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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나무 May 08. 2019

나를 집어삼킨 죽음, 산후우울증

더 이상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과 무기력함,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휴대폰을 끄고 1시간 동안 한강 근처를 맴돌며 엉엉 울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엄마에게 으르렁 소리를 지르며 내가 산후우울증이라는 걸 온전히 인지하게 되었다.


내가 어쩌다 죽음의 문턱까지 오게 되었을까.

산후조리원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는 걸 멈추지 못하고 감옥처럼 답답함을 느껴 1주일 만에 퇴소했을 때부터였을까, 아님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내 인생이 끝난 것 같아 울며 불며 남편을 원망하던 날부터였을까, 우울증은 알게 모르게 스며들며 나를 집어삼켰다.


원래도 생리 전 증후군(PMS)이 심한 편이었고 살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우울감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그렇게 침울하게 살아오다가 남편을 만나 안정감 속에서 살게 되고 결혼해서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잠식해 있던 우울증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울증은 우울감 하고는 약간 달라서 이게 멀쩡히 괜찮다가도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 나를 산산조각 내기도 했다. 나는 실행력 빼면 시체인 행동파이기 때문에 죽음까지 가는데 한 걸음일 거 같았다. 다행히 나는 이 실행력을 삶을 지속하는 데 사용했다. 졸피뎀을 찾아보고 자살을 검색하던 나를 추슬러 정신의학과와 상담센터를 알아봤다.



산후우울증은 호르몬의 변화나 여러 가지 상황의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이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낫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도 약을 먹고 낫으면 되는 건데 괜한 쓸데없는 염려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나는 죽음의 기운이 숨 턱까지 차올라
약이든 뭐든 해야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바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국립중앙의료원에 있는 우울증 상담센터에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폭주 기차 같이 달리는 내 감정을 가라 앉힐 수 있을 거 같았다.


상담 전 간단한 자율신경을 체크하는 검사와 설문지를 기록했다. 설문지 내용은 아기와 나의 관계나 내 기분을 묻는 질문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아기를 볼 때 눈을 마주치는지, 아기를 보면 행복한지 껴안고 싶은지 등이었다. 나에게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입원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약만 복용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경과를 본 지 2개월가량이 지났다.


병원은 1주에 한 번씩 가다가 2주에 한 번, 이제는 3주에 한 번씩 가고 있다. 점점 호전이 되어 이제는 약 복용을 까먹을 정도로 나는 너무 멀쩡해졌다. 이제 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내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 의사 선생님이 이에 동의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좋아지고 있다. 그저 글을 쓰고 발행하는데 필요한 용기 한 줌을 내야 할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은데 나는 왜 그렇게 삶이 가파르게 느껴졌을까. 그 쬐끄마한 알약 2알에 위태위태하게 흔들거리던 내가 평온해질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얼마나 한 없이 약하고 작은 존재인지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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