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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나무 May 11. 2019

전문직이 아니면 애기엄마는 일하면 안되나요

내 안의 폭발한 열등감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IT업계 종사자'라고 있어 보이게 말하는 법을 습득했다.


존경하는 선배이자 언니의 결혼식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멋쟁이 아주머니가 내게 던진 질문 때문에 나는 한동안 열폭에 시달린 적이 있다. 아마 그 후로 내 안에 '있어 보이는 직장인' 코스프레가 시작된 거 같다.


육아를 할머니가 도와준다는 말에 "전문직이에요?" 라는 질문이 돌아왔고 그 즉시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이게 다 낮아진 자존감 때문이다. 그 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아도 끄덕 없었는데 육아를 하면서 괜히 혼자 쭈구리가 됐다고 여기며 생긴 일이다.


그 후에도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괜히 작아졌다.


그래서 스스로 터득한 게 'IT 업계 종사자'라는 포장지였다. 이렇게 얘기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그냥 "회사원이요" 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임팩트가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을 있어 보이게 하는 방식의 단어를 사용했다.


내가 하는 일은 바뀐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는 관점은 '우와 IT업계라니 멋진 일 하시네요' 혹은 '능력자시구나' 등으로 바뀌었다.


똑같은 회사원인데 그 전에는 아기를 매몰차게 놔두고 일하러 나가는 평범한 직장인 주제였다면 공부를 많이 한 능력자는 아깝게 썩히지 말고 얼른 일터로 나가야지로 바깥세상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전문직이 아닌 아기엄마는 일을 하면 안되는 거야? 라고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처럼 오늘도 내 속은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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