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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순간 Feb 26. 2024

[예능 이모저모]-왔다! 내 손주

    날이 갈수록 국경이 희미한 흐름에 맞춰 방송사들은 외국(인)과 관련된 여러 예능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각 나라의 문화와 생활을 소개하는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사람들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러한 예능 중 대표적인 예시는 '이웃집 찰스'로, 2015년에 시작해 지금까지도 방영 중이다. 사실 더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다큐멘터리 '다문화 고부열전'이 원조격에 해당된다. 이 글에서 소개할 프로그램은 '다문화 고부열전'을 뒤집어 만든 최신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 거주 중인 다문화 가정 부모와 아이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조부모를 만나 시간을 보내며 조부모와 한국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앞부분 절반은 해당 가정의 생활 모습과 국가의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담는다.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함께하는 특별한 일상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당연하게도 각 가정의 개성이다. 국가별로 다른 문화에서 오는 차이도 분명히 있지만 우리의 삶은 저마다 다르기에 가족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생활 속 개인적인 관전 포인트는 한국어였다. 부모 중 어느 쪽이 한국인이든 자신의 아이에게 대한민국 역시 그 아이의 나라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동일하기에 아이들은 거주 국가의 언어뿐 아니라 한국어도 구사한다. 자라온 환경도, 나이도 다르기에 구사 능력에는 차이가 있지만 귀여운 목소리와 어눌한 한국어로 인터뷰하는 걸 보고 있으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중요 부분은 조부모와의 교감이다. 한국에 머무는 날 중 하루는 부모 없이 조부모와 자녀만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방침이다. 언어 문제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거나,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알아가며 가까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손주를 향한 각자의 마음도 잘 전달된다.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의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감사하고 또 필요하지만 친구처럼 가족 외 다른 사람을 만날 시간도 허락되고 육아에서 잠시나마 해방된다는 점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촬영하는 시간 동안 아내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기뻐하는 모습이 떠올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주를 아끼는 마음은 모두 같지만 그 마음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어떤 활동을 같이 하는지는 제각각이다. 그리고 국제결혼으로 사랑하는 자녀를 멀리 떠나보내 자주 볼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와 공항에서 인사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봐도 매번 울컥했다.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을 보다가 문득 지구 반대편에서 유학 중인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방영된 모든 회차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하나만 꼽자면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는 소피아네의 이야기였다.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잔소리꾼 엄마, 다정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 개구쟁이 동생 다니엘과 더불어 소피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소피아는 한국어를 곧잘 구사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열 살 소녀이다. 공항에서부터 자신보다 어리고 한국어가 서툰 동생을 살뜰히 챙기고 떡국을 비롯한 할머니의 여러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그리고 소피아의 친구인 새라가 의도치 않은 감초 역할로 다가왔다. 같은 다문화가정에서 자랐고 새라의 엄마 역시 한국인인데 소피아보다 먼저 한국에 다녀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며 좋았던 것을 추천해 준다. 특히 (한국 내에서도) 잠실에 있는 미용실, 그리고 아트박스는 꼭 가보라며 거듭 강조하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엄마나 아빠는 잘 사주지 않으니 할머니나 할아버지께 애교를 떨라는 조언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소피아는 친구가 추천 한대로 아트박스에서 아기자기한 물품과 인형을 사고 미용실에서 '공주님 파마머리'까지 한다.


    EBS에서 하는 다큐멘터리나 예능을 보면 정보 전달이 주 목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다. 그리고 정보 전달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집중해서 보면 퍽 재미있어서 너무 무거운 내용이 아니면 종종 즐겨 본다. 중학생 때는 다큐멘터리 '세계의 아이들'을 한동안 본방사수 한 적도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우연히 영상을 보게 되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한 회차를 다 시청한 후에 묘한 재미와 매력에 이끌려 다른 회차들을 연달아서 보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푹 빠져들었다. 대부분의 출연 가족들이 영상 댓글을 통해 소감을 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고서야 멀리 사는 가족을 보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을 텐데 추억을 만들 기회가 생겼음에 감사하는 내용이었다. 좋은 취지와, 재미, 감동, 교양까지 모두 잡은 프로그램인 것 같아 되도록 오래 방영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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