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9월

by 반딧불

책을 좋아해서 책과 관련된 일을 하니까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주변엔 책과 관련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읽는 것만 좋아할 뿐 아니라 글 쓰는 것에도 흥미가 있다. 자연스럽게 도처에 있는 그들의 글을 자주 읽게 되고 읽고 나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나도 꼭 갖고 싶은 능력인데 그게 나한텐 없는 것 같아 못내 서럽다.


이럴 때마다 작아지고 움츠러든다.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써놓은 글이 누군가의 시간을 뺏는 글이 될까 봐 불안하다.


그러니 글에 솔직해지기 어렵다. 꾸미고 멋 내고 광을 내야 읽을만한 글이 될까 싶어 허세 가득한 글을 과장해 쓰게 된다. 있어 보이는 사람이고 싶어서. 글 잘 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별거 없는 내 생각에 포장에 포장을 더한다.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 글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꺼내기 전에 이미 휴지통행이라. 나도 내가 쓴 글이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지경인데 이 글을 누구보고 읽으라고.


한동안 회의감에 한 글자도 못쓰던 글을 써보자 다짐했다. 두 번째 책 기획서를 달라는 출판사에 시건방을 떤 기획서를 보낸 이후였다. 조바심을 낼수록 글은 잘 써지지 않더라. 남의 글을 읽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던 사람이라 그렇다고 위안 삼았지만, 사람이 참 무서운 게 그렇게 허세는 떨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완성된 글은 가식 그 잡채.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발화된 글은 평소 자기가 많이 생각하고 접하던 거라 했다. 그럼 나는 중국 드라마를 소재로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년간 진지하게 시청한 내공과 틈틈이 쌓아 올린 배우 히스토리에 나 홀로 재미있는 이야기여도 곧 들통나게 될 것만 같은 번드르르한 허영심 가득한 글은 아닐 것 같아서. 그렇다면 뭘 써야 할까. 드라마? 배우? 왠지 쓰는 나는 신날 것 같지만, 기승전결 파동 없는 글은 읽는 사람의 감흥은커녕 재미도 없고 배려도 없는 글인 듯싶어 바람이 빠진다.


읽는 사람 마음에 울림을 주고 글을 통해 주제를 흐르게 하며 탄탄한 구성으로 막히지 않는 글을 꿈꾸지만, 여전히 내 글은 어렵고 목적이 불분명하다.


얼마 전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공범>을 읽었다. 추리 소설 대가의 작품을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넘겼는데, 추리 어디 있어요? 읽는 내내 추리는 웬 말. 형사들이 죽은 사람의 발자취만 쫓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이 대작가도 나에게 이런 인상을 주는데 내가 뭐라고 글로 큰 뜻을 품나.


겉멋만 잔뜩 든 글이어도 다시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허세가 들통날지 모르지만, 그 속에 나 다운 문장을 찾아내보자. 9월의 끝자락 선선한 바람이 나를 일으켰을까.


9월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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