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길도 함께 걸어요
첫 직장은 나의 등에 빨대 꽂고 피를 쪽쪽 빨아갔지만 그 대가로 소중한 친구들을 주었다. 우리는 그 많은 동기들 사이에서 서로를 찰떡같이 알아보고 친해졌다.
찰떡같은 만남 이후 올해 초 까지 우리의 주요 대화 주제는 ‘소비’였다. 여행, 덕질, 맛집, 쇼핑 등 분야는 다양했지만 그중 메인은 역시 한 번에 가장 큰돈을 휘발할 수 있는 여행. 나는 어느새 내 나이만큼의 나라를 여행했는데, 이 중 대부분을 이 친구들과 다녔을 정도다. 아시아, 유럽부터 저 먼 남미까지. 단체 카톡방은 주로 좋은 여행지를 공유하고 여행 계획을 짜는데 활용되었다. 그런데 두둥 우리의 화두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들 몇 명과 함께 한 제주도 여행. 돈 쓰고 즐기러 간 여행이었지만 당시 나는 조기 은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때라 자연스럽게 주위에서 투자로 돈을 번 사람들, 파이어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히 친구들 역시 관심을 보였다. 아마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싱글여성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고 싶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원하고, 원하는 분야에 마음껏 돈을 쓰고 싶은 것과 같은...) 재테크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지만 방법을 몰라 투자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마침 손에 잡히는 이야기가 나와 좋아했던 것 같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기 위해 만든 카톡방에서 저축 목표, 투자 종목, 재테크 책을 공유하고 쇼핑리스트를 검열해 주며 서로의 경제적 자유를 응원했다. 그러다 역동의 코로나 장이 왔다. 이것이 바로 10년에 한 번 온다는 기회냐, 주식에 들어갈 시점은 언제냐 매일 활발하지만 깊이 없이 (!) 토론했다. 결국 아무도 큰돈을 투자하진 못했지만 스스로의 투자성향을 확인하고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시기였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쫄보 성향 상 우리는 거액을 투자할 수 없으므로 분할매수 분할매도를 해야 한다는 투자 원칙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장이 급반등 하여 코로나 장 이전부터 한주씩 사던 아마존 주식이 마이너스 수익 구간을 지나 20프로대 수익률을 냈다. 투자가 잘 되고 있다는 뿌듯함에 친구들과의 카톡방에 계좌 인증을 하고, 투자에 관심을 갖게 해 준 책들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그중 내가 강력하게 추천하고 친구들이 크게 공감한 책은 ‘파이낸셜 프리덤’이었다. 불필요한 소비는 나의 시간을 갉아먹을 뿐이니 행복할 수 있는데 소비를 집중하고, 저축을 최대화하고 인덱스 ETF에 투자해서 회사에서 시간 낭비를 멈추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그야말로 꿈같지만 실현 가능해 보이는 작가의 경험담을 다룬 책이다. 우리의 공통 관심사는 여행인 줄 알았는데 그것보단 회사를 싫어하는 것이 더 큰 공통점이었던 것인지 다들 이 책을 통해 투자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은퇴해도 같이 놀 친구가 없으면 심심하다. 다 같이 조기 은퇴해서 같이 놀자는 홍익인간의 마음으로 함께 연금펀드도 개설하고, 좋은 ETF도 공유하고, 수익률 자랑도 하며 현재 우리 카톡방의 가장 큰 주제는 재테크가 되었다.
금 대비 덜 오른 은에 투자하자며 다 같이 은 ETF를 매수하고, 조금 더 욕심내서 금 레버리지 ETF 샀다가 폭락으로 급 물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며 관련 증권보고서를 찾아보기도 하고, 우량주를 한주씩 모아가며 투자금+ 수익률을 높여가며 스타일을 찾아가는 기특한 내 친구들.
친구들이 여행 친구에서 투자 친구가 되어 좋은 점은,
- 친구들의 투자에 도움을 주고 싶은 착한 마음이 들어 공부량이 늘어난다.
- 투자 공부를 혼자 하면 내가 관심 있는 분야만 찾아보고, 내가 보유한 종목에 대해 긍정적인 정보만 받아들이기 쉬운데 친구들이 내가 놓치는 부분을 잘 짚어준다.
- 나의 투자 목표, 단계 단계 성과를 거리낌 없이 공유하며 조기 은퇴 의지를 더 강화할 수 있다.
- 투자 초반 쓸데없는 물건을 사려고 하면 친구들이 말해줘서 절약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을 받는다.
소비를 급격하게 줄인 나와 달리 친구들은 현생 소비와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친구들이 더 절약하고 투자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현생 행복+ 취향 존중이므로 투자정보를 던져주며 친구들의 행복을 응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