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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저자 고미숙 / 출판 북드라망 / 발행 2019.11.15

by 큰구름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읽고 써야 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20여 년간의 공부공동체 활동을 통해 경험해 온 고전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비전과 노하우를 담은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보통 글쓰기를 여행이나 운동 등 여러 취미 활동 중 하나이거나 조금 전문적인 취미처럼 생각하기가 쉽지만 글쓰기는 여러 취미 활동 중 하나가 결코 아니며, 다른 활동들과는 다르게 어떤 본질적 능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사람은 왜 글을 쓰며, 인간의 본성과 글쓰기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왜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읽고 써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실전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노하우를 들려준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었다. 1부 ‘이론편’에서는 읽기와 쓰기의 관계에 대해서도 단순히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정도를 넘어 쓰기는 읽기의 연장선이자 반전이며 도약이기에 읽으면 써야 한다면서, 삶과 세계에 대한 통찰로 가득 찬 고전들을 맹렬히 읽고 쓸 때 글쓰기는 양생술이자 구도이며 또 밥벌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부 ‘실전편’은 실제 진행했던 글쓰기 강의의 녹취록을 토대로 한 것으로, ‘칼럼 쓰기’, ‘리뷰 쓰기’, ‘에세이 쓰기’, ‘여행기 쓰기’ 등 네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글쓰기 각각의 핵심적인 특징을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조언을 전한다.


★ 2.0


∎읽은 소감

글쓰기 특강이라기보다 작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철학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 듯하다. 그래서 좀 불쾌하다. 작가 본인도 내용에 썼듯이 낚인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글쓰기 특강이라면 좀 더 글쓰기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1부는 철학이라면 2부는 강의한 것들을 짜깁기한 듯하다



∎인상 깊었던 문장

p.230

물론 비판적으로 읽어도 돼요.

근데 비판을 할 때는 논거가 뚜렷해야 해요

그렇지 않고 그저 감상적 차원에서 물고 늘어지면 리뷰가 아닌 인신공격이 돼버려요


∎이유

비판과 비난은 구분되어야 한다.

둘 다 모두 뚜렷한 논거가 있어야 하지만 비판은 뚜렷한 논거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딱 집어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재미없다면 재미없다고도 할 수 있고, 다만 비난이 되어서는 안 될 뿐


논제 1.

저자는 대중지성 공동체 <감이당>에서 청년, 중년, 노년이 친구가 되는 세대공감 트랜스 제너레이션을 실험해 왔다고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의 베이스는 배움과 학습 곧 앎의 본능이라고 하는데요 다른 것으로는 세대를 교차하고 뛰어넘기 힘든데 더욱이 화폐와 권위가 작동하는 영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책을 통해 인맥을 재구성하는 것이 미래의 비전이자 책의 저력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저자의 생각을 어떻게 보셨나요?

<이 모든 과정의 베이스는 배움과 학습 곧 앎의 본능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런 실험과 비전의 중심에는 책이 있다.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춤, 운동, 헬스, 요가, 등산 등 다양한 레저와 활동이 있지만 그것들은 대게 비슷한 계층, 유사한 세대에 갇히게 된다. 화폐와 권위가 작동하는 영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시대의 네트워크는 대부분 학연, 지연을 바탕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다 보니 대게 세대의 박스 안에 갇혀 있다. 이렇게 되면 비슷한 추억 엇비슷한 감상 차이 없는 담론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식의 관계망은 진부할뿐더러 위태롭다. 거기에선 우정의 연대도 지적 성숙도 불가능한 까닭이다. 지성이 없는 우정은 지루하다. 우정이 없는 지성은 썰렁하다. 고로 우정의 기쁨, 지성의 파토스는 함께 간다. 그러니 책을 통해 인맥을 재구성하라. 오직 책만이 책에 담긴 지혜와 비전만이 세대의 장벽을 가로질러 서로를 벗으로 만들어준다. 책의 저력을 믿고 감히 시도해 보라! 트랜스 제너레이션을 향한 소박하지만 힘찬 한 걸음을 (p.161~162)>


저자의 의도는 알겠으나 이런 종류의 인맥은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책으로만 가능하다는 저자의 생각들이 읽는 내내 좀 불편했다. 지성이 없는 우정은 지루하다? 우정이 없는 지성은 썰렁하다? 이런 생각이야 말고 지나친 생각의 오류 아닐까? 어벤저스에서 타노스가 아이언맨에게 던진 말 중이 이런 말이 있다. `너만 지식의 저주에 걸린 것은 아니야` 지식이 많다는 건 동시에 그 지식 안에 갇힐 수 있다는 것이다.


논제 2.

저자는 읽으면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읽기와 쓰기는 동시적이지만 지금은 대학에서도 쓰기가 사라졌다고 하는데요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읽기는 그저 정보로 환원되어 결코 존재의 심염에 가 닿을 수 없다.라고 합니다. 습관이 운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글쓰기는 손에 존재하는 습관이며 기술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읽은 후에 쓰는 것이 슨체와 융합되어 사유의 지도 즉 말과 글이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행위다라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저자의 생각을 어떻게 보셨나요?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읽기는 그저 정보로 환원된다. 그 정보는 아무리 원대하고 심오해도 결코 존재의 심연에 가닿을 수 없다. 그때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다. 나무가 전해주는 지혜의 전령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쓰기가 이루어지겠는가? 책이 신체와 접속 감응하며 활발 발한 케미가 일어나는 것이 쓰기다. 이슬람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조상의 자식이 아니라 습관의 자식이다. 습관이 운명이라는 이치랑 통하는 말이다. 그 연장선에서 언어는 혀에 존재하는 습관이다. 마찬가지로 글쓰기는 손에 존재하는 습관이며 기술이다. 요컨대 말과 글은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행위라는 뜻이다.(중략) 읽었으면 신체와 융합되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유의 지도를 바꾸고 말의 회로를 변경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쓰기다 (p.62~63)>


읽는 것과 쓰는 것이 같이 되어야 한다는 부분에선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생각을 글로써 정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듯하다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는 건 창작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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