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소신

혼모노 중 [구의 집]

by 반딧불


폴리페서였던 구의 지도 교수는 바쁜 자신을 대신해 건물 설계를 대신할 학생을 찾고 있다. 자기를 대리해도 위협이 되지 않고, 위엄을 지키며 명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물을 원했는데 그가 바로 ‘구’였다.


구는 지도 교수가 자기를 선택한 의도를 알 길이 없지만, 그의 뜻밖에 결정에 감사하며 교수의 건물 설계에 합류한다. 한날 구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교수는 건물 설계의 진짜 이유를 구에게 털어놓는다.


그 건물은 넘쳐나는 불온 세력의 최종 목적지 고문실. 지도 교수는 사실을 말해준 뒤 구에게 선택권을 준다. 구는 건물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지만, 물러나지 않고 설계를 정교히 다듬는 데 매진한다.


70년대 중반, 유신의 광풍이 거세게 분 대한민국. 유신은 표면적으로 개혁의 의지를 담았지만, 박정희의 종신집권을 위한 강력한 독재 체제였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일부를 직접 임명했고, 국회 해산권을 보유했다. 대통령이 법률보다 위에 있는 긴급조치를 발동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했다. 대통령이 사법권과 행정권보다 우위에 서며 언론을 탄압하고 권위주의 통치를 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 절대 권력의 시대.



박정희의 정치적 반대자, 학생 운동, 노동 운동, 지식인들은 그들의 양심을 위해 앞으로 나서야 했고 시대의 광풍을 몸으로 맞아가며 스러져야 했다. 그들은 구가 설계한 고문실에서 고문을 견디며 지켜야 할 그들의 이유가 있었다.



‘국가가 빼앗아 간 인간 최소한의 자유와 존엄’ ‘인간답게 살 권리’ 그 자체.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과 권리, 우리가 매일을 숨을 쉬고 살아내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것. 이 최소한의 것들이 거세당했고, 용기 있는 그들은 폭력의 한가운데에서도 물러남이 없다. 그들이 붙들고 있던 소신은 가장 단순하고 근본적인 가치였다.



구는 이런 그들의 당연한 바램을 이해하지 못했고, 시대가 요구하는 효율과 성실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의 구조에 조용히 편입되었다. 소신을 선택하지 않은 자리에 남은 것은 그저 주어진 일을 수행한 인간의 공허한 성실뿐.



그러나 구의 선택은 특별하거나 기이하지 않다. 오히려 극단적 시대 속에서 ‘평범함’이 얼마나 손쉽게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악의를 품지 않았고 누군가를 해칠 의도도 없다. 그저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그 성실함과 순응이 고문실의 정교함을 완성했다.



결국 소신이란 대단한 신념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 행동의 기준이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말할 수 없어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외면하지 않는 태도. 결국 묻는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혼모노 #구의집 #소신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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