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가 두려움이 될 때, 나를 지켜준 것
여행의 묘미는 익숙했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낯선 것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 나를 던지는 일이다.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몸은 생전 처음 가본 낯선 목적지에 있는 팩트 그 자체이다. 하지만 마음은 천연색 물감이 온 사방에서 튀어져 날아오듯 해일처럼 넘실거린다.
대학교 때 문화 적응의 단계에 대해 배웠는데, 그러고보면 여행의 마음 상태 변화도 문화 적응의 단계와 맞닿아 있다. 문화 적응의 4단계는 이러하다. 첫째, 처음 접하는 세상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고 동화처럼 느껴지는 허니문 스테이지에서는 두근두근 설레고 행복한 마음 그 자체이다. 둘째, 어느 순간 흥분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문화적 차이를 인식한다. 이때 문화적 차이가 불편과 긴장을 유발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떠나온 곳에 대한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셋째, 다름을 인정하고 편안해지기 시작하면서, 언어와 행동 등 전반적인 모습에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 넷째,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문화를 경험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점차 새로운 문화에 젖어들어간다.
20대 중반, 직장에 취직하고 호기롭게 무려 한달간 홀로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어느 하루가 생생히 기억난다. 이탈리아에서 발사믹식초로 이름난 어느 시골 마을의 골목골목을 하릴없이 종일 걷던 날이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론리플래닛의 영어판의 한 구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는,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마을에서 진짜 이탈리아를 경험해보세요."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라는 모토를 사랑하는 나는 이 문구에 자석처럼 이끌려, '이곳은 필시 내 스타일이 분명하다'라고 콧노래 부르며 그 마을로 향했다.
마을에 도착한 뒤, 역시 예감이 정확히 적중했음에 쾌재를 불렀다. 짧은 시간에 존재하는 대표 관광지를 모두 찍겠다며 세계 최고의 열정을 불태우는 한국 관광객들은 여행지에서 고개만 돌려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마을에서는 예외였다. 하루 종일 걸어도 한국말 한 마디 들려오지 않았고, 눈을 씻고 쳐다봐도 그 흔하던 한국어 안내문 한 글자도 없었다.
이게 진짜 이탈리아여행이라며 설레던 감정은 어느 순간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해도 동정해줄 한국사람 한 명 없을 것 같은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랄까. 인신매매나 실종사건의 주인공이 내가 되면 진짜 공포스럽겠다며 KBS 9시 뉴스에 대문만하게 걸린 내 사진을 상상해보자면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 내던져진 주인공의 먹먹한 심정이 내 마음 같았다.
온통 외국어로 적힌 과자 포장지만 봐도 미지의 나라를 탐험하고 싶어 가슴 설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미니멀라이프를 선언하고서도 전세계에서 가져온 지도를 끝끝내 버리지 못해 꽁꽁 간직하고, 지구본을 빙그르 돌릴 때면 별을 찾는 어린 아이가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온종일 낯선 그 한가운데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면 평온함이 부지불식간에 불안함으로 바뀌는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자연의 순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먼 바다로 떠난 연어도 알을 낳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다. 코끼리도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초원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내가 배낭여행 시절보다 10년은 족히 더 나이 먹었더라도, 한국인 하나 없는 낯선 마을에 (데이터, 스마트폰 없이) 하루 종일 던져진다면 나는 아직도 호러영화 주인공의 심정을 어느 순간 느낄 것임에 틀림없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세계에서 인구밀도로 탑 오브 더 탑인 한국, 단일민족 5천만명 속에서 거진 불혹의 시간을 보내면 까맣게 잊고 산다. 옆에 지나가는 아무개 한국 사람이 허허벌판 외국에서는 얼마나 소중하고 절실한 존재였는지 말이다. 연륜과 경험도 두려움 앞에서는 장사없다고, 나이 들면 좀 나아질 것 같냐고, 90살 먹어도 다 똑같다고 호호 할머니된 내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런데 게임체인저가 나타났다. 혼자가 아닌 둘이 되면 전세는 완전히 역전된다. 둘이 아닌 셋, 넷이 되면 열세였던 그 게임은 나에게 아주 유리해진다.
아니, 최소한의 문명, 물과 공기만 있다면 지구 어디에서든 나는 천하무적이 된다. 우리 가족과 함께라면, 불안감은 편안함으로, 두려움은 개척정신으로 바뀐다. 나는 잠재 위험으로부터 우리 부부에게만 의지하는 애기들을 보호해야 하고, 애미로써 애비와 함께 먹여살려야 하니까 여행지에서는 씩씩한 애비에이터, 네비게이터로 변신한다. 낯선 땅에서 유일하게 익숙한 존재, 가족이 있기에 나는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쌔근쌔근 잠든 아이를 뒤에 싣고, 남편과 나는 그렇게 미국을 달렸다. 로드트립에서 차는 우리의 든든한 안전막이 되어주었다. 비와 눈, 어둠을 뚫고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했다. 솔트레이크에서 옐로스톤으로 가는 길로 기억된다. 거의 5시간 직진만 하는 길이 나왔다. 10년 운전해도 운전 못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나였지만, 남편의 피로를 덜여주려고 운전대를 잡았다. 불안한 운전실력도 불안하지 않을만큼 피로에 쩔었기에 남편은 금새 곯아떨어졌다. 오로지 나만을 믿고 지구 반대편 어느 도로를 달리는 이 사람들 생각을 하니 어깨에 너무 힘들 준 탓인지, 운전 고작 1시간만에 어깨에 담이 생긴 날도 있었다.
미국은 고속도로의 나라다. 누군가는 콜로라도 로키산맥 정상까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닦았고, 누군가에게 해발 4,302미터 풍광을 보여주려고 톱니바퀴 기차를 만들었다. 선구자의 개척정신없이는 불가능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5시간을 꼬박 직진만 했어도 미국 지도를 축소해서보니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크기였다.
놀라움에 남편과 나는 미국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는 대체 어느 정도인지 검색해보았다. 미국 20번 국도는(U.S. Route 20 or U.S. Highway 20)은 미국 북서쪽과 동쪽 뉴 잉글랜드를 가로지르는 미국 최장 고속도로이다. 길이는 자그마치 3,365마일로 5,415km에 달한다. 우리가 여행한 모든 길을 합치면 이 거리는 거뜬히 넘겠지만, 한번에 횡단하기에는 엄청난 거리임에는 틀림없다.
로드트립을 하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끝이 없을지도 모를 정도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에 뻗어있는 도로에서 우리의 삶도 이렇게 탄탄대로이기를 바란다며 어깨를 토닥여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풍경, 아늑한 차 안에서라면 더는 바랄 것이 없는 마음의 상태가 자주 찾아온다. 아무 말 없어도 편안하고, 아무 말이나 해도 재밌기까지하다. 가는 길에 무엇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그건 이미 상관이 없다. 중요한건 우리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적고보니 글의 시작에 소개한 문화 적응의 단계는 사랑의 단계라 말할 수도 있어보인다. 문화나, 여행이나, 사랑이나 결국은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적응하는 것이기에.
사진: 찰나를 포착하는 남편
글: 찰나를 쓰는 아내
귀여움: 두 아들의 애교 두 스푼