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 번역 이시형 / 청아출판사 / 2020.05.30
책소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 프랭클 박사의 자서전적인 체험 수기이다. 그 체험을 바탕으로 프랭클 박사는 자신의 독특한 정신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를 이룩한다.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의미와 책임의 확고한 유형으로 짜 만드는 것이 프랭클 박사가 스스로 창안한 현대 실존 분석과 로고테라피의 목적이자 추구하는 바다. 그는 이 책에서 로고테라피의 발견으로 이끌어간 체험을 설명하고 있다. 잔인한 죽음의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기나긴 죄수 생활로 자신의 벌거벗은 몸뚱이의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 형제, 아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모두 죽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모든 가치를 파멸당한 채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핍박 속에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견뎌냈으며,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로고테라피의 실존 분석을 충분한 사례를 들어 다루고 있다. 프랭클 박사는 3단계로 나누어 의식적이며 책임을 지는 인간의 두 현상을 양심적인 현상으로 묶어 실존 분석의 기본적 현상으로 삼고 있다. 이로써 무의식적 심령 현상으로 파고들었고, 정신요법의 실존 분석을 확대 및 인간에게 의식적인 면과 동시에 무의식적인 책임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심령적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무의식적 종교관을 들추어내어 초월적인 무의식 속에 있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 4.8
읽은 소감
이런 책을 지금 같은 시대에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목숨을 걸고 사명이라 생각하고 사선에서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글을 남긴 작가에게 존경을 표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을 현실로 겪은 작가의 글들을 보며 가슴 먹먹함이 내내 남아 있다.
인간이 이렇게 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인간이 이렇게까지 견딘다고?라는 생각이 든다. 두 가지 마음은 인간의 양면성을 다루는 지킬 앤 하이드를 떠올리게 한다. 하이드가 실제 존재했다면 나치의 모습이었을까? 반면 작가는 지킬의 심정으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글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을까?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드는 너무나 귀한 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끝자락에 놓여 있던 작가는 어느 누구보다 오래 살았다. 그의 생이 오래되었던 건 자신의 사명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인상 깊었던 문장
p.146
우리가 그동안 했던 모든 일, 우리가 했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간직해 왔다는 것도 하나의 존재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가장 확실한 존재방식인지도 모른다.
∎이유
작가 이런 가치관들로 인해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소중하며 그 소중한 것들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사람이기에 의미를 찾고, 목적을 정하며, 삶을 살아내고, 표현한다. 그중 어느 것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논제 1.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려는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그리고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저자는 힘든 강제수용소 삶에서도 이렇듯 유머가 필요했다고 말합니다.
저자에게 이 유머가 어떤 의미가 있었을지 나눠보고 싶습니다.
P77.
[강제 수용소에 예술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뿐만 아니라 유머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더 놀랄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아주 희미하고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만 지속되지만,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유머는 사람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유머 포함 다양한 예술적인 행위들이 고난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원동력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독한 사람도 예술의 힘 앞에선 잠시 멈추곤 한다.
예술이란 유머란 이렇게 사람에게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다.
논제 2.
저자는 노동자로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는 것보다 의사로서 자기 삶에 의미 있는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건 희생이 아니라 단순한 계산이라고 말하는데요.
여러분은 저자가 말하고 있는 단순한 계산의 의미를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P85.
[병동에 누워있는지 사흘째 되는 날, 나는 야근 당번에 편성됐다. 그런데 바로 그때 주치의가 달려와 발진 티푸스 환자를 수용하고 있는 다른 수용소에서 의료자원봉사로 일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친구의 간곡한 만류에도(그리고 내 동료 의사 중에 이런 일에 자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나는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작업반에 들어갈 경우, 짧은 시간 내에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난 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의사로서 동료들을 돕다가 죽는 것이 그전처럼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로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는 것보다 확실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오히려 단순해진다.
작가는 단순한 계산이라 표현했지만, 자신의 존재 이유와 철학이라 생각한다.
그는 의사이기에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고, 기꺼이 의사로서의 마지막을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이 그의 운명의 시간을 더 누릴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이렇듯 그가 한 단순한 계산은 나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