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용, 진기주, 남다름, 류한비
어쩌면 이 네 사람 중 인지도 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사람은 남다름 배우이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거의 모든 남자배우의 아역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작품을 했다. 경력이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 작품 다양한 모습과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조용하게 낙원의 곁을 지키며 다정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좋은 연기를 보여줬을 뿐 아니라 인물 설정도 굉장히 멋있었다.
(나무의 손이 다친 것을 확인하고 상처에 손수건을 묶어주며 낙원이 하는 말)
야, 잠깐만. 이리 와 봐. 괜찮아? 아까 봐놓고 깜빡했다, 많이 아프지?
아니, 괜찮아./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진짜 바보 맞지, 이게 괜찮아? 이게 어떻게 괜찮아?
아침에도 나 때문에 고생 엄청 했으면서 이제는 막 다치고...! 그러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괜찮다고 손도 막 빼고!/그게…
우산도 기껏 들었으면 자기나 쓰지, 나 씌워준다고 자기는 비 다 맞고, 네가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야?! 다쳤으면 다쳤다고 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왜 자꾸 혼자 견디는데 왜...!/미안…
류한비 배우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네 명 중 가장 인상 깊었다. 남다름 배우와의 화학작용도 훌륭했지만 어린 낙원을 정말 잘 표현했다. 아역 배우가 분량은 짧지만 어린 시절의 서사를 쌓는 밑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서사를 쌓을 때는 대본도 중요하지만 배우 본인이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발랄하고 천방지축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기보다 낙원 그 자체로 보여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낙원은 순수하며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살인 사건을 계기로 성격이 바뀌었다. 진기주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다가 문득 그렇게 밝은 아이가 이렇게 변했다니…… 싶은 생각이 들며 보면서 낙원에게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과 현재가 대비되어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건 류한비 배우의 좋은 수행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낙원을 걱정하는 마음에 자신을 모른 척해달라고 부탁하는 나무)
…
그리고 나도 앞으로 그냥 모른척해줘. 부탁이야.
싫어, 안 잊어버릴 거야. 나는, 네가 좋거든. … 왜냐고 안 물어봐? 고작 하루 봐놓고 뭐가 좋냐고?
윤나무, 아니 나무 너, 난 나무 네가 꼭 나무 같아서. 아무튼 난 그래. 그러니까, 네가 나 싫다고 해도 나는 너 계속 좋아하려고.
언뜻 보고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여러 설정을 더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핵심은 속죄이다. 윤희재는 나무를 본인과 같은 괴물(살인자)로 만들려고 하지만 나무는 그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더 나아가 속죄의 의미로 경찰대에 진학한다. 자신이 자라온 환경, 당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이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낸다.
두 번째 핵심은 재회이다. 낙원은 자신이 커서 유명한 사람이 되면 이별한 후에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나중에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한다. 낙원은 약속대로 연예인이 되었지만, 나무는 미안함 때문에 다시 찾겠다는 약속만은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본다. 그러다 한 기자의 계략으로 인해 낙원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 나무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낙원의 곁에 돌아온다.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 그럴 건데, 오늘 일 만약에 정말로 너네 형이 그런 거라고 해도, 그래도 나무야 널 다시 만난 건 나는, 나는 좋아."
윤희재는 십수 년이 지난 후에도 낙원을 위협한다. 재회의 기쁨은 잠시 뿐이고 위험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밀당을 할 여유 따위는 없다. 상대가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서로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무슨 일이 생기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
세 번째 핵심은 로맨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다. 사실 스릴러의 비중이 적지 않고 수위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달달하고 애틋한 장면 뒤 섬뜩한 장면이 나오면 불편하다기보다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과하지 않을 정도로 선을 잘 지켰다. 앞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허준호 배우도 본인 몫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한 명의 인물이지만 작품의 구도를 생각했을 때는 한 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주연배우 두 명과 다른 조연들이 할 만큼의 어려운 일을 혼자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많이 생각났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로맨스와 스릴러 이외에도 코미디가 가미되어 있고 살인범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 중심을 이루지만 변호사로서 맡은 재판 일화들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부분을 비교해 보면 전체적인 설정이나 작품의 주제 측면에서 많이 닮아 있다.
낙원과 나무, 이름부터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몰입해서 끝까지 보면 극 중에서 개명한 이름이 어색하게 들린다. 서로의 낙원과 나무가 되어주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유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는 장면도 많이 나오고 마지막 장면도 포옹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에는 남녀가 포옹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자신과 포옹을 하는데 이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포옹이 단순한 애정표현이나 애틋함을 나타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존재 자체가 감사하고 곁에 있어주며 위로를 전한다. 더 나아가서는 어린 시절 겪은 끔찍한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자신의 상처를 마주 보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의미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다르다.
장르적인 특징으로 인해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우연에 기댄 장면이 다소 많다. 그리고 나무를 짝사랑하는 경찰대 후배와의 관계를 그냥 흘러가듯이 묘사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