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의 성장기
토요일 중3반 오전 수업, 아이들이 가장 수업 집중도가 높아지는 시간은 11시 50분이다.
‘10분 있으면 점심시간이야. 더 집중해서 공부해자.’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빛의 속도로 아이들은 공간이동을 한다. 편의점, 김밥집으로. 정확히 30분 후, 사탕과 아이스크림을 입에 잔뜩 물고 최대한 느린 걸음과 우울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 사이에서 수경이는 유독 들뜬 표정이었다.
‘수경이 오늘 계 탔니? 얼굴에 꽃이 피었네.’
‘아니에요.’
‘수경이 남친 생겼어요.’ ‘겁나 잘 생겼어요.’ ‘키 짱 커요.’ ‘동안이에요.’
아이들은 저마다 수경이 남친 목격담을 쏟아냈고, 그럴수록 수경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갔다.
‘남친 어디가 좋은데?’
‘얼굴이요. 잘생겼어요.’
‘몇 살 차인데?’
‘4살이요.’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데.’
‘우와~~~’ ‘부럽다.’ ‘결혼해! 결혼해!’
‘이제 그만하고 수업하자.’
점심까지 거르며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그들이 느끼는 설렘과 애틋함이 풋풋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 주 뒤 토요일, 나는 간단히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학원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초등학생들이 몇몇 놀고 있었고, 벤치에 한 어린 연인이 보였다. 수경이었다. 180 정도의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아이돌급의 훈훈한 비주얼이었다. 서로 손을 잡고 얼굴을 보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수경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들 곁을 지날 무렵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재우야! 다방구 하자.’
‘알았어. 금방 갈게.’
뒤를 돌아보았다.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지적한 ‘재우’가 수경이 남친이었다.
‘다방구’라. 그럼 저 아이가 초등학생? 4살 차이 나는 남친이라구? 그럼 초5.
‘누나, 나 친구들이랑 놀게.’
‘나랑 더 있으면 안 돼? 지금 헤어지면 다음 주에나 봐야 하잖아.’
‘미안. 다음 주에 누나랑 많이 놀아줄게.’
그 말을 남기고 남친은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세상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수경이는 벤치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4살 차이라 나는 당연히 20살 건장한 대학생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외모는 정말 건장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4살 어린 초등학생이라니. 수경이가 말을 하고 뛰어다니며 놀 때, 엄마 모유를 먹고 있었을 아이에게 ‘끌림’을 느끼다니.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의 신체 성장에 놀라고, 연애에 있어서 ‘나이 차이’는 문제가 아니라, ‘외모’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후 수경이는 물심양면으로 남친을 도와가면서 연애를 이어갔다. 본인은 배를 곯으며 얼마 되지 않는 용돈으로 남친과 그 친구들에게 과자며 아이스크림, 심지어 햄버거도 사주었다고한다.
몇 주 후, 토요일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퉁퉁 부은 눈으로 수경이가 교실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무슨 일이야?’
‘수경이 남친하고 헤어졌데요.’
수경이는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내어 흐느끼고 있었다.
‘왜? 남친하고 싸웠어?’
‘제가 싫데요.’ 하며 수경이가 울면서 대답했다.
‘네가 왜 싫은데? 우리 수경이 이쁘고 착하지, 공부는 좀 ....그렇지.’
‘제가.... 꼰대 같데요.’
‘무슨 소리야. 4살 밖에 차이 안 나는데.’
‘엄마처럼 꼰대 같이 잔소리만 한 대요.’
그 말에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초등학생 남친을 사귀는 중3 여학생의 끊임없는 훈계와 잔소리하는 모습이 순간 뇌리에 스쳤다.
‘괜찮아. 초딩이 다 그렇지 뭐. 걔가 몸만 크지 정신연령이 어려서 그래.’
‘샘, 제 남친 보셨어요?’
‘지나가다 놀이터에서 봤어. 잘생겼더라. 근데 너무 어려. 그냥 헤어져. 나중에 대학 가서 4살 차이 나는 정말 괜찮은 남자 친구 만나. 그때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근데 정말 잘생겼지요?’
아이도 어른도 어르신도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한다. 우리는 이성의 어떤 면에 끌리는 걸까? 외모일까? 성품일까? 그 끌림이 무엇이든 그 순간만큼은 이성이 아닌 순수한 감성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의 순수함이 외모건 나이차든 모든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의 순간 아닐까?
지금 수경이는 어떤 남친을 만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