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고 싶은
눈 발이 모래같았다. 모래바람처럼 따갑게 볼을 떄리며 황량한 언덕길을 가르는 눈가루들은 그림 하나
그리려하는 발걸음을 막아섰다.
내려가라. 오지마라. 있지마라.
그렇게 다그치듯 바람은 따가웠다.
생각한 그림 하나 그려보려고 한겨울에 황매산에 올랐다. 정상 부근까지 올라오니 낮은 곳에는 보이지 않던 눈들이 차오르는 내 숨 마냥 겹겹이 쌓여있었다. 경남에 눈이라니. 도시에 있을때는 한번 보기도 힘든 눈이
도시에서 1시간 떨어졌다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런 놀라움도 단 1초.
내 앞길에 쌓인 눈을 보고 안그래도 모자란 숨을 한숨이 뻇어간다.
아무도 가지 않았을 것만 같던 눈 위에 이미 누군가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
아무도 가지 않았을 것만 같던 길을 이미 누군가 걸어갔던 것 처럼.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것만 같던 생각을 누군가는 하고 , 하는 중이고, 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생각이 무조건 처음은 아님을 깨닫고
누군지 모르는 그의 발 위를 징검다리 마냥 한걸음씩 밟아 올라간다.
먼저 올라간 그 이도 이 황량한 길을 푸른 초원으로 만들지 못한 것일까.
푸르게 만드는 건 나의 몫일까. 아님 또다시 나의 발 위에 포개어지는 발자국의 주인 몫일까.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지.
생각한건 해봐야지.
이대로 포기하긴 아깝잖아. 여기까지 왔는데
건조한 겨울바람에서 들풀 냄새가 스쳐지나간다.
차가운 바람 위에 창백한 해가 나를 관찰한다.
그저 아무런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겨울의 눈내음처럼.
언제까지 올라가야 할까.
언제까지 걸어가야 할까.
언제까지 나아가야 할까.
아직 저 산을 카메라에 푸르게 담기엔 먼 길이 남았다.
뜨거울 것 같은 해는 차가운 바람만 불어대고
굳셀것 같았던 억새는 사정없이 흔들린다.
그래도 올라가야지
그래도 걸어가야지
그래도 나아가야지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저 봉우리처럼.
그래도 쉽지많은 않다.
어디까지 발이 빠질지 알 수 없는 눈길을 가냘픈 삼각대 다리로 찔러가며 조심 조심 나아가본다.
저기만 올라가면 된다.
그러면 푸르게 담을 수 있겠지
하지만 아직은 차갑고 시리다.
그래도 목표엔 와봤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다시 도전할 마음을 얻는다.
나의 길도 푸르게 남겨보리라.
그리고 새로운 그림을 남겨본다.
점점 타들어가는 노을에 새로운 장작을 넣어주고 싶지만
더 늦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지.
그래도 한 점의 그림이라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다.
이렇게 오늘도 풀 한포기를 심고 간다.
그리고 되새긴다.
나는 사진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