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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구름 Jul 23. 2023

아버지 1주기(생신)

두 번째 수다

오늘은 아버지 기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의 생신이시다
이틀 후에 있을 아버지 1주기에는 온 식구가 모이기

힘들어서 이틀 당겨서 했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아버지의 생신이다 (기일도 당겨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모이는 게 더 중요한듯하다)

온 가족이 모여서 추도예배를 드리고 각자 추억하는

아버지의 모습들을 나눠보자고 해서 돌아가며

본인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들을 나눴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상남자였다
평생 동안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뚝뚝하셨다 그렇다고 우리 삼 형제에게 매를 들거나 하지는 않으셨다(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어머니한테는 많이 맞았는데 아버지한테 맞은 기억은 없다

어느 정도로 상남 셨냐면
사마귀 같은 것이 아버지의 팔에 났던 기억이 있는데
아버지는 손수 칼로 그걸 떼어버리셨다 거추장스럽다고.. 그러고서 허허허 웃으셨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를 군대 이등병 달고 첫 휴가 나오는

길에 집 앞 길에서 마주쳤는데 사슴눈을 하시며

눈물 글썽이시며 날 바라보시는데

`많이 늙으셨네 우리 아버지`
그때 처음으로 우리 아버지도 나이를 드시는구나

느꼈다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늘 산 같은

바위 같은 든든한 존재이시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

나이 들고 연약한 모습으로 내 앞에 계시다니..

그렇게 아버지도 세월에 순응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폐암으로 3번 수술을 받으셨고 뇌출혈로

3번 쓰러지셨으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모두 다

가지고 노년에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몸의 절반이

마비가 오셔서 거동도 편치 않으셨다 그렇게 오랜

투병생활을 하셨다

작년 이 맘 때쯤 한창 새 작품 연습 중에

아버지의 위급함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코로나로 주보호자 외에는 면회가 안된다고 했다

딱 자식들만 1번에 한해 위급할 때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 금 같은 면회를 그날 썼다 그리고 1주일을 넘게

잘 버티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참 아이러니 한건 임종 때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번의 면회를 써버려서 주보호자인 큰형을 제외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힘든 모습들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드셔서 큰형이 주보호자로 옆에 있었다)

모두 병원 로비에서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촉이 있는 건지 전날 아버지와

영상통화가 하고 싶어서 큰형한테 영상통화를

시켜달라고 하고선 사랑한다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우리 삼 남매 아이들과도 다 인사를 시켜드렸다

그리고 그 영상통화를 캡처까지 해 놓았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살면서 가까운 지인들이 하늘나라로 간 적은 있지만

나의 최측근이 돌아가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건 정말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다 한동안 아버지의 응답하지 못하는 카톡에 글도 써서 꿈속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 만나주세요라고 보내기도 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었던가??
큰 슬픔 또한 차차 나아지더라 밥도 잘 먹더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큰 능력은 잊어버림이라고 누군가 그랬던 거 같다 아무리 견디기 힘든

슬픔이 와도 시간이 지나면 차차 무뎌지고

잊어버린다고 아마 슬픔이 잊히지 않는다면

사는 건 지옥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다행히 잊히고 무뎌지고 밥도 잘 먹고 잘 웃고 하며 삶을 또 살아낸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잔을

단둘이서 마셔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잠깐의 만남이 허용된다면

그때는 꼭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할 것이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그동안 우리 삼 형제 올바르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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