 가보란 뜻으로 전했다.

시간낭비를 줄여주기 위한 일종의 배려였다. 또다시 다음 곡으로 넘어가느라 머리 위 스피커가 잠시 절간 같아진 그 순간.

펑!

무언가 터지는 소음이 연달아 두 번 이어졌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장내가 새카만 어둠에 뒤덮였다.

언제나 소리보다 빠른 건 빛.

어두워진 뒤에야 반사적으로 놀라 터진 비명이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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