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자가 되기로 했으니까
성과급이 나왔다.
덕분에 주식계좌 잔고의 앞 단위가 바뀌었는데(받기 전이 바뀌기 직전이었다), 뱅크샐러드 순자산 업데이트 금액을 보니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닌 것 같아 기분 좋으면서도 덤덤했다.
예전엔 성과급은 쇼핑, 해외여행 경비로 쓰곤 했는데 올해는 전액 투자하기로 결심해서 엄마에게 용돈 좀 드리고 모두 주식계좌로 이체했다. 소비 세리머니가 없어서 돈을 받아도 기쁘지 않은 건가.
성과급 중 일부는 일단 TIGER 차이나 항셍 테크, TIGER 차이나 전기차 반반씩 사야지. 현재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비중이 높고, 올해는 중국이 코로나 상황도 이미 회복하고 가장 빠르게 경제가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올해 1년을 보고 중국 간다.
아마존 조금 사고, 나머지는 일단 계좌에 넣어놓고 장기 투자할 만한 종목을 찾아 공부해야겠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다시 증권사 리포트도 읽고, 삼프로, 유투브, 투자책까지 보기 시작했는데 딱히 눈에 들어오는 종목이 없다.
퇴근 후 동료들 중 몇몇은 성과급 세리머니로 골프도 예약하고, 쇼핑도 하러 갔지만 난 평소와 같이 요가원에 갔다.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너무 별로였다. 한마디로 강사 된 지 얼마 안 된 티가 너어무 났다. 외운 걸 혼자 하는 느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업인데 이렇게 망쳐놓다니. 안 그래도 요즘 요가원에 이런저런 불만이 있는데 정말 다른 데로 옮겨야 되나 싶다.
찝찝한 기분으로 요가를 마치고 집에 오는데, 급 회사에서 말실수한 게 계속 생각나 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요즘 주위 어필러들을 욕하면서 나도 내 성과와 능력을 어필해야 된다고 느꼈나 보다. 그런 욕심 때문에 회의에서 어떻게 보면 재수 없고 거만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말을 했다는 생각에, 남들은 그런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이 됐다.
괜히 남 욕 하다 내 페이스만 잃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남한테 무관심하고, 내가 원하는 걸 명확히 세팅해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흔들리기도 한다. 흔들렸으니 재빨리 내 자리로 돌아가야지.
생각해보니 성과급에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은 생각보다 큰돈을 받았음에도 아직 내 자산은 서울 아파트를 사거나 조기 은퇴할 수 있는 금액에 가까워지지 못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포기하고 흥청 망정 날리지 말고, 긴 시간 쌓아간다는 느낌으로 좀 쉬어가야지.
대학 가려고 12년을 공부했고, 하지 못했던 요가 아사나도 1년 넘게 연습했는데 하물며 내가 원하는 부를 쌓는 걸 1,2년 만에 승부 보려는 게 말이 되냐.
오늘은 이래저래 흔들리는 날이었다. 흔들렸다는 것 자체에 속이 상하기도 했다. 어쩌겠어 나는 아직도 미성숙한 인간인데. 하루하루 책 읽고, 요가하고, 맛있는 것 먹고, 공부하면서 천천히 내 갈 길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