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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꼰대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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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구름 Nov 18. 2024

-1.2

과거

예전 단체관람 왔을 때 휘황찬란하던 로비와는 다르게 쓸쓸해 보이는 로비가 나타났다. 


좌우로는 공연 포스터와 스틸컷이 입구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벽까지 여유 있게 걸려 있고 로비 왼쪽 구석에는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큰 계단이 자리 잡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화장실로 가는 복도가 있다. 

로비만 봐도 규모가 꽤 되는 공연인걸 알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제일 먼저 `Today Cast`라고 되어 있는 캐스팅보드가 보이고 그 밑으로 배우들의 캐릭터와 얼굴 그리고 이름이 들어가 있는 판들이 보인다. 

캐스팅보드 좌우로는 객석으로 통하는 문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니 600석 정도 되는 객석이 펼쳐져있었다. 

단체관람 당시 전교생이 1000명 정도 되었는데 객석 1,2층으로 나눠 앉았는데 꽉 찼으니 극장은 대략 1000석 정도 될 것이다. 

그때 난 2층에 앉았었는데 지금 보이는 1층이 2층에 비해 확실히 더 컸다. 

객석 앞쪽으로 가보니 언제 왔는지 사람들이 앉아 있다가 대표를 발견하고는 전체 기립해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

손짓으로 대충 인사를 받은 대표는 가운데쯤 자리 잡고 앉았다. 대충 구석에 앉으려다가 맨 앞쪽에 앉아 있던 신입 동생들이 손짓하는 걸 발견했다.

”오빠 여기! “

방향을 틀어 동생들이 앉은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빠 왜 지금 와? 아까 도착했다더니 “

같이 신입으로 들어온 2살 동생 서은이다. 

이주일동안 매일 보다 보니까 짧은 시간이라도 친분이 쌓여서 제법 편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5살 어린 민준이가 인사를 한다.

”형 안녕하세요 “

”민준이도 일찍 왔구나 “

”저도 방금 왔어요 “

”자 이번달 딴따라 전체 모임 시작하겠습니다. 모르시는 분들 있을 거 같아서 인사드립니다. 

제작피디 이후진입니다. “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목소리에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오늘은 특별히 대표님도 참석을 해주셨습니다. 대표님 혹시 먼저 하실 말씀 있을까요? “

피디의 말에 대표는 없다는 듯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 먼저 신입배우들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연습한 지 이주정도 됐지만 정식으로 인사한 적은 없는 거 같네요 신입배우들은 무대로 올라와주시죠 “


인사를 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 거 같은데, 그래도 신입배우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내가 먼저 일어나서 무대로 올라갔다. 그런 나를 따라 동생들도 올라왔다. 피디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잡고 동생들한테 먼저 권유했지만 어려운 건 당연히 연장자부터라는듯 손사래를 친다. 무대로 비치는 조명이 날카로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30명 정도 앉아 있는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배우 김동식입니다. 28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말이 끝나자 박수가 나왔다. 뒤이어 서은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26살 윤서은입니다. 이런 큰 공연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영광입니다. 

부족하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선배님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대본을 써오기라도 한 듯이 적당한 애교와 말솜씨로 나와는 차원이 다른 박수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신입배우 막내 23살 김민준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박수 소리로 소개를 마치고 객석으로 내려갔다.

”연출님께서도 한말씀 하시죠?“

순간 모두의 고개가 뒤로 향했다. 연출님이 오신 것도 몰랐는데 어느 순간 와 있었던 것이다.


털북숭이 같이 콧수염과 구레나룻부터 시작해서 턱과 볼을 지나 반대쪽 구레나룻까지 덥수룩한 수염들과 개량한복을 입고 예술가의 면모를 뿜뿜 하면서 걸어 나오시는 연출님


”이번에 신입배우들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선배 배우들도 신경 좀 많이 써주시고요 

각 팀별로 제가 모니터를 돌 예정입니다. 언제 돌지 모르니까 그냥 공연만 집중해서 하시면 됩니다. 

