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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a 윤집궐중 Feb 12. 2023

45. 나의 사람들

눈발떼기 24_이번 주에 만난


나의 사람들


월요일 오전 10시에는 열시간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녀들과는 이전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다. 수다가 시작되면 10시간이 훌쩍 가는, 만날 때마다 화제가 온사방으로 열리는, 뜨거운 모임이다. 열열열


화요일 오후 5시에는 대관령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 가는 YS를 만났다. 아주 가는 건 아니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고 한다. 작별인사를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간다는 그녀, 그녀가 오래오래 돌아오지 않기를 빈다.


수요일 오전 10시에는 M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그녀에게 지난가을 함께 다녀온 <위로의 정원> 전시회 패브릭 페인팅을 선물했고, 그녀는 내게 지난주 다녀온 태교여행에서 샀다며 달력을 주었다. 제주 작은 책방에서 샀다는 그 달력에는 오름 그림이 12장 들어 있다.


목요일 오후 2시에는 <인사자문위원회>에 참석했다. 구성원 각자의 바람과 이해관계를 퍼즐처럼 하나하나 맞추어서 완성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퍼즐판 너머를 바라보는 한 명이 늘어날 때 우리의 '지금 여기'는 한 뼘씩 살 만해진다.


금요일 저녁 6시에는 <학수오대> 선생님들을 만났다.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그녀들은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이기도 해서 우리의 대화 주제는 주로 아이들이다. 학교 아이들이거나 집 아이들이거나. 12 좌석만 있는 ITX 8호차에서 마음껏 웃고 떠들며 여행하던 <함투어> 꼬맹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우리 엄마들은 여행을 갈 것이다. 녀석들이 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하는 해가 언제인가 헤아려 보던 우리는 그동안 모은 회비를 정기예금에 넣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11시에는 큰아이 학교 엄마들을 만났다. 너무 오랜만의 학부모 모임이라 며칠 전부터 긴장되었는데, 예상을 훌쩍 뛰어 넘는 반가움과 즐거움을 그곳에서 만났다. 1점에 몇 등이 내려가고, 한 등수에 등급이 바뀌는 현실에 알게 모르게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활짝 펴질 만큼.


그리고 오늘 아침, 잠시 후 7시 10분에는 멀리 있는 터미널에서 그녀가 버스에 오를 것이다. 운전을 즐기던 그녀가 망설임 끝에 대중교통수단을 선택하는 것을 보며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는다. 온라인에서 만났고 나보다 나이도 적은 그녀가 어렸을 적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은, 적당한 거리에서 오랫동안 쌓인 시간 때문일까.


내일 퇴근 후에는 <만두> 선생님들을 만날 것이다. 연령대도, 직위도, 성별도 다르지만 만나기만 하면 떠들썩하게 폭발하는 만두. 수업연구 중일 때도 밖에서 들으면 친목 모임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텐션을 지녔었다. 3년 만에 만나서도 예전 그대로일까, 기분 좋게 떨린다.


어쩌다 보니 이번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출근을 앞둔 주니 쉬어야   같기도 했고, 미루지 말고 만나야   같기도 했다. 약간의 스케줄에도 금방 방전되는 근래의 컨디션을 고려할  무리한 일정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 2월의 폭풍 읽기 리듬이 흐트러질  같아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7일째인 오늘 새벽,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내게 '사람',  서가에 꽂힌 책이라는 것을. 나의 과거가 선택하거나 선물 받아  현재에 꽂혀 있는 그들, 그들을 펼쳐  기울이는 시간이 좋다.  공간에서 내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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