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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a 윤집궐중 Oct 31. 2021

13. 사람이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

산수유 1_ 소설『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_마쓰이에 마사시_비채


초여름에는 가즈오 이시구로, 한여름에는 마쓰이에 마사시를 읽었다. 이시구로의 플롯에, 마사시의 문장에 매료되었는데, 어느 쪽으로 내 마음이 더 기울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올해가 가기 전에 천천히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작품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몇몇 지인들에게 보냈던 카톡을 찾아보니,    

 

단숨에, 그러나 느리게 읽었어요.

주인공의 감정선이 아주 섬세한데 과하지 않고 담백해요.

글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그 상황을,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아주 내밀한 이야기들인데 직설적이지도 않고, 모호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은유적이지도 않아요. 게다가 그 시선이나 사유가 시니컬하거나 파괴적이지 않아서 더 좋았어요.

펜으로 치면 아주 가는 펜인데 모나지 않고 둥근 느낌이랄까요. 악인의 등장 없이 인간 세계의 희로애락을 실감 나게 표현해요.           


이라고 적혀 있다.         



 



유부남이었던 주인공이 미혼인 가나에게 끌리고, 만나고, 헤어진다. 불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그들이 남과 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비밀을 불가항력적인 욕망이나 운명으로 덮어 씌우지 않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문장들이 좋았다. 주인공이 가나의 일솜씨를 언급하는 대목이 특히 그러하였다.      



일솜씨에도 끌렸다. 가나는 대단히 유능한 데다 까다롭기까지 한 아트 디렉터의 어시스턴트였다. 미팅을 할 때마다 동석하고 디자인 팀을 조율하고 편집부와 빈번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전체 작업이 지체 없이 진행되도록 한다. 그렇게 말하면 코치나 감독의 이미지가 떠오를지 모르지만 가나는 딱히 눈에 띄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빨래를 말리듯 그렇게 업무를 처리했다.

문제가 발생할 듯한 부분을 사전에 찾아내 착지점이 어긋나지 않도록 미리 확인 작업을 한다. 아트 디렉터가 착각할 소지가 있는 점을 그 자리에서 풀어 말해서 확인한다. 어디까지나 조율자의 역할을 넘지 않았지만 편집부의 준비 부족과 안일한 마무리, 아트 디렉터의 급한 성미와 착각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트러블의 원인이었던지라 사전 조율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_ p.52                    



대략 일 년에 한 번씩 동료들이 바뀌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업무 스타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일 년쯤 가까이서 업무로 얽히다 보면 상대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어쩌면 그 사람과 일 년 동안 연애하는 것보다 상대의 인간됨을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만나서 일하고 싶은 몇몇 사람이 떠오른다. 서로의 주파수가 잡히는, 의견이 충돌할 때에도 리듬이 살아 있는 관계였다. 자신의 업무를 은근슬쩍 토스하지도 않았고 동료의 업무를 무신경하게 침범하지도 않았다. 물 흐르듯 추진하고, 조용히 조율하고 배려했으며,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에도 변명과 회피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솔직했으므로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었다.


매번 내색하지 않아도 서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공기를 호흡하며 수행하는 일은 처리해야 할 업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닥쳐오는 일들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더 재밌게 할 수 있을까 궁리했고, 때로는 일을 만들어서 하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아이디어들이 떠올랐으므로 채택되는 것보다 폐기되는 것이 더 많았지만, 그 과정 또한 순하게 진행되었다. (기우에서 말하자면, 직장 생활 내내 그러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일할 때만 그랬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그들 같은 사람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주인공이 우동 가게에서 우연히 가나와 재회하는 것처럼, 그들과 다시 만나고 싶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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