제가 알기로 올해는 특히 해외공연이 많이 잡혀 있는 거 같던데 이동 간에 큰 사고 없이 잘 다니시길 바라고 팀 개편 있는 거 아시죠? 오늘 발표될 거니까 잠깐만 그러면 모니터는 그냥 팀 개편되면 연습하면서 차차 잡으면 되겠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


무대에서 내려오려면 좌우 끝에 각각 있는 5단의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3단쯤 내려오셨을 때 발을 삐끗하셨는지 넘어지실뻔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들 놀라움의 탄성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선 배우들도 있었다. 

다행히 중심을 잘 잡고 괜찮다는 듯 제스처를 취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연출님이 먼저 말씀을 하셨는데요 올해 해외공연이 많이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스케줄은 팀이 정해지고 연출님 모니터 후에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팀개편은 끝나고 나가시면 로비 캐스팅보드에 팀별로 바꿔놨습니다. 

참조하시면 되겠고 개편은 신입배우 첫공 후부터 바로 연습 들어갈 예정입니다. 

"네 대표님 “

문득 손을 들어 피디에게 할 말이 있다는 듯 마이크 없이 적당한 소리로 말을 꺼낸다.

”누가 노조를 만든다고 하던데? 배우 노조가 필요한 건가? 노조 할 거면 그냥 나가 “

순간 정적이 흘렀다.

”유상수“

”네 대표님 “

”노조 만든다며? 위원장이 너라는 소문이 있어 “

”노조요? 노쇼는 아는데 “

한순간의 재치로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래 노조 만들면 이번에 재계약한 거 노쇼 만들 거다. “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마이크를 잡은 피디가 말했다.

”대표님 말씀은 노조를 만들면 노쇼를 만들어버리겠다는 말씀이십니다. “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그래서인지 경직된 분위기가 많이 풀려 있었다.


”근데 노조를 만드는 게 불법은 아니지 않나요? “

상수 선배의 말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그니까 노조를 왜 만드는 거냐고!! “

대표가 소리를 높여 호통을 쳤다.

”돈이 제때 안 들어오잖아요 “

다들 터질게 터졌다는 듯 말없이 바닥 또는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안 주고 싶어서 안 주냐? 팬데믹에 외국인들이 안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

”그동안 많이 벌었잖아요 그 돈은 다 어디로 가고 힘들다고만 하시는 겁니까 배우들도 힘들어요 생계가 공연인데 돈을 안 주시면 생활은 뭘로 합니까 “

”그럼 나가 나가면 되잖아 왜 버티고 있으면서 돈 안 준다고 헛소릴 하냐? 재계약한 거 물러줄 테니까 나가 “

”나간다는 말이 아니라 “

”그럼 닥치고 앉아 있든가!! “

대표는 참았다가 폭발한 화산같이 상수 선배 아니 전 배우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 게 불만인 놈들 있으면 나가 계약 무효로 해줄 테니까 내가 안 주고 싶어 안주냐 없는데 어떻게 줘! “

소리소리 지르며 대표는 나갔다. 나가는 모습이 도망치는듯한 모습인 건 나 혼자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회사 입장도 이해 좀 해주세요 지금 회사가 어렵습니다. 

여기서 더 어려우면 공연 문 닫아야 하는 거 아시잖아요 배우분들이 이해 좀 해주세요 “

피디의 말에 상수 선배가 다시 한번 말했다.

”회사 어려운 거 이해합니다. 근데 이번에 회사 직원들 상여금 나간 거 그거는 무슨 돈으로 나간 겁니까? 그리고 회사직원들 워크숍 사이판으로 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거는 어떻게 설명하실 건데요? “

”다 말씀드리기엔 저도 모르는 부분들이 있어서요 이해 부탁드린다는 말씀만 좀 드릴게요 

오늘 모임은 일단 여기까지 하기로 할게요 아직 나누지 못한 인사들 천천히 나누시고요 

극장 앞에 용문성에 점심 예약해 놨으니 식사하고 가시면 됩니다. 전달할 거 있으면 공지하겠습니다. 

다음 모임 때까지 파이팅 하십시오 “


쥐고 있던 마이크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계단을 내려오는 피디를 붙잡고 다시 뭔가 열심히 어필하는 상수 선배를 본다.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않는 걸 혼자 총대 메고 말한다는 게 신기해 보이기도 미련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은 저마다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